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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게매니아 Mar 01. 2017

먼지털이가 필요하다.

From '10X10'

먼지털이를 샀다. 자취생활을 시작한지 1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청소를 하다 문득 걸레의 무용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청소를 할 때, 우리는 무언가를 일단 걸레로 닦고 보는 경우가 많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온전한 자립을 위한 공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배워오기 때문이다. 학교가 마친 뒤 청소 시간, 청소 당번은 당연하다는 듯이 걸레를 빨아온다. 그 걸레로, 우리는 창틀과 칠판 윗동 같은 먼지가 쌓일 법한 곳들을 구석구석 꼼꼼히 닦는다. 그냥 그렇게 10년 넘는 세월을 닦아왔고, 그렇기에 수십년의 세월을 그냥 그렇게 닦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를 조금만 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것이다.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어떤 물체를 무턱대고 걸레로 닦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TV 위에 먼지가 앉아있다. 사실 대부분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청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마 TV 위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슬쩍 볼 것이다. 다음 과정은 하나의 자동화 단계 급이다. 걸레를 빤다. 그리고 TV 위에 걸레를 얹고 일단 문지르고 본다. 그래, 청소는 역시 걸레질이 완성이지! 그리고 대다수 이들은, 청소가 끝난 뒤 필연적으로 말라 비틀어진 먼지들을 TV 구석구석에서 발견하게 된다. 먼지를 없앤다고 걸레질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먼지는 그 자리에 고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먼지털이가 필요한 이유다. 먼지를 떨고, 위를 닦는다. 정전기에 부딪혀 먼지털이에 모인 먼지는 밖에다 툭툭 몇 번 쳐주면 알아서 날아간다. 먼지를 떠는 과정 있어야, 말라 비틀어진 먼지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래서 먼지털이를 샀다. 자취 생활 1년만에, 내가 하는 청소가 아무 의미 없는 공노동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직후였다.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가 쌓여있는 곳에 잘 부풀어 오른 먼지털이를 갖다댔다. 1년 내내 꿈쩍도 하지 않던 먼지는, 그제서야 자신의 잔해를 남기지 않은채 조용히 TV 위에서 먼지털이로 자신의 위치를 옮겨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가 말라 비틀어진 먼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혹은 그저 이런 먼지를 일일히 떼어내기만 한다면 어떤 결론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운이 좋으면 별 일 없이 그냥저냥 깔끔한 척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열심히 청소를 했음에도 누군가가 말라 비틀어진 먼지를 보고 청소를 하지 않았다며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말라 비틀어진 먼지가 그대로 굳어 버린다면 TV 패널에 손상을 줘 TV를 못보게 만들지도 모른다. 마지막 경우를, 우리는 흔히 ‘돌이킬 수 없는 경우’라고 얘기한다.


살다보면 경험을 해봐야만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를 깨달을 때가 있다. 미리 알고 비켜갔으면 참 좋았을텐데, 대다수가 겪는 대부분의 경험은 그러지 못한다.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잘못을 깨닫고 이를 고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경험을 하고도 정신을 못차린채 마이웨이로 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곤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 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사소한 경고를 정확히 잡아낸 이는 한 번의 실수로 끝나지만, 사소한 경고를 잡아내지 못한 이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경로를 타고야 만다.


2016년, 우리는 말라 비틀어진 먼지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먼지털이를 사려 했고, 어떤 이들은 “먼지털이 따위는 필요없다”며 말라 비틀어진 먼지 따위는 어디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를 해댔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말라 비틀어져 굳어버린 먼지를 떼어낼 것이냐 말 것이냐.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먼지털이를 사지 않는다면 언젠가 말라 비틀어져 굳어버린 먼지는 어딘가에 깊이 상처를 낼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 상처로, 우리는 TV를 버려야 할 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먼지털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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