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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게매니아 Mar 11. 2021

세상이 회색으로 보이는 순간

어쩌면, 잘못 살고 있었을지도 모를 나에 대한 반성문

세상이 회색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다. 도시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밝은 것 같은데, 총천연색의 풍경에 녹아드는 것 같은데 나의 시선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이질적인 모노톤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은 딱 중간 정도의 친밀함을 가진 친구였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고급 호텔 예식장에서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두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야말로 총천연색이었다. 그 순간, 그 모든 풍경이 내 눈에는 모노톤으로 보였다.


‘실질적으로’ 결혼을 포기한지는 좀 됐다. 여기서 실질이란 말은, 이상과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상은 물론 결혼에 성공하는 거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되는 내 특성 때문이다. 현실은 좀 다르다. 누군가를 만날 시간도, 여유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시간이 되면 마음의 여유가 없고, 시간도 되고 마음의 여유도 있으면 몸이 꼭 안 좋다. 혹자는 그렇게 얘기한다. 그렇게 분석할 시간에 누구를 만나겠다. 말이 쉽지, 병원 다니고 상담센터 다니면서 누구를 만나기란 생각보다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직장에 들어온 이후 내 인생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오후 출근-새벽 퇴근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떠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저녁에는 퇴근을 해야 누군가를 만나거나 새로운 인연을 찾을 텐데, 퇴근을 할 수 없으니 스케줄 맞추기는 늘 요원한 일이었다. 주말이 없고 휴일이 비정기적인 직업의 특성 탓에 짧았던 몇 번의 연애는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 어쩌다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때 만났던 한 번의 연애는 그나마 좀 나았지만, 언제 불안정한 생활로 돌아갈지를 모른다는 압박감에 생각보다 이른 이별이 찾아온 적도 있었다.


연애에서만 회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강한 업무 강도와 누적되는 스트레스 탓에 병원을 가는 빈도가 점차 잦아지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날에는 몸 전체가 온통 가려워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일과 시간에 쫓겨 사는 삶이 몇 년 지속되다 보니 취미를 가질 생각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그나마 적응되는 게 하나 있다면 늘어나는 주량이었다. 처음엔 한 병, 한 병 반을 마시더니 몇 년이 지나자 세 병을 마시고도 멀쩡한 나를 발견하곤 한다. 뭐라도 하나 얻으니 좋다고 해야 하려나.


이렇게 살다 보니 세상이 회색빛으로 보이는걸 전혀 모르고 살았다. 마치 찬 물이 가득 든 양철통에 개구리를 넣어놓고 물 온도를 서서히 올리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총천연색이었던 내 세상은 요 몇 년 새 서서히 회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취미를 없앴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기피하는 일을 합리화했으며, 직장인이면 병원 정도는 당연히 가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하는 순간을 나는 깨닫지 못했고, 나도 모르는 새 내 시야는 완전한 회색빛으로 변해버렸다. 물론 나는 여전히 내가 보는 시야는 총천연색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 생각을 완전히 뒤엎은 게 친구의 결혼식이었던 셈이다.


그 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희망에 가득 차있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걸맞은 가장 행복한 모습의 사람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선배도 모두 총천연색의 세상을 온전히 누리고 있었다. 그래, 이런게 행복이구나. 직장이 엿같고 짜증 난다며 투덜대는 사람들의 눈빛에서는 삶에 대한 희망과 재미가 읽혔다. 내 모습과는 분명히 달랐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감정이 없이 그냥 살아가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감정을 느끼고 생동감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 자신이 속했던 틀이 붕괴되는 걸 바라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날, 내가 겪었던 고통은 그런 류의 알지 못했지만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졌다. 생활 패턴을 바꿔보고, 아침에 운동을 시작하고, 다른 취미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금은 힘들지만 대외적인 상황이 좋아지는대로 조금씩 사람도 만나볼 참이다. 무엇보다도, 앞으로는 회색빛 세상을 보면서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싶지 않아졌다. 인생의 모토가 ‘어떻게든 되겠지’였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되도록’ 두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절실하게,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보는 방법을 찾아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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