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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l 18. 2024

Just keep uploading.

64 걸음

몇 가지 날 압박하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는 [유튜브 콘텐츠 제작]이다.


"너무 문어발식으로 하는 건 별로 아닌가요?"


이에 대해선 꽤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었고, 총 세 번 정도 도전했지만 매번 길게 유지하지 못하고 접었다. 마음속에선 보류로 판정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주변에 누가 유튜브 시작했다더라 또는 콘텐츠를 올리면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날 짓눌렀다. 나도 참 피곤하게 사는 타입이다.




몇 달 전에 우연히 기회가 돼서 만난 분이 있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바로 눈치채시리라 싶긴 한데.


협소한 인간관계의 끝을 달리는 입장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보통은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 게 일상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마치 퀘스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는 DM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약속을 잡았다.


- 와. DM으로 누군가랑 만나기로 하다니.


몇 번째 겪은 일이긴 해도 매번 신기하다. 상대도 같은 설렘을 느꼈을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동성이었다는 점.


"요즘은 남자끼리 함께하는 게 유행이라던데.. 혹시?"


걱정 마시라. 그럴 일은 없다.


만나기로 한 당일이 되자 내 마음은 고장 난 엔진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 아.. 오늘 무슨 얘기를 나누지?

- 제발 오늘은 입 좀 닫고 내 얘기는 줄이고, 상대방의 얘기를 듣자.


목표는 하나였다. 쓸데없는 내 얘기는 최대한 줄이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


약속한 장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도착했다는 메시지 후 그가 나타났다. 보는 순간 어색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프리맨님?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아하하.. 제 이름은 ooo이에요."


평소 이명이나 별명으로 불리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지만 왠지 이번엔 이름으로 불려도 괜찮을 거 같았다.


멀쩡한 이름대신 영어 이름이나 별명으로 불리길 선호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미련처럼 느껴졌다. 아직까지도 스타트업에 속했을 때의 그 감정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일까 싶기도 했다.


- 이제는 그만 좀 놓아주라고.


공교롭게도 우리는 동갑이었고 같은 세대를 살아온 만큼 공통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나이가 전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살아오며 내 머리에 장착된 S/W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하하. 제가 아마 유튜브 가장 최근 구독자 일걸요?"

"에..? 정말요?? 아니 어쩌다 그런 누추한 곳을.. 아니다. 감사해요!"


- 누추하다고 표현하면 안 되지. 누추하다 아니다는 내가 판단할 몫이 아니야.


굉장한 충격이었다. 지인 몇 명의 구독을 제외하면 사실상 10명도 안 되는 구독자가 있는 셈인데 그중 한 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창 유튜브를 올릴 때 내가 고민했던 건 어떻게 하면 꾸준히 지치지 않고 올릴 수 있을까에 대해서였다. 당시 생각한 콘텐츠는 이랬다.


- 어차피 글은 매일 쓰고 있으니. 그 글을 오디오북처럼 들을 수 있게 바꿔볼까? 그러면 올릴 콘텐츠는 걱정할 필요 없겠네?


분명 지속할 수 있는 콘텐츠인 건 맞았지만 점점 의욕이 꺾였다.


"오빠..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이렇게 만들면 누가 듣겠어? 일단 재미가 너무 없고 어색해. 직접 녹음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가? 하긴.. 어색하긴 하다."


아내의 말 때문이 아니라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아내가 먼저 지적해 줘서 접을 구실을 찾을 수 있었다.


콘텐츠를 만드는 내내 재미라고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억지로 하는 일. 물론 어떻게 재미있는 일만 할 수 있겠냐만은. 지치긴 지치더라.


그렇다고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퐁당퐁당 건너서 하루는 글 쓰고 하루는 영상을 만드는 형태도 있었겠지만 최소 한 가지에는 집중하고 싶었다. 글쓰기도 그렇고 영상 만드는 것도 전부 미숙하다면 이미 루틴화된 글쓰기를 유지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포기한 영상 콘텐츠 제작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히는 듯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내 앞의 구독자와 대화를 나누며 많은 걸 배웠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시각과 감사함이었다.


- 아.. 이렇게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였구나.


그래서 하면 안 되는 망언을 쏟아냈다. 기억을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유튜브 영상 올려볼게요!"


하하.. 분위기에 취해 쓸데없는 말을 해버리다니.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자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순식간에 2개월 정도가 지나갔다. 2개월 간 단 하나의 영상은 만들지도 못한 채.




2개월 간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고민이라도 하지 않고 마음이라도 편했으면 좋았을 걸. 이런 [고민중독자] 같으니라고.


그러다 며칠 전 아내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내 친구가 유튜브 콘텐츠 제작한대! 혼자서 진짜 잘하더라."


아내는 그저 일상의 대화를 전달했을 뿐이었지만 듣는 순간 괜히 나 혼자 뜨끔했다. 그리고 조바심이 생겼다. 내가 하고 있지 않은 일을 한다는 데 축하는커녕 괜히 혼자 머쓱해져서는 참.


"혹시나 이 글을 읽는다면 사과할게요. 제가 원래 속이 좁아서 그렇답니다. 흑흑. 그래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어요!"


이런 일뿐만 아니더라도 보통 내 주변의 누군가가 새로운 걸 시작할 때면 매번 혼자 뜨끔해지곤 한다. 특히 내가 계획 중이었거나 미루는 일이라면 더 그런 경향이 생기는 듯.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그냥 해봐. 망하면 접고 다시 하던가 하면 되지. 참 피곤한 사람이네 오빠는."

"그래? 안 그래도 나도 해보고 싶었어 다시. 그런 의미에서 일단 고프로 하나만 사도 될까?"

"죽을래? 친구는 그냥 폰만 가지고도 잘만 찍던데. 맨날 장비 탓이야! 저번에 사놓은 것도 뭐 한다고 사더니 쓰지도 않고 진짜!!"


아아.. 망했다. 차라리 몰래 사고 용서를 빌었어야 하는 건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며 어쩔 거냐고 당당하게 나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유튜브를 핑계로 고프로 하나 사보려던 내 계획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유튜브의 지속성 및 성공과 관련한 조언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Just keep uploading.]


누가 봐줄지, 잘할 수 있을지 여부를 떠나 일단 꾸준히 업로드를 하라는 조언. 물론 말은 쉽다. 대체 어떤 콘텐츠를 찾아내서 꾸준히 올려야 한단 말인가?


그 문제에 대한 정답은 누구도 알려주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결국 하느냐 마느냐. 이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권한은 스스로 정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도 도전할 때가 즐겁다고 하지 않나.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접었다 시도하기를 멈추지 못하는 걸 보면 분명 아쉬움이 많아서 일거라 생각한다. 결과의 좋고 나쁨은 어찌할 수 없다 쳐도 후회를 남기지 않는 건 중요한 부분일 것이리라. 그러니 지금의 고민과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기회가 닿는다면 미뤄뒀던 꿈을 향해 다시 한발 내디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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