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 Monochrome Story
꼬불꼬불하고 기다란 도우로 강을 따라 시간을 잊고 달린다.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아 주위를 찬찬히 둘러본다. 한가로이 낚시를 하는 남자들과 강을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들, 배를 들고 강가로 나가는 청년들을 마주한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여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목까지 타오를 때 즈음, 강변을 따라 줄지어 위치한 와이너리로부터 묵직한 포트와인의 달달하고 시크한 향이 코 끝을 때린다. 도우로 강을 따라 시간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눈 앞에 대서양이 펼쳐진다. 종착역에 내릴 때가 되었다. 어느덧 내 심장은 포르투라는 이 소도시의 맥박에 맞추어 느린 템포로 뛰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을 떠올릴 때 당연하게도 리스본을 먼저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노란색 트램이 언덕을 오르내리는 리스본의 아이코닉한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는 이미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길이 닫는 곳까지 도시를 천천히 음미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의 권유로 찾아온 이 작은 도시 포르투는 불과 도착 하루 만에 트램 덕분에 기묘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고백하건대 리스본과는 다르게 포르투라는 소도시에는 별다른 기대 - 거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예상치 못한 만족감을 마주할 때 마음의 위로를 받는 그런 거. 가령 무심히 들른 레스토랑에서 뜻밖의 풍족한 식사를 하고 마음의 위로로 받아 팁을 잔뜩 주고 나올 때와 같은 - 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트램을 타고 느리게 달리는 그 시간 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여유로운 속도에 내 마음을 내주고 말았다.
매력적인 소도시의 느린 속도는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있었고, 한 동안 이 느린 템포의 리듬과 나는 엇박자를 탔다.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서울에서 나는 거리를 걸을때 사람들 사이를 능숙하게 누비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솜씨좋은 드라이버마냥 요리 조리 피해다닌다. 지하철이랄지 횡단보도랄지 그 어디든 예외는 없었다.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걸음은 도시의 웅성거림에 맞추어 빠른 속도로 리듬을 타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현존하는 이동수단 중 가장 멋스러움을 품고 있는 것이 바로 트램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베를린의 트램을 포함하여 오늘날 대부분 유럽 국가들의 트램은 저마다 현대식 트램으로 교체되고 있다 - 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넘버원으로 꼽는 것은 아날로그 향이 그득한 나무와 쇠로 만들어진 클래식한 트램이다. 클래식한 낭만을 가져다주는 포르투의 트램은 밀라노의 트램과 닮았다. 아주 오래된 나무 냄새와 덜거덕 거리는 쇳소리까지.
종착역에 도착한 트램은 타고 있던 사람들이 혹은 운전사가 직접 손으로 의자를 돌려야만 등받이가 반대편을 향하게 된다. 그런 후에 운전사는 창밖으로 손을 뻗어 목적지가 적힌 팻말을 떼어낸다. 그리곤 반대편 운전석 - 트램에는 운전석이 앞뒤로 두 개가 있다 -으로 이동하여 다시 한번 팻말을 붙인다. 이러한 과정을 마친 트램은 달려왔던 선로를 고스란히 되돌아 간다. 클래식함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아날로그적인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는 트램에 더욱 마음이 동할 수밖에.
사실 포르투의 트램은 여행자의 것 - 리스본의 트램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데이 트래블 티켓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이라기 보단, 이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교통수단이다. 덜커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트램이 서서히 멈춘다. 둔탁한 나무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천천히 트램에 오른다. 그리곤 운전사와 짧은 안부 인사를 - 마치 매일 같은 시간에 마을버스를 타는 듯 그들만의 친근함이 느껴진다 - 나눈다. 트램의 나무문이 닫힌다. 인사가 끝남과 동시에, 운전사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스틱을 만지작 거리며 길지 않은 거리를 느린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그들의 일상과 그들의 템포에 속도를 맞추듯이.
photo & journey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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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은 것에 의해 걸러진다. 나의 삶, 나의 견해, 나의 에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보는 방식, 사회적인 상황, 문화적 요인 등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자의 언어로 - 글과 사진으로 - 여행의 성찰을 기록하고 있는 게 아닐까.
포르투갈에게 받은 영감을 간직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 사람의 언어로 - 나는 흑백사진으로, 아내는 컬러사진으로 -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하나의 매거진에 두 개의 에세이가 있는 형태이지만, 결국 서로를 관통하는 포르투갈의 이야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