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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속 Apr 04. 2020

봄의 동해

뜻밖의 환대

페인트 칠을 하러 나가던 길이었다

적당히 늦잠을 잔 일요일. 지난달부터 계속된 스튜디오 인테리어 작업을 하러 집을 나섰다. 요일, 휴일 개념 없이 살아온 지 4년 차가 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평일에 쉰다고 더 신나지도 않고 반대로 휴일에 일해도 이렇다 할 피해의식도 없다. 이러나저러나 내 하루니까.

시동을 걸고 보니 기름이 없어 가득 넣고 다시 도로로 나왔는데 이쯤부터 문제가 생겼다.



날씨가

너무

좋다.



그렇게 뭐에 씐 듯 유턴 포인트를 한참이나 지나 맥없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에 오르게 된다.






가평 휴게소까지만 다녀올까?

직장 생활할 때 거듭된 야근의 스트레스를 한밤중 길 위에 흩뿌리며 가평 휴게소까지 다녀오곤 했다. 근래엔 못(안) 간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혹여 이 글을 보고 일부러 찾아 가려한다면 말리고 싶다.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고속도로 구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싱거움 때문에 난 이 길을 좋아한다. 눈앞에서 빗겨쳐 사라지는 모습을 맥없이 바라보며 달리기에 적당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됐다 싶은 풍경이다.


여행에 꼭 좋은 경치가 필요하진 않다. 술에 늘 요리 안주가 필요한 게 아니듯 깨끗하게 잘 포장된 길만으로 충분한 여행도 분명 있다. '물 멍'이나 '불 멍'의 유사 장르로 어쩌면 '드라이브 멍'쯤 불러도 될 것이다. 물론 운전 중에 멍 때리면 큰일 나니 항상 안전은 우선 챙겨야 한다.



가평 휴게소를 지나쳤다

사실 이미 아주 많-이 지나쳤다. 40km 넘게 더 달려 홍천 휴게소에서 멈춰 섰다. 일요일이라 하행 방향이 밀리지는 않았지만 차가 한가득 엉켜있는 휴게소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그냥 지나쳐 버렸다.


길은 그 뒤로도 한동안 전형적인 어글리-코리안 하이웨이 풍경이었다. 실타래같이 뭉텅이로 모여 달리는 기본 그룹과 답답함에 그 틈을 휘젓고 돌파하려는 일부 차량들이 서로를 배척하는 형국이었다.


그렇게 조금 더 한적한 길이 나타날 때까지 가다 보니 홍천까지 왔다. 조금씩 옅어진 통행량은 이제야 선진국(?) 수준이 되어서 달릴만한 길이 되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휴게소 안에 들어가지 않고 잠시 차 밖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휴식을 했다. 날씨가 정말 쾌청하다.


3000cc 배기량으로 자비 없이 기름을 태워 없애는 20살 된 내 차와 정 반대 컨셉의 차가 옆에 서있다. (내 차를 난 ‘어르신’이라 부른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근시일 내에 멸종할 것이라고들 한다. 심히 고민해볼 문제다. 얼마 전 미용실에서 본 <에스콰이어> 기사 중에 이런 글이 있다.



대니 모릿이라는 한 영국 여성이 에코 스피커에 탑재된 알렉사(아마존의 AI)에 자신의 심박수가 정상인지를 문의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아마존의 인공지능 비서는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심장 박동은 인간을 살아 있게 하고 그 결과 천연자원의 급속한 고갈을 야기합니다. 지구에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대의를 위해 심장을 찔러 자살하도록 하세요.”


지구를 위해 당장 죽을 수는 없으니.. 전기차로 바꿔 타는 것과 일단 갖고 있는 차를 최대한 오래 타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친환경적 일지. 글쎄 잘 가늠이 되질 않는다. 사실 아직은 후자 쪽이 아닐까 하고 있다.


요즘 난 1년에 5000km 정도를 간신히 탄다. 어쩌면 차가 없어도 되는 상태인데 그럼에도 나는 분명히 차가 필요하다.


개인 삶의 모든 결정이 경제 논리나 정의의 잣대로 이뤄지진 않는다. 200미터 물속에 들어가거나 우주에 갈 일이 없어도 누군가는 그걸 할 수 있는 손목시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듯, 나는 가끔 타도 지금의 내 차가 필요한 사람이다. 시계는 필요 없다.


어쨌든 우리는 각자 어떤 식으로든 지구를 갉아먹으며 살고 있다. 기름을 태워 달려 나가고 다이버 워치를 차고 고기를 먹고. (지구 온난화 관련 글을 보면 육식을 위한 가축에 소비되는 자연 자원이 채식 대비 10배 이상이라고 한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내차는 아직 그런대로 동안이 아닌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운전석에 올랐다.

 

동해로 간다

이미 서울-양양 고속도로 한복판에 있는 마당에 동해로 간다는 결심이 뭐 그리 단호할 필요까지 있겠나.


이제야 좀 한적하고 기분 좋은 트래픽에 맑고 투명한 하늘이 펼쳐졌으니 기꺼이 간다.

동해.


페인트는 내일 칠하지 뭐.



오후 5시. 노곤하게 누운 햇볕이 비추는 바다에 드디어 도착했다. 한동안 멍하니 서서 바라봤다. 그래. 오길 잘했다. 가슴이 씻겨지는 기분이다.


서해 같은 낙조는 없지만 동해의 해 질 녘을 좋아한다. 다분히 유아적인 이유지만 동해는 바다가 시간에 관계없이 늘 가까이 있어서 좋다. 서해처럼 결정적인 때에 저 멀리까지 도망가지 않으니까.

어르신 모처럼 고생 많으셨으니 이참에 사진 좀 많이 찍어 드리기로 했다. (길가다 잠시 세워 찍다 보니 주차 라인을 못 지켰다.)


자고 가

온 김에 지인의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 마시고 서울을 향하려던 것이.. 일이 커졌다. 커피 마시다 문득 작년에 양양으로 이사한 D 내외가 떠올라 전화를 한 것이 화근이 됐다.


비치웨어 관련 사업을 하기에 통상 이맘때면 더운 나라에 가있는 친구인데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것이 정지되어 금세 달려 나와준 것이다. 불황에 찌든 근황에 마음이 무겁지만 어쨌든 모처럼 만났으니 반갑게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커피로 시작한 자리는 맥주와 소주가 오가는 판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아니라고, 가야 한다는 내게 D는 자고 가라고 재차 권유하며 맥주를 내밀었다. 조용히 혼자 나선 우발적 여행의 끝에 나타난 뜻밖의 환대에 정신이 멍해 머뭇거렸다. 홍상수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영화 한 번 찍지 뭐. 내일 가자.


처음 찾은 D의 작업실. 많이 올랐다지만 서울보다는 임대료가 낮아 맞붙은 2개의 호실을 모두 쓰고 있어서 이곳을 내게 내주었다. 사진은 평화롭게 혼자 푹 쉬고 일어난 아침이다. 테이블엔 간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벽에 걸린 그림은 캘리포니아 작가 헤더 브라운의 작품으로 D가 국내에 들여와 유통하고 있다.



베란다 밖 풍경이 그림이다. 이렇게 또 몸을, 눈을 버려놨구나.




전에는 잘 안 찍었는데 언젠가부터 곳곳에서 만나는 아파트 사진을 즐겨 찍는 편이다. 특히 이런 복도식 아파트가 요즘 들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바다 느낌을 닮은 아파트다.







아점으로 설렁탕을 먹으러 주문진 읍내에 나왔더니 소나무와 벚꽃이 아주 많이 심각하다. 사철 푸르른 소나무라지만 봄의 소나무는 분명 다른 초록이다.


사진도 더 없다. 넋 놓고 바라보며 중얼거릴 뿐.



"봄이구나."







D와 작별을 고하고 상경 전 잠시 물멍을 때리러 남애리로 갔다.








이 바다를 찾은 지 20년이 넘었다. 나 많이 늙었네.


딴 데를 갈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잠시 했다. 추억이 방해하지 않는 무색무취의 장소가 마음이 더 편할 때도 있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단골 가게를 피해 가는 날도 가끔 있지 않던가.

이러나저러나 복잡한 머릿속 사정은 가만 앉아 있으면 순식간에 파도가 해결을 해준다.


나중에 이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물이 왜 이렇게 깨끗해 보이냐는 댓글이 달렸다.

잠시 갸웃하며 적어낸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깨끗하니까?"


깨끗해.

틀림없이.


댓글의 행간에는 아마 내가 특별한 촬영 기법을 쓴 걸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난 일할 때 쓰는 카메라를 일상에서 쓰지 않는다. 워라벨 개념 없이 살고 있지만 유일하게 지키는 룰은 그것 하나다. 얼마 없는 재능과 체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번 여행 사진은 모두 휴대폰(아이폰 XS) 아니면 7년 된 똑딱이 소니 RX100M2로 찍었다. 여담이지만 사실 좋은 카메라로 찍는다고 똥이 떡이 되지는 않는다. 쓸데없이 똥의 디테일만 극명해질 뿐.







바다가 제일 달콤할 때 떠난다

동해에 오면 되도록 점심을 먹고 지체 없이 돌아오는 편이다. 속절없이 화창한 날씨가 매번 유혹을 하지만 그래도 단호하게 외면해야 한다.


좋은 계절, 좋은 날씨에 뜻밖의 환대까지 받았으니 무얼 더 바라겠나. 미련 없이 일어섰다.


러시아워에 걸려 돌아가는 길이 지옥이 되면 안 된다. 도착해서 한 숨 돌리며 사진이라도 들여다볼 시간과 에너지가 이 남아 있어야 비로소 해피엔딩의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곧장 왔다. 오는 길은 어쩐지 더 수월하게 달리는 기분이 드는데, 아마 실제로도 쉽기 때문일 거다. 우리나라는 동고서저 지형이니까. 실제 연료 소모량도 올 때가 더 적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을 지나면 어쩐지 여행이 진짜 끝난 기분이 든다. 미사 신도시가 생긴 뒤로 더욱 그렇다. 마법 풀린 신데렐라의 기분이라고 몇몇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어서 와 이 다리를 건너면 이제부터 다시 현실이야'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도시 여기저기에도 봄은 공평하게 묻어 있다.








여행을 정리하며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특히 첫 사진. 정말 이걸 보고 날씨 맑다며 할 일을 미루고 고속도로에 차를 올린 거야?


"난 내가 추운지 몰랐는데 집으로 돌아가니 알게 됐다. 내가 참 추웠구나"

얼마 전 본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이 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나 되게 뻑뻑하게 살고 있었구나. 환기 안 한 집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답답할 줄 몰랐구나.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외출이 어려운 시절이지만 봄이 끝나기 전에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행 이라는 말을 '바람 쐬러 간다'는 말로 풀어낸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멋진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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