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취향의 문제겠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전쟁이 터질 때마다 외국으로 뛰쳐나가거나 아프리카의 산에 오르거나 카리브 해에서 청새치를 낚고는 그 일화를 소설의 소재로 삼는 방식을 나는 기꺼워하지 않는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무슨무슨 스페셜’과 발상의 근본이 똑같지 않나. 그런 식으로 글을 쓰다 보면 점점 그 경향이 심화되어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소재를 찾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中
전시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유형 중 하나가 '어디에 가서 사진을 찍는가'인 것 같다. "카메라 뭐 쓰세요, 포토샵은 하시나요?" 같은 질문에 비하면 그래도 생산적인 편이라고 느껴지지만 여전히 대답하기는 좀 곤란하다. (1,2위를 다투는 상투적인 그 질문들에 대해서도 한 번 써볼까 생각은 하고 있다. 대략적인 전시 작품들 모습은 https://brunch.co.kr/@mintyblue/15 를 참조)
대중 입장에서는 작가의 작품 세계와 작가 스스로가 처한 현실의 세계를 다소간 혼동하게 마련인데, 내 사진의 경우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특출난 장소 같은 걸 어딘가 숨기고 있거나, 묘한 장면을 찾아 여행을 자주 나서는 인상을 풍기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저 질문이 대답하기 머쓱하다. 정확한 대답은 허무하게도 "질문이 틀렸습니다" 쪽이다. 특별히 사진 찍자고 어딜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일출을 기다린다던지 하는 '출사' 같은 것을 나가는 타입이 전혀 아니다. 어지간한 차 한 대 값을 훌쩍 넘는 장비를 짊어지고 극한의 세계에 자아를 내동댕이 친다던지, 낯선 땅을 방랑한다던지 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가 더 맞는 말이겠다.
위에 언급한 일을 하는 분들이 어떻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니 오해 없기를. 그냥 나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게 좋다. 게으르고 유약하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인 성격에, 쳇바퀴 도는 생업의 굴레에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보통 사람이니까. 하루키가 이야기한 것처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내 사진의 작법이나 화풍 역시 그런 식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하루키처럼 될 리는 없겠지만.
삶을 살아가는 중에 마주치는 장면들 속에서 불현듯 무언가가 발현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사진기를 누른다. 사진을 안 찍는 일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진을 목적으로 한 외출도 없다. 일의 순서는 그렇다.
촬영된 장소에 대해서 역시 말해주면 싱거울 정도로 평범한 곳들이다. 그럴싸한 어디 어디라는 답을 기다리는 표정에 반격이라도 하듯 OO고속도로, OO 버스 안, OO공원처럼 이름만 들어도 아. 거기 할만한 그런 곳들로 답한다.
사진은 인천공항에서 을왕리로 가는 어느 버스에서 만난 장면이다. 눈 온 뒤라 엉망진창으로 더러워진 차창 밖으로 나른한 오후 해가 저 멀리 먼지인지 안개인지 자욱한 뒤로 숨어 있었다. 자동 초점 기능은 이럴 때 무척 혼란스러워하며 셔터 작동을 방해한다. 재빨리 수동 초점 쪽으로 스위치를 돌렸다. 초점을 잘 맞추려는 게 아니라 셔터를 어서 작동시키기 위해서였다.
일렬로 늘어선 세 컷의 장면 중 굳이 희미하게 아파트가 섞여 나온 가운데 사진을 A컷으로 선정해 1미터 사이즈로 전시장 중앙에 걸었다. 대단한 곳에 가서 얻어낸 풍경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꼭 멀리 어딜 가야 꿈결 같은 풍경을 만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혹 마땅한 카메라가 없어 작품이 될만한 사진을 못 찍겠다거나, 스포츠카가 없어서 스포츠 주행을 못 배운다는 등, 주변 환경이나 도구적인 여건에 대한 이유로 원하는 꿈을 애초에 저 멀리 두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하루키의 것과 비슷한 글귀가 마침 또 떠올라 덧붙이며 마친다.
나는 한 번도 꿈을 위해 무모해진 적은 없다
...(중략)...
작사가가 되겠다고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시상'을 떠올리는 데 몰입하는 등의 행동은 해본 적이 없다.
불확실한 자신의 재능만 보고 현실을 포기하는 사람이 간절한가, 아니면 현실을 챙겨가며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멀리서부터라도 그 일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이 간절한가? '간절하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급하기만 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환경을 탓하고, 잘된 사람들에게서 다른 외부적인 이유만을 보며, 결국에는 쉽게 포기한다. 그럴 만도 하다. 당장 하루하루가 당신을 죄여 올 텐데, 어떻게 마냥 재능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며 한우물을 팔 수 있겠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핏줄 부자가 아닌 바에야.
김이나, <김이나의 작사법>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