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등
[주의] 작품의 특성상 잔인한 표현이 있을 수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법주 스님에게 다가가던 김시헌은 기세 때문에 순간 움츠러들었다.
”이.. 이놈. 하지만 사람을 헤칠 수 있겠느냐?”
”옴 기리나라 모나라 훔 바탁”
스님은 그런 악귀의 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주문을 외우고 오롯이 정신에 집중하며 틈을 노리고 있었다. 주문이 계속될수록 김시헌은 육신을 조절하기 점점 힘들어졌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자 조급함이 생겨났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영혼을 부숴버릴 테다.’
스님에게 가위를 들고 다가오던 곽의원의 몸이 멈칫하는 걸 보고 주문의 효력이 발생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빙의된 악귀를 쫓아내려면 완벽한 제압을 통해 천도시켜야 하는데 현재 힘으로 악귀를 제압할 수 있을지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으악!”
김시헌은 들었던 가위로 육신의 허벅지를 찔렀다. 곽의원의 비명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퍼졌다. 허벅지에 박힌 가위로 인한 고통을 강하게 느낀 곽의원의 영혼은 다시 어두운 심연으로 숨어들어갔다.
”네놈이 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이 몸의 주인도 성치 못할 것이다. 중이 돼서 눈앞의 사람을 죽일 셈이냐?”
”그만 멈추거라. 죄 없는 사람까지 죽일 이유는 무엇이냐!”
”내 눈에 띈 죄. 하필이면 그때 내 주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법주 스님의 눈에 불이 일렁거렸다. 온 힘을 다해 악귀를 처리하고 싶지만 지금은 하필 사람의 몸에 들어가 있다. 이대로라면 결국 홍심도 그 이전에 자신부터 무기력하게 죽을 상황이다.
”상황을 이해했나 보군.”
김시헌은 허벅지에 박힌 가위를 뽑아 음기를 실어 법주 스님을 향해 던졌다. 눈을 노리고 던졌지만 빗겨나가면서 광대뼈 부근의 살이 찢겨나간다.
”윽.”
살이 찢겨나간 고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고통보다 곽의원의 허벅지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이대로라면 본인도 곽의원도 홍심도 그 누구 하나 구하지 못하고 다 같이 죽을 것을 직감했다. 선택을 해야 한다. 다 같이 살 수 없다면 지킬 수 있는 것만이라도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래 지내지 않았지만 스님은 홍심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한다.
”인간을 죽일 셈인가? 네놈 눈빛이 변해가는 걸 보니 살생은 개의치 않으려나 보구나? 이것이 네놈이 평생 수련해 온 불가의 법도였나?”
김시헌은 가방을 뒤져 바늘을 찾아냈다. 바늘에 음기를 실어 날릴 생각이었다. 중의 단전을 끊을 수 있다면 제 아무리 강한 법력을 가졌어도 무용지물이 될 것을 확신했다. 한편 법주 스님은 잠시의 번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을 깨닫고 스님으로서의 자신을 내려놓기로 한다.
’부처님. 죄송합니다. 죄인은 죽어서 죄를 갚겠습니다. 제겐 살려야 할 목숨이 더 소중한 걸 보니 평생을 수련해 온 것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거 같습니다. 부디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스님은 움직일 수 있는 팔을 들어 네 번째 손가락을 어금니로 강하게 물고 잘근잘근 씹기 시작한다.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는 걸 감수하면서 속으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그 광경을 발견한 김시헌은 깜짝 놀라 빠르게 바늘을 던지려고 한다.
”옴 아모카 미로자나 마하모나라 마니바나마 마바라바라 말다야 훔!”
이빨로 잘근잘근 씹힌 네 번째 손가락의 뼈 마디가 드러났다. 육체의 일부와 맞바꾸는 금단의 주문을 사용하며 뜯어진 손가락 마디를 악귀에게 법력을 실어 던졌다. 형체를 알 수 없게 흐물흐물해져 있는 살덩이와 피가 엉겨있는 모습이다. 김시헌도 이에 질세라 강한 음기를 실어 바늘에 집중시켜 스님의 단전을 향해 날렸다. 강한 음기 때문에 조그만 바늘에 다섯 자 정도되는 푸르스름하고 기분 나쁜 기운이 감돌았다.
”펑!”
굉장히 큰 폭발음이 생기며 곽의원의 몸이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스님의 주술은 육체와 영혼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곽의원은 그대로 날아가 몇 바퀴를 데굴데굴 굴러갔다. 김시헌의 영혼도 타격을 입으면서 몸에서 튕겨져 나왔다. 법주 스님은 바늘을 단전에 정통으로 맞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걸 느끼며 패배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꼴좋구나. 결국 나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김시헌의 영혼도 방금 일격에 당해서인지 영혼의 일부가 사라져 있었다. 흘러넘치던 힘이 많이 빠져나감을 느끼며 빨리 중을 해치우고 몸을 차지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예감한 법주 스님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며 마지막 주문을 완성시키기 위해 나지막하게 주문을 뱉어내고 있다. 뜯긴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피를 이용해 바닥에 글자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몸속을 파고 들어온 음기 서린 바늘로 인해 정신이 아득해지려고 한다.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을 위하고 누구를 위한 행위였는지 조차 순간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님의 행동이 잠시 멈춘 걸 지켜보던 김시헌은 본인의 승리가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하지만 보통 중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경계를 늦추진 않는다. 김시헌은 문득 살아생전 본인의 마지막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경계심을 잃어 무기력한 죽음을 맞이했던 그 일. 치욕스럽고 원망스러웠던 그날.
’똑같은 일을 두 번 당할 순 없지.’
법주 스님은 계속해서 마음의 번뇌와 싸움 중이다. 이대로 편히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점점 강해져 간다.
’지승아. 들리느냐.’
어지러이 마음속을 헤매던 스님은 자신의 본명이 불려지자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뉘신가요? 어찌 제 본명을 알고 계십니까?’
’나는 너와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 있을 존재. 지켜야 할 숙명이 있다면 받아들이거라.’
’부처님이십니까?’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부름으로 인해 정신이 돌아왔다.
’아차.. 마지막 주술을 완성시켜야 해.’
스님은 필사적으로 바닥에 미완성된 글씨를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김시헌도 제지하기 위해 스님에게 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까의 일격 때문에 영혼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아 졌다. 굉장히 큰 압력이 본인을 짓누르고 있다고 느껴진다.
”타다타 옴 아나레 아나레 비사다 비사다 바이라바지라타레 반다반다 반다네반다네 바이라바 지라파네 파트 훔 브룸 파트 스바하 나무 스타타가타야 수가타야 아르하테 삼먁삼붇다야 사단투 반트라 파다 스바하 타다타 옴 아나레 아나레 비사다 비사다 바이라바지라타레 반다반다 반다네반다네 바이라바 지라파네 파트 훔 브룸 파트 스바하 나무 스타타가타야 수가타야 아르하테 삼먁삼붇다야 사단투 반트라 파다 스바하..”
법주 스님은 온 힘을 다해 큰 소리로 주문을 반복해서 외치기 시작한다. 바닥에 피로 쓰인 글자에 힘이 실리며 검붉은 피가 일렁이더니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검붉은 피로 쓰인 글자는 순간 공중으로 떠올라 그대로 스님의 머리에 타들어가듯 각인되었다.
”히마바트의 딸 칼리. 계약이 성립되었다.”
알 수 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스님의 입에서 나왔다. 모습도 이전 법주 스님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다가오던 김시헌은 달라진 모습에 두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내.. 내가 죽어서도 공포를 느낀다고? 웃기지 마라.’
김시헌은 잠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보며 죽은 듯 누워 있는 육신에 눈길이 갔다.
’어쩔 수 없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