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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l 11. 2024

필사.. 거 되게 힘드네.

60 걸음 - 원래 남의 노력은 쉬워 보이는 법

부족한 필력을 늘리기 위해 가장 많이 시도하는 방법 중 [필사(筆寫)]의 과정을 추천하는 이가 꽤 많았다. 필사라 함은 다른 작가가 쓴 작품을 직접 써보는 걸 의미한다. 내 경우는 악필이기도 하지만 노트북으로 쓰는 걸 선호해서 다른 이의 작품 중 마음에 들었던 회차를 메모해 놨다가 타자를 치며 따라 써봤다.


'그냥 따라 쓰기만 하면 되는 거겠지?'


별 생각이 없었다. 특별히 힘들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이게 웬걸? 한 화를 필사해 보며 죽는 줄 알았다. 읽을 땐 몰랐는데 보고 쓰기만 하는 것도 왜 이리 토할 거 같던지. 위기가 한 다섯 차례 이상 찾아왔다.


'아..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번에 할까?'


나를 잘 알고 있다 보니 지금 미루면 다신 안 쓸 거라는 것쯤은 꿰고 있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꾸역꾸역 힘들면 쉬어가며 처음으로 필사에 성공했다. 남의 글을 훔쳐 쓰려는 의도가 아니라 순수히 내게 부족한 필력 보강을 위한 노력이었다.


다 쓰고 나서 깨달은 점은.


1. '읽을 땐 짧게 느껴져서 왜 이렇게 분량이 적어?'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2. 내가 직접 쓰는 것과 타인의 글을 필사하는 건 힘듦의 강도가 달랐다.
3. 5 - 6,000자 정도 되는 분량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능동적으로 글을 쓸 땐 사실 잘 몰랐다. 본인의 생각에 심취해 있는 상태이기도 하고 손을 바삐 놀리다 보면 어느새 1,000자, 2,000자를 돌파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이 쓴 글을 직접 옮기다 보니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제야 타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다시 한번 생겼다.


'이토록 쉽지 않은 일을 꾸준히, 양질의 글로 완성시키고 있었구나.'


당연히 배울 점도 있었다. 읽을 때는 한 호흡에 읽는 경우가 많아서 숨 가쁘게 달리다 보니 벅찬 감정만 전달받을 때가 많았다.


대체 어떤 연유로 같은 글을 쓰는데 이토록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질까?


필사를 해보니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아직까지 고작 필사를 한 번밖에 안 해봐서 함부로 판단하긴 좀 그렇지만. 분명 해당 작가만의 특징이 느껴졌다. 어쩌면 리듬이라고 해야 할까? 통통 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엇박으로 읽히기도 하는 나름의 장단. 눈으로 읽는 텍스트임에도 머릿속에선 음악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존재했다.


텍스트는 상상력을 통해 이미지화되고 어딘가에서 보고 느꼈던 장면이 결합돼 내 눈앞에 생생히 나타났다. 글이 실체화되는 순간이었다.


"필사 두 번 하면 아주 글쓰기의 정수를 깨우칠 기세네요?"


놀랍게도 아니다. 필사를 한 건 한 거고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내 필력이 늘었다는 걸 체감할 순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흉내 내 보려 해도 다른 작가의 그 느낌이 묻어나질 않았다. 애초에 훔칠래야 훔칠 수 없는 재능 그 자체.


그렇다면 평범한 난 어떻게 해야 필력을 늘릴 수 있는 걸까?

평생을 써도 제자리걸음만 하게 되면 어쩌지?


고작 웹소설 쓴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기성작가나 할 법한 고민을 하고 있다니. 우습기도 하여라.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의 순간이 찾아온다. 무료연재를 하는 다른 분도 비슷할지는 모르겠다.


"읽어주는 모든 분께 정말로 감사하다. 무료 글이라도 읽어 주시는 게 어디야."라고 했다가

"난 뭐 돈 좀 받고 팔면 안 돼? 개인 유료화라는 방법도 있잖아."라고 하거나

"지금 스토리 흐름을 좀 보라고.. 대체 이걸 돈 받고 팔려하다니. 양심은 있니?"가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프로그래밍도 창작과 연관 있는 활동이라 여겼기에 글쓰기와 유사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맞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은 더 많고.


그래도 그땐 짜 놓은 코드 덩어리를 동료들과 토론하며 좀 더 나은 방법으로 나아가기 위한 리뷰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솔직히 그때도 많이 부끄러웠다. 코딩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나로선 따라가기 벅찰 정도의 깔끔함과 유연함을 보여주곤 했고, 그 후 내 코드를 보면 시작과 끝을 찾기 힘든 스파게티 덩어리가 나타났다. 하지만 동료가 있었고 개선하며 나아갈 수 있다는 신뢰가 있었기에 괜찮았다.


'일일신 우일신.'


글을 쓰면서부터는 줄곧 혼자다. 솔직히 아내를 제외하고선 누군가에게 읽어 달라고 적극적인 말도 꺼내지 못했다. 간혹 용기 내어 링크를 보내보기도 했지만 "왜 그랬어!"라며 뒤늦은 후회만 들었다.


어딘가에서 나의 잘잘못과 개선할 점을 알려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새삼 과거의 동료들이 그리워졌다. 치고받고 싸우며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라고 다짐했던 것처럼 진짜로 보지 않게 되니 이제야 알겠다. 어찌 됐건 한배를 타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축복이구나.


나름의 해법을 찾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연재]였다. 누군가 말을 하더라고.


"연재를 해야 비로소 독자의 피드백을 받게 됩니다. 수많은 질타 속에 자신의 부족함을 고쳐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로서의 격이죠."


그 말을 믿고 무작정 연재에 뛰어들었다. 악플이라도 좋으니 달아주기를 바라며. (실제로 악플이 달렸다면 당장 삭제 또는 키보드배틀을 벌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연재.


댓글??

...


슬프지만 댓글도 인기 있는 작품에나 달리는 것이다. 연예인 중에 무플이 제일 슬프다고 했던 예의 그 누군가처럼.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달리는 안부 인사하나에도 정말 감사했지만 직접적으로 작품에 대한 의견을 달아주는 이를 만나는 건 어려웠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으니 그저 연재를 지속할 따름이다.




필사를 통해 필력을 늘리겠다며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언제나처럼 방향을 잃었다.


과연 필력이란 무엇일까?

필력이 좋으면 똑같은 소재의 글이어도 다르게 읽힌다던데.

대중의 보는 눈은 비슷해서 재밌는 것과 아닌 것을 귀신 같이 구별한다던데.

같은 한글을 이용해 문장을 쓰는 데 당신과 나의 차이는 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나도 흡입력 있는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애초에 필력이라는 걸 측정할 수는 있는 건가?


모르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같은 느낌. 쓰고 또 써봐도 필력이 늘어간다는 느낌을 도무지 모르겠다. 단지 잘 쓴 글을 보며 "이게 작가지."라는 생각은 많이 한다.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유명한 형님이 조언해 주신 말이 생각난다.


"그노티 세아우똔!"

"예??? 뭐라고요?"


[너 자신을 알라.]


사실 그리스 델포이 신전 내부 기둥 어딘가에 새겨져 있었던 글귀라고 한다. 그리스를 가본 적이 없으니 정확히는 모르겠네. 뭐 그래도 소크라테스 형님이 유행시킨 말이니. 대충 형님의 어록이라고 생각하자.


잘 쓰고 싶고, 잘 읽히는 글을 내놓고 싶다.


그러나 아직 내게 주어진 필력은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부족함을 상쇄시킬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다는 걸. 그건 바로 꾸준함.


비록 꾸준하다해서 재능의 영역을 넘어서는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쩌면 그저 그런 정도의 이야기꾼으로 살다 갈지도 모를 일.


[나는 그래도 괜찮은가? 평이한 이야기꾼의 삶이어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머뭇거려지지 않는다면 이 또한 거짓이겠지.


"해볼게요."


뜨뜻미지근하지만 솔직한 나의 마음. 해보는 수밖에. 가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면 나름 내게도 재밌는 미션이 주어진 것 아닌가.


최소한 오늘은 오늘의 마음을 담아 글을 쓸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일단 축배를 들자. 내일 일은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해주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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