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속 Apr 04. 2016

발리, 지치지 않는 여름2

바다, 그리고 바다

참 덥고 느리고 답답한 이곳은 무얼 하든 사람들이 뭔가 조금씩 나사가 풀린 채 움직이는 인상인데, 바다를 즐기는 일만큼은 정말 부지런하고 똑똑하고 알뜰한 모습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톨도 빠짐없이 바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스랑안 Serangan / 동해안이라 일출을 볼 수 있다
스랑안 Serangan

맨발의 그녀들 뛰기 시작한 것은 신나서가 아니라 뜨거워서다.

파라솔 밑에 누워 있어도 살이 탄다.

스랑안 Serangan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이곳 역시 동해안 쪽 바닷물이 부유물 없고 맑았다. 한적하게 휴식을 취하기에 더없이 좋은 분위기. 깨끗이 비워진 있는 그대로의 바다를 고스란히 즐길 수 있는 해변이다

스랑안 Serangan

최고의 명당을 차지한 녀석. 와룽에 딸린 이 자리는 적당히 먹을 것을 시켜 먹으면 무료다. 가격은 우리나라 편의점 물가 수준.

발리 소는 뭔가 사슴의 결을 갖고 있어서 가만 보고 있으면 자꾸 마음이 저릿하다.


스랑안 해변은 사유지라서 입구 쪽에서 소액의 입장료를 내고 10-15분 정도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갈 수 있다. 길가 곳곳에서 소를 볼 수 있다.

스미냑 해변 Seminyak, 서해안

꾸따Kuta 에서 조금 북쪽인 스미냑은 뭐랄까 꾸따보다 아주 조금 더 차려입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해변에 가득 깔려있는 빈백(엄밀히는 샌드백) 때문일 것 같다. 옹기종기 누워 태닝을 하고 맥주를 홀짝이며 최선을 다해 일몰을 기다린다.

스미냑 Seminyak

Modjo, Jamiroquai  등 이젠 전 세계인이 다 알법한 팝/일렉트로닉 계열 장르 음악들이 꾸준히 나와주어 그런대로 흥을 돋워준다. 뽕짝이 안 나오는 데에 무한히 감사한다.


멀미 나도록 뽕짝 나오는 우리네 휴가철 해변은 법적으로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

스미냑 Seminyak

여행지에서 수평선 넘어 해가 올라오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잊고 있던 막대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 내가 별에 살고 있었지.

거대한 우주에 나 참 별거 아닌 미생물인데...


자아의 극대감과 축소감이 교차하던 중

용기내어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사진 한 장만 부탁드립니다."


꾸따Kuta 해변, 서해안

어느 해변이 더 좋고 덜 좋고는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휴식을 방해하는 잡상인(팔찌 등 악세서리, 맛사지, 헤나, 싸구려 그림) 출현 빈도만 두고 보면

꾸따 = 스미냑 > 스랑안 이었다는 정도만 말해두자.



우붓Ubud,

흥정 넘치는 시장과 열대의 논밭

3-4일간 숙소-바다-숙소-바다의 루틴을 반복하다 보니 육지 쪽 사정이 궁금해졌다.


꾸따에서 우붓까지는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대략 150km 정도 떨어졌나 생각하겠지만 그 10분의 1이다.


자동차로 이동했을 때 10km = 1시간 으로 생각하면 대강 맞는다. 참고로 발리섬이 제주도 3배 정도 크기라고 한다.

카림바Karimba 라는 전통악기 3개 가격으로 5만루피아(약 5천원)를 줬다

꾸따나 스미냑에는 관광객을 농락하는 소규모 골목 상점들과 대형 쇼핑몰이 주류라면 우붓에는 소소한 디자이너 샵과 야생의 우붓 시장이 있다.

가격이 얼마인지는 개개인이 흥정 하기 나름이다. How much is this? 첫 물음에 답한 가격은 최소 2배 이상 부풀려진 가격이라고 보면 된다. 그걸 감안해도 수제품임을 생각해본다면 인력 착취가 아닐까 싶을 수준.

카페나 식당에서 눈길을 끌던 재떨이나 맥주병에 끼우는 슬리브(고온 다습해서 결로가 생기기 때문에 병에 슬리브를 끼워 준다) 같은 소소한 악세서리들도 여기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인건비가 싸고 열대 기후라 나무가 흔하고, 섬나라라 조개가 많아 저런 식의 자개 공예품도 싸게 구할 수 있다. 저런 각티슈 케이스는 서울에서 최소 3-4만원이라 들었다 놨다만 했었는데 여기서는 그 반의 반 값이다. 부피/무게 때문에 여전히 그냥 군침만 흘렸지만.


아. 저 오른쪽 저 물건.은 병따개다.

내가 명명하길 일명 ㅈ따개;

오래전 남대문 시장의 오마쥬 같다 해야할 지. 저잣거리가 형성된 둘레로 상가 건물이 일렬로 들어서 있다. 그 안에 들어가 보면 90년대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동대문/세운상가/용산전자상가 같은 호객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곳 상인들은 친절하다.


한 자리에서 보통 10~15분은 머무르며 사지 않을 물건이라도 이것저것 꺼내 보여 달라 재차 요구해도 싫은 내색 하는 상인은 없었다. 기꺼이 시간을 갖고 양껏 보라는 게 그들의 암묵적인 방침인 것 같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팁은 한 가지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진 샵이 보이면 충분히(지칠 정도로) 시간을 들여 대화하고 흥정을 하는 것.

"그럼 얼마에 줄까?"

"에이 그렇게 주면 내가 밑지는 거야"


용산이나 동대문에서 하던 대화를 모처럼 영어로 하게 된다. 소싯적에 상인과 호형호제하며 물건을 좋은 값에 사 왔다면 여기서도 결코 바가지 쓸 일은 없을 것.

공격적일 필요는 없다. 애초에 본인들도 처음 부른 가격에 팔릴 리 없다는 식으로 가격을 부르고, 내가 고개를 흔들면 계산기를 내밀며 원하는 가격을 직접 찍으라고 내놓으며 치킨게임을 시작한다.


사실 이 흥정은 정반합의 게임이다.


1개 5000원으로 시작한 흥정은 2개 7천 원이 되다가 이거 두 개에 저 앞에 저 물건까지 해서 8천 원. 하는 식이 된다. 마음에 드는 가격이 안 되면 물건이라도 덤으로 받는 측면 공세를 하는 게 시장 흥정 아니던가.


과욕 부리는 상인의 팽팽한 줄타기에는 안 되겠다고 그냥 확 돌아서 걸어나가는 강수를 띄워보기도 한다. 황급히 달려와 알겠다고 그 값에 가져가라고 바지가랑이를 잡는 막장 드라마도 여전히 건재하니까.

사진에 나온 상인들이 갖고 있는 것들은 전부 구매를 했다.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는 진상 손님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물어보면서 그들을 더 알게 되어 좋았다.


싸고 비싸고의 결과론적 문제가 아니라, 내 돈이 다른 사람에게 가고 물건이 내게 전해오는 과정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다.  


분명 정찰제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발리에서 살 수 있는 어지간한 기념품은 꾸따Kuta에 있는 크리스나Krisna 라는 대형 마트형 기념품점에서 흥정 없이도 싼 값에 구매할 수 있으니 이런 야생의 시장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면 그쪽으로 가시기 바란다.

우붓에 간 것은 사실 이 논을 따라 걷는 트래킹 코스 때문이었다. 사실 논은 우리 부모님 계신 시골에도 잔뜩 널렸는데?

1년에 한 번 경작하는 우리와 달리 이곳은 연중 3-4회까지 경작을 한다.

무성한 열대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느 논이나 비슷비슷한 진도를 보이는 우리네 쌀농사 풍경과는 다른 모습. 어디는 모내기를 하고, 또 한편에서는 노릇노릇 가을 들판이다.

이러다 타 죽겠네 싶을 무렵 오아시스처럼 논 한복판에 카페가 나타난다.

이 나라 국민의 미적 감각은 분명 우리보다 훨씬 좋다.

목을 축이고 다시 나와 한동안 이 녀석과 함께 걸었다.

이번 발리 여행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순간을 뽑자면 단연 이 날이다.


사진상의 온도가 가늠이 안될 텐데, 찜질방에 배낭 메고 들어가 있다고 보면 딱 맞다.

개 더움.


Motorcycle diary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의아해하는 부분인데 사실 모터사이클을 타본 적이 없다. 아마도 차를 워낙 좋아한다는 인상이 강하게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발리는 영국과 같이 좌측통행이다. 주행 방향도 반대인 이런 타지에서 처음으로 스쿠터 여행을 시작한다는 건 꽤나 큰 도박이다. 모터사이클은 위험한 탈것이니까.

하루 렌탈 5-6천원인데

한 달에 5만원


이 말도 안되는 대여료는 단순히 물가가 싸다고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스쿠터는 그만큼 이들에게 생활 밀착형 영영에 있다.


자동차로는 한 시간에 10km를 가지만 스쿠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혼다 바리오는 세계 일주에 쓰일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나고 완성도 높은 엔지니어링을 보여준다.

발리에 온 지 5일. 우붓에 온지 2일차 되던 날 스쿠터를 타기로 결심 했다. 더위를 많이 타서 반나절 이상 다니자니 여행이 아니라 극기훈련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도로에 매연과 먼지가 심해 코/입은 가려야 하는거 외에 운전은 할만했다. 자동차보다 바이크가 도로에 더 많기 때문에 이들의 주행을 존중하는 운전 문화가 깔려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다.


서울에서(특히 강남) 큰 불편 없이 트래픽을 제압할 수 있는 정도의 기량이라면 전 세계 어디에 가도 운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발리에서 역시 그 가설은 유효했다.


여행지에서 수중에 탈 것이 생겼다는 건 굉장한 신분 상승(?) 효과가 있다.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났다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멈춰 설 수 있는 자유

이국땅에서 t형과 함께 스쿠터를 몰아 스랑안 해변으로 향한 이 여정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다


Batik bali @Tohpati

우붓에서 스쿠터로 1시간 정도 거리에 토파티Tohpati 라는 작은 마을에 전통 나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서 찾아갔다. 시장에 있던 것들보다 확연히 퀄리티가 좋았는데 가격 역시 확연히..

한국과 같은 식의 주유소는 많지 않고 대신 골목 골목마다 이런 기묘한 가게들이 많이 있다.

ABSOLUT PETROL 이라 불러야 할지.

750ml 한 병에 천원 정도 한다. 내용물은 물론 보드카가 아니라 휘발유다.

벤츠, BMW같은 차는 거의 보기가 어려운데 6~70년대 VW 사파리는 동네마다 심심치 않게 보인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hobby car라고. 실제 타기 보다는 취미삼아 갖고 노는 차라는 얘기다.

소장용으로는 유독 폭스바겐 차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류의 튜닝 차량들도 가끔 보인다. 참고로 발리 내 도로는 제한 속도가 없다.



멀리 갈 수록 우버 Uber

뜻밖에도 발리에서 우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사실 현지에서도 좋다 나쁘다 의견이 분분하다. 내 경우 열흘간 세 번 정도 이용했고 만족스러웠다.

우버 운전사 Wawan

차가 밀리고 이동 시간이 길기 때문에 기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발리에서 지내며 궁금한 것들에 대해 얘기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붓에서 스미냑으로 오면서는 Wawan의 추천으로 몇 몇 들를만한 곳을 안내받아 알뜰히 한나절을 보냈다.

지폐에 있는 곳이라며 검색 해보라고 이름을 알려줬다. 준비 없이 온 여행인데 이렇게 물어 물어 얻는게 참 많아 흥미로왔다.


꾸따/스미냑에서 우붓까지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요금이 우리돈 만오천원도 안 나와 미안해서 팁을 조금 붙여 주기도 했다.

열대의 나라 답게 난방 기능 자체가 생략되어 있다. (모든 차가 다 그런건 아니다) 요금은 미터기가 아니라 우버 어플을 통해 gps 주행 경로를 토대로 매겨진다.




물보다 맥주, BINTANG

발리의 기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빈탕.

발리어로 '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초록색 병에 빨간 별. 하이네켄과 참 비슷한 조합인데, 실제로 하이네켄사의 저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영향이 있다고 한다.

더운 날씨에 음식도 다 저런 식이니 맥주 없는 식탁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첫날부터 마지막날 공항에서까지 거의 매 끼니마다 한병씩 비웠다.



발에 치이는 짜낭 Canang

종교에 참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나라인 것 같다. 건물 안팎으로 곳곳에 놓인 음식들이 뭘까 싶었는데 물어보니 신을 위해 공양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새로 내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짜낭 내려놓는 소녀 @Ubud

음식의 종류나 형식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다양하다.

두는 위치 역시 자기 마음.

문앞에 두어 악귀를 막고, 계산대에 두어 행운과 부귀를 염원하고.

물론 이들 음식의 결말은 예상대로 험악한 경우가 많다.



마치며

발리에 다녀오기 전까지 내게 여름은 즐기는게 아니라 피해야할 계절이었다.

그런 내게 처음으로 여름 햇볕 아래에서의 즐거움을 선사해준 곳이다.


발리에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리병'이 생긴다고들 한다.

분명 앞으로 몇 번은 더 발리에 가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이,

아무래도 나도 걸린 것 같다.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달라던 청년 @Seminyak

발리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따뜻했다.


처음엔 사진기를 꺼내기도 조심스러웠는데, 며칠 지내다보니 어느새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걸고, 묻고, 사진을 부탁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난 참 내성적인 사람인데.

@Kuta

당신을 좀 찍어도 되겠느냐 물었을 때 거절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불, 연기, 버터, 소금, 설탕이 옥수수와 합체하면 마약이 된다. 올 여름 옥수수 나오면 이렇게 먹어볼거다.


상인들의 경우 대부분은 찍거나 말거나 별로 관심도 없다. 찰칵 소리 나자 마자 신경질적으로 "1 euro!" 를 외치는 여느 나라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물론 그래도 한 번 묻는게 예의다.

@Kuta

해변에서 몸을 누일 수 있는 각양 각색의 제품들. 주인이 몸소 그 안락함을 증명한다.  

@Kuta

'종이밥'이라고 부르며 밤에 야식처럼 사다 먹은 현지 음식들도 먹을만했다.

@Kuta

서핑 보드 크기가 제각각이라서 보관 커버를 커스텀으로 제작해주는 샵이 많다. 출국 전 손상 방지 포장을 해주는 모습.

우리의 단골 식당 Warung Malang @Kuta
Komala Indah I @Kuta

풀이 우거졌어도 생각보다 벌레가 많지 않다. 지들도 더운가

@Kuta

식당에 들어갔다고 시원한 냉방을 기대하면 안된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전부 반 오픈형 구조로 되어있다.

@Kuta
@Kuta



매거진의 이전글 발리, 지치지 않는 여름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