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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게매니아 Jun 05. 2017

어시스턴트를 하는 이유

한 인터뷰에 부쳐

어시스턴트라는 직종이 있다. 정확하게는 직종보다 직급에 해당하는 단어다. 요즘은 꽤 많은 직종에서 이 '어시스턴트'라는 단어를 쓰지만, 여전히 주는 예술계다. 주로 에디터, 혹은 작가를 도와 자료를 수집하거나 촬영 보조, 채색 보조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조수'다.


나에게 있어 어시스턴트에 대한 이미지는 꽤 강렬하다. 예전에, 한 메이저 잡지사의 팀 어시스턴트로 지원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조그만 독립 잡지의 피쳐 에디터로 있던 중이었다. 운좋게 서류 심사에 합격했고, 잡지사에 방문해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 중 '독립 잡지에서 에디터로 활동하다 우리에게 오면 당신이 있던 독립잡지에서처럼 개인 기사는 못쓴다. 거의 대부분 허드렛일 뿐이다. 괜찮겠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메이저 잡지의 에디터가 되기 위해서는 메이저 잡지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나는 여기에서의 어시스턴트를 그 메커니즘을 알기 위한 기회로 삼고 십다' 정도로 답변했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어시스턴트는 그런 존재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봐도, 직접 면접에서 얘기를 들어봐도 어시스턴트란 고되고 힘들고 지치는 가장 대표적인 직급이다. 허드렛일도 많이 해야하고, 일정 기간이 되지 않으면 글을 쓸 기회도 잘 주어지지 않는다. 비단 잡지계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어시스턴트'란 직급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직종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숙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어시스턴트를 그리도 하려 할까. 잡지 에디터가 되리라는 보장도, 디자이너로 올라가리라는 보장도 없는 어시스턴트직을 왜 그리도 하려고 '저요! 저요!' 손을 들고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말한 듯 보이지만, 사실 앞서 말했던 면접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런 문제 의식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다. 왜 어시스턴트를 할까. 지금 내가 속한, 그리고 앞으로 내가 속할 집단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그 집단의 시스템을 신체적으로 체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어시스턴트라는 직급이 존재하는 직업을 찬찬히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알 수 있다. 바로 상황과 아이템에 대한 '종합적 접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직업이라는 점이다. 내가 겪은 잡지 에디터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기사를 기획한다. 그 기사를 취재하는건 당연하고, 아이템 기사면 아이템을, 로케 기사면 장소를 협찬받아야 한다. 인터뷰의 특성상 연예인이나 셀럽도 소개해야하고, 이에 대한 화보 역시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편집과 글에 관한 프로다운 소양은 기본이다. 글 좀 쓸 줄 안다고 이런 종합적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못한다. 절대로.


어시스턴트는 그런 존재다. 가장 밑바닥에서 직접 뛰고 구르면서, 내가 겪을 사회와 집단의 시스템을 직접 몸으로 체화시켜낸다. 남들이 보기엔 허드렛일이지만, 그들에게는 경험 하나하나 자체가 그야말로 하나의 '능력'화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 자체가, 나중에 그들이 이 쪽 계열의 직업을 가졌을 때 하나의 자양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봉에도, 야근에도 그들이 애써 버텨내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이쪽 계통에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나 보다. 어시스턴트를 도제식으로 시스템을 체화시켜야 할 대상이 아닌, 그저 '개인 공장 노동자'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내가 필요할 때 아이템을 쑥쑥 뽑아내고 귀찮은 일만 맡기며 어시스턴트의 성장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그런 '메인'들 말이다.


꽤 오래 전, '마리킴'이라는 팝 아티스트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마리킴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 분의 인터뷰에서 놀란 부분은, 바로 이 어시스턴트에 대한 언급 부분이다.


“어시스던트 시스템이 잘 돼 있어요. 제가 원하는 게 있으면 거기에 필요한 사람이 있죠. 수년 간 그렇게 일을 해 와서 제 주변에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영화감독이 그런 것처럼 작가가 글로벌해지려면 혼자 할 순 없잖아요. 이런 시스템을 잘 구축했기 때문에 다작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영화도 찍고 여러 관심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거죠.”

팝 아티스트 마리킴 "지금은 작가 개인이 브랜드로 활동하는 시대" 中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거기에 필요한 사람이 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다작을 할 수 있다. 덕분에 나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다. 이건 '파트너 시스템'에 들어가야 하는 얘기다. '어시스턴트 시스템'이 잘 돼있다라는 얘기 다음에 나올 얘기는 아니다.


위에서 인용한 마리킴의 말을, 나는 "어시스턴트에게 내 스타일의 아이템을 뽑아내고, 그들이 잘 뽑아내니까 작품이 당연스럽게도 많아진다. 작품이 많아지니 나는 한 눈을 팔 수 있고, 여기저기 숟가락도 좀 얹을 수 있다." 정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어시스턴트를 그녀의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녀가 어떤 '어시스턴트 시스템'을 운영하는지는 모르겠다. 원래 그녀는 '어시스턴트 시스템'이 아닌 다른 단어를 얘기했는데 기자가 실수로 '어시스턴트 시스템'이란 얘기를 적었을 수도 있다.(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녀가 '어시스턴트 시스템'이란 단어를 제대로 얘기했다면, 그녀의 어시스턴트는 적어도 내가 알고 느껴왔던 어시스턴트의 의미는 전혀 가지지 못한 듯 하다. 


그럼에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녀의 '어시스턴트 시스템'이 나의 '어시스턴트 시스템'보다 보편적 사회 시스템으로 기능할 확률이 더욱 높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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