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때 독서왕까지 받고 중학교 때 간간히 읽었던 만화책 식객 이후로, 내 인생에 독서는 아주 오랫동안 끊기고 말았다.
중학교 1학년 여름부터, 26살까지 9년을 책에 손을 대지 않았다. 고작해야 대학교를 다니며 학점을 잘 받으려고 5권(어쩌면 3권일지도 모른다.) 읽었을 정도이다.
내가 책에 손을 놓게 된 건 중학교 점심시간에 도서실을 가면서부터이다.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친구와 함께 도서실에서 어떤 책을 빌릴까 살펴보던 날이었다. 그 수준의 책들은 거의 보아서일까, 웬일인지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하나같이 다 똑같아 보였다. 어떤 책을 들고 펼쳐봐도, 안의 내용들은 거의 다 비슷비슷했다.
'음.. 엄마랑 싸운 내용이네. 뒤에는 화해하는 내용이겠지?' 하면 화해하는 내용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 책을 꽂아 넣고는 다른 책을 다시 펼쳤다.
'과학책에서는 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 나오네. 뒤에는 심화내용이 나오는 것 같아. 아 지겨워... 시집이나 펼쳐볼까? 이런 사랑얘기나 자기 성찰하는 얘기는 맨날 나오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 정말.'
도서실에는 어떤 책도 빛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자극적인 만화책이나, 성과 관련된 책, 사서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시는 책까지 보았지만, 그날은 점심시간 종이 끝날 때까지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고르지 못한 채 교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날부터 일 년 정도를 친구와 책을 읽지 않고 도서실에서 떠들다가 혼도 나고, 컴퓨터로 하릴없이 클릭클릭을 하다가는, 인터넷 소설 몇 개를 읽고는,
'책? 읽어서 뭐 해? 너 뭐 돼?'
이 생각 하나로 말이다.
어디를 쳐다보아도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은 참 많다. 문해력도 좋아지고, 상상을 할 수도 있고, 살아보지 않은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이런 건 열다섯의 나에게는 하나도 와닿지 않는 말들이었다.
국어시간에 문제를 풀면, 국어 선생님께서는 내 손의 움직임만 보셨다. 내가 지문을 스윽 읽고 정답을 체크하면 바로 풀이를 시작하셨다. 다른 아이들은 아직 풀지 못했다며 불만을 표출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어쩐지 민망해져 문제를 틀린 척을 하기도 했다.
여하튼 그 당시의 어린 내가 느끼기에 문해력은 이미 또래보다 좋아서 필요가 없었고, 상상은 눈을 뜨면서부터 자기 전까지 하며, 살아보지 않은 삶은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 현재, 나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경험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웠고 새로웠다.
정리하자면, 책은
1. 세상에서 제일 지루하다.
2. 사람들은 마법서마냥 책을 너무 좋아한다.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오히려 반발심이 든다.
3. 소설이나 시는 더 쓸데없다. 얻을 정보도 없다.
4.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영상이나 여행 등으로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5.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를 너무 풀어서 얘기한다. 지겹게시리
그러던 2020년, 나는 인터넷에 글을 하나 올리게 된다.
댓글이 96개나 달렸다.
이 댓글을 마흔 개쯤 읽었을 때,
나는 인터넷에 질문을 하나 올렸을 뿐인데
아, 나 지금, 내가 몰랐던 넓고 큰 세상에 발을 디디고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된다.
이 댓글의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