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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속 May 29. 2016

흐릿한 시선, 모두의 기억


박제가 아닌 채색

어떻게 보면 보통 생각하는 ‘ 나온 사진 기준은 다분히 획일적인 유형에 머물러 있다. 사람은 눈을 감기도, 뜨기도 하고 풍경은 멈추기도, 질주하기도 하는데 유독 사진에 찍힌 장면은 흔들리면  되고 사람은 눈을 감으면  된다. 그래서 카메라라는 기계를 쥐어 주면 의례 기합이 바짝 들어간 스나이퍼 처 자세가 변하는지도 모르겠다. 박제할 장면을 완벽한 때에, 정확한 설정값으로 저격할 중책이 주어진 것이니.


아마도 이번 전시의 작품 중 상당수는 사람들이 찍자 마자 무심코 지워 버리는 사진에 가까울 것 같다. 선명한 사진을 향해 겨누지 않고 마음의 지령에 따라 풍경의 흐름에 카메라를 잠시 띄워놨기 때문이다. 흔들리면 흔들리게, 어두우면 어둡게, 또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이 너울거려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면, 그렇게. 내 눈이 보고, 또 내 마음이 받아들인 궤적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긴다.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홀림의 순간들, 가령 형광빛 초록을 과시하며 눈을 간지럽히는 봄 산책길의 새싹 줄기나, 조금 일찍 나선 새벽 드라이브 길의 아득한 속도감, 혹은 한참을 졸다 일어나 바라본 버스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우주적인 밤 풍경 같은 낯선 환영의 순간들이 그렇게 생생히 담겼다.


박제하듯 도려내는 식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고, 시간을 들여 채색의 결을 입히듯 흐릿하게 담아내야 하는 류의 장면도 분명 있는 것이다.


모두의 기억

시간과 장소가 묘연해진 이미지는 가사가 입혀지지 않은 연주곡처럼 사방으로 열린 여백을 갖게 됐다. ‘무얼 찍은 걸까’ 보다는 ‘무엇이 보이고 느껴지는가’에 대해 좀 더 집중해 보기를 기대한다. 같은 사진을 보고 누군가는 바다를, 누군가를 대지를, 또 누군가는 우주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 흐릿한 사진들이 모두의 기억을 담아낸 사진이 되기를.




지난 5월 21일에 시작해 앞으로 6월 13일까지 진행되는 내 사진전 '흐릿한 시선, 모두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전시장에 비치하기 위해 쓴 작가노트로 가볍게(?)시작한다. 물음표의 의미는 사실 두 달 넘게 걸려 쓴 글이기 때문이다. 전시를 시작해 내 사진을 보여줘야 하는 입장에 서고 보니 사진에 집중된, 사진이 주인공인 기록 공간이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업 작가가 아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내 준비가 여기까지 못 미친 것도 사실이다. 작가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 겪는 시행착오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사진 자체에 집중하는 서랍을 한 칸 마련해보기로 했다.


열정과 아이디어가 솟구치는 천재 예술가 부류와는 거리가 먼 보통 사람이니 분명 무척이나 진도가 느리고, 어쩌면 부도를 내버릴 지도 모르겠지만-

김민혁 사진전 ‘흐릿한 시선, 모두의 기억’

5월 21일~6월 13일

문래동 사진공간 빛타래

평일 13:00~20:00 주말 11:00~21:00

매주 화,수 휴관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3가(광성절곡 빌딩) 54-16 2층

저는 (주로)토,일 오후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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