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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Nov 07. 2024

오늘은 어디로 놀러 갈까?

157 걸음

'집중.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는구나‼️'


아이들과 함께 무인키즈룸에 와서 글을 쓰려한 내 탓이지.


"아빠? 그냥 놀아주면 안 돼요?"


오늘따라 같이 놀아주던 형은 머리가 아프다며 매가리 없이 바닥에 누워버렸다. 그럴수록 동생은 나와 아내를 찾기 바빴다.


"엄마~ 일로 좀 와봐. 아.. 형아 그냥 나랑 놀아주면 안 돼? 형이 안 놀아주니까 재미없어.."


하지만 아파서 헤롱거리는 상태의 형이 어떻게 놀아줄 수 있단 말인가. 눈높이가 맞지 않는 엄마나 아빠가 억지로 놀아주는 수밖에.


"아니 꼭.. 여기까지 와서 글을 써야겠어?"


언제는 써도 된다더니.




힘 없이 누워 있는 큰 아이를 보니 오늘 일정은 글렀구나 싶다. 분명 방금 전까지 김밥에 컵라면을 아주 맛있게 흡입했는데.


'혹시 꾀병 부리는 거 아님?'


어제저녁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했던 걸 보면 꾀병은 아닌 거 같은데.. 여하튼 그냥 쉬게 내버려 둬야지. 둘째와 엄마는 자석 낚시를 즐기는 중이다. 덕분에 모든 광경을 관찰자 시점으로 지켜보며 이런 글도 쓸 수 있게 됐다.


무인키즈룸은 두 번째로 와봤는데 전체 공간을 대여할 수 있다 보니 너무 좋다. 물론 시끌벅적하게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분위기는 나지 않지만 쾌적하고 한적함이 느껴져서 좋은 점이 있다. 지금처럼 노트북을 가져오면 글도 쓸 수 있고, 밥이나 간식거리를 포장해 와서 간단히 먹기에도 좋고.




아침부터 나름 장거리 운전을 한탓에 정신이 조금 몽롱하다. 이 와중에도 뭘 끄적여 보겠다며 노력 중이긴 한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 보니 눈으로 보고 있는 모습을 써보는 중이다.


며칠 사이에 날씨가 급격히 추워진 탓에 얇게 준비해 온 외투와 바지가 원망스럽다. 외출복을 얇게 입는 바람에 큰 아이가 어지러워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잠시 쉬고 빨리 회복되기를.


오늘따라 특히 마음이 여유롭다. 고속도로를 달려오면서 차도 막히지 않아 더 여유롭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운전을 했다면 기본적으로 막히곤 했을 텐데, 지방에서 운전을 시작해 좋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대신 정체를 겪거나 좁은 공간에 주차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에 서울만 놀러 가면 헤매고 있긴 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오늘처럼 평일에 학교를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파도 학교 가서 아프라던 시절이었기에, 열이 펄펄 끓는 날에도 꾸역꾸역 학교를 가곤 했었다. 개근을 하지 못하는 건 죄를 짓는 느낌이었고, 지각이나 결석 또한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 애들은 툭하면 학교를 빠진다. 물론 학교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존재하지만 다소 형식적이다. 가족과 함께 놀러 다닐 명분이 있다면 큰 걱정 없이 빠질 수 있다.


지방 학교에서 교육을 하다 보니 지인들을 통해 듣는 세상과 딴판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특히 사교육에 있어서는 180도 다른 세상이라고 봐도 될 거 같다. 물론 지방에서도 교육열이 강하다면 사교육을 시킬 순 있겠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이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충분히 공부할 시간이, 아니 지겹도록 해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왔을 때부터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욕심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부모의 욕심을 토대로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만약 공부하고 싶어 하거나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 얘기한다면 시켜줄 의향은 있다.


-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시네요. 요즘 애들이 배워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맞기는 한 거 같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다 보니 지금의 삶을 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많이 놀고, 자연친화적으로 지내기를 바라고 있다. 분명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삶의 무게가 찾아올 테니, 그전에 즐길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누려봤으면 좋겠다.


회사에 다닐 때는 나와 아내 둘 다 시간 내기가 힘들었다. 주말이 있기는 했지만 운전을 하지 않았고 지금보다 아이들의 나이도 어렸기에 놀러 다녀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동네 산책 또는 지하철 몇 정거장 내에서 이동하는 게 전부였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많이 놀러 다니는 거 같기도 하다. 아이들의 눈에 놀러 다니는 우리의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우리 이렇게 놀러 다니다 거지되는 거 아니에요? 너무 걱정되는데.. 그만 놀러 다니면 안 돼요?"

"걱정 마. 우리 거지는 아니야."

"그걸 어떻게 아는데요? 부자예요 그러면?"

"아니 부자는 아니야.."

"그러니까 거지잖아요?"

"아니야 서민이야. 그런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 마."


하지만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가계 상황에 대한 공유도 어느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히려 공유했을 때 아이들의 걱정이 더 커지는 건 아닐까?


놀아도 걱정, 집에 있어도 걱정, 온통 걱정 투성이다. 그래도 같이 놀러 나온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형편이 어느 정도로 좋아져야 걱정이 사라질지는 모르겠다. 아마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진다 해도 걱정은 안 사라지지 않을까?


"아빠! 저 이제 괜찮아요!"


드러누워 있던 아이가 드디어 벌떡 일어났다.


'오이! 믿고 있었다고!'


아이들의 얼굴에서 걱정이 어느새 사라졌다. 둘이서 깔깔거리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우리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고 재밌는 하루를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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