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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게매니아 May 13. 2022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

한 달에 한두번씩은 브런치앱에서 알림이 오는 편이다. 때때로 구독 알림이 올 때도 있고(도대체 어떤 글을 보고 구독을 하신거죠...?!), 누군가가 내 글을 라이킷했다는 알림을 받을 떄도 있다. 그 중에 제일 흔한 알림은 브런치팀에서 보내는 알림이다. 참으로 바지런하게도, 브런치팀은 내게 30일마다 한 번씩 글을 쓰라고 압박(?) 아닌 압박 알림을 보낸다.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360일이 지났어요 ㅠ_ㅠ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주시겠어요? ꈍᴗꈍ"


알림을 받을 떄마다 두 가지 감정을 함께 느낀다. 하나는 다짐. 아, 브런치가 나를 독촉하는 중이구나. 얼른 글을 써서 올려야지라는 감정. 또 다른 하나는 부담감이다. 브런치는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을 원하는데, 사실 나에게는 시선이라고 할 것이 없다. 문자 그대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를 살아내다보니 어느새 '나만의 시선'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잃어버린지 꽤 되었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채플린이 바지런히 기계의 나사를 조으는 것마냥, 나 역시 비슷한 삶을 살게 되었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그럼 니 직업은 뭔데? 제 직업은 말이죠, 예능PD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능 프로그램의 편집PD를 맡고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가장 창조적인 직업군 중의 하나로 느껴질 직업이지만, 사실 다른 직장인들과 별반 차이는 없다. 차이점이라면 직장인들은 새벽에 출근하고 PD들은 오후에 출근한다는 것? 그리고 직장인들은 저녁에 퇴근하지만 PD들은 새벽에 퇴근하거나 밤을 샌다는 것. 기실 엄청 창조적이지도 않다. 컨텐츠를 만들어내지만, 무언가를 만든다는건 다른 직장인들도 늘 해나가는 거니까. 그냥 다람쥐 쳇바퀴 돌듯 편집기 앞에 앉아서 그 날 편집할 분량을 다 끝내는 것. 그 뿐이다. 그러니 그 놈의 '작가님의 시선'이 생길리가 있나.


한 때 미친듯이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글을 씀으로써 소소한 행복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나만이 보유한(기실 했다고 믿었던) 시선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던 시절이다. 그렇게 여기저기에 글을 투고했고,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종종 글을 올렸더랬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언론사에 취업하게 된다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풍부한 글을 쓸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도 했더랬다. 기자나 PD는 직장인보다 조금 더 다른 삶을 살 것이라 믿었으니까.


방송국에 들어간 이후의 현실은 냉혹했다. 글을 쓰기는 커녕 잠조차 자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글과 일을 병행하기란 사실상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신적 여유가 아예 사라진 시기, 그런 시기를 무려 5년을 보내고 나니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아있을 턱이 없었다. 휴가때는 에너지를 충전하기 바빴고, 일을 시작하면 그 에너지를 팡팡 써대는 삶의 반복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 싫어 언론사를 선택했지만, 현실은 직장인보다 더 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해가 뜨면 눈을 떴고, 편집실로 나가 편집을 했다. 남는 시간에 잡무를 처리하다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어 있었고, 택시에 몸을 맡기며 퇴근하는 삶의 반복이었다. 어느새 몸과 마음은 쳇바퀴에 적응했고, 나는 구조에 순응한 가장 표준의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여기서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글이라면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퇴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같은 내용으로 글을 이어나가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수는 없다. 퇴사하기엔 꽤 많은 월별 카드값과, 7개월짜리 할부로 끊은 자켓이 눈물을 훔치며 내 사원증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예능PD를 빙자한 직장인1은 오늘도 뚠뚠 열심히 뚠뚠 편집기를 돌리러 회사로 출근합니다.




브런치야 보아라. 이게 바로 니들이 원하던 '작가님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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