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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비 Mar 27. 2018

Cheer up!

* 맥심 2017년 3월호 편집장의 글 중에서. 


그녀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이름 읽을 때부터 기분이 좋다. 여러분도 읽어보라. 치어리더. 입 양끝이 당기면서 미소를 지을 때와 비슷한 근육 움직임이 발생한다. 우리말 ‘응원단’도 있지만 어쩐지 영어가 더 산뜻하게 읽힌다. 


이번 호 표지는 박기량씨에 이어 맥심의 두 번째 ‘치어리더’ 표지다. 주인공은 상큼한 미소와 시원시원한 안무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치어리더 김연정이다. 맥심은 곧 있을 WBC에서 우리 대표팀의 건승을 응원하는 의미로 그녀를 표지모델로 선정했다. 스포츠나 치어리더 콘셉트 화보가 쉽진 않다. 자칫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그림을 뽑게 되거나, 반대로 상투적인 클리셰에 그치고 만다. 이번 표지 작업을 맡은 채희진 에디터와 촬영을 맡은 포토그래퍼 박율 실장 역시 고민을 거듭했다. 편집장이 강제로(?) 정한 콘셉트를 뒤집을 수도 없고, 하하하하하... 하아... 나도 약간 걱정은 됐다. 그래서 간만에 표지 촬영장을 찾았다. 


경기도 파주의 한 스튜디오에서 치어리더 김연정씨의 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노란색 상의에 하얀 스커트를 입은 그녀가 보였다. 잠깐 촬영 쉬는 틈에 다가가 “촬영 잘 부탁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촬영장 분위기가 즐겁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박기량씨도 그랬지만 치어리더들은 긴 촬영에도 지친 기색이 없다. 촬영장에 있는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밝다. 특히 그녀들의 스태미나는 감동적인 수준이다. 하긴, 장장 5시간 넘어가는 야구 경기 중에도 그녀들은 늘 갓 핀 개나리꽃처럼 싱그럽지 않던가. 아침부터 부산에서 올라와 피곤할 법도 한데 연정씨는 우리의 가이드를 뛰어넘는 표정 연기와 포즈, 활력으로 분위기를 리드했다. 응원 받은 쪽은 오히려 맥심 스태프들이었다. 아, 역시 치어+리더로군, 하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녀들을 ‘경기장의 꽃’이라고 한다. 예쁘고 눈길이 가니까. 하지만 저 표현만으로 그녀들을 설명하긴 부족하다. 치어리더는 현장 분위기를 리드하고 팬들과 함께 응원하며 기쁨을 나누는 프로다. 그녀들은 단상에 오른 자신의 표정 하나, 손끝 동작 하나가 분위기를 어떻게 좌우하는지 알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양의 연습을 한다. 부상도 잦다. 원정을 가면 가끔 탈의실이 없어 차 안이나 공공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일부의 부정적 편견, 힘든 일정에도 불구하고 대중 앞에서는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인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맥심 2015년 2월호 인터뷰에서 박기량씨가 한 말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다른 것을 포기할 정도로 치어리더 일이 좋다.”라고 말했다. 내가 만난 두 치어리더는 자신이 미디어에 어떻게 비춰지느냐에 따라 스포츠계에 종사하는 모든 치어리더의 이미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성숙한 책임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치어리더는 그냥 예쁘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몸이 부서져라 뛰면서도 참고 웃는 근성과 책임감을 가진 그녀들에게 ‘꽃’이라는 표현은 너무도 유약하고 수동적이다. 


작년 10월, 잠실구장 안 화장실 앞에서 치어리더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사실 이 건만 기사화되어 그렇지 그녀들을 몰래 촬영하거나 추행하고 욕하거나 변태적인 방법으로 괴롭히는 범죄는 많다. 범죄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더 절망적이었던 건 그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이었다. “복장이 성욕을 자극하니 성추행 당하는 것 아니냐.” 우리는 아직 이런 낮은 수준의 사고를 하는 사람과 같은 시대를 산다. 물론 모든 이가 그녀들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보진 않는다. 다만, 치어리더를 포함하여 걸그룹이나 맥심 같은 미디어 속 여성들의 자기표현을 ‘함부로 만지길 허락하는 신호’, ‘헤픈 도덕성’ 또는 ‘폭력과 비난을 감수한다는 사인’으로 오인하는 과격한 바보와 억지 도덕이 상식, 이성과 혼재하는 것이다. 


세상이 그녀들을 어떻게 보고 대하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아니. 중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영역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그 영역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한때 경찰이 치마 길이를 재고 두발 단속을 하던 시대, 이젠 원로가 된 가수 박미경의 배꼽티에 “말세”라고 하던 세상을 살았다. 지면에 ‘섹스’라는 표현을 쓰는 것 역시 금기시되어 대체 단어를 찾던 때가 엊그제다. 심지어 “저렇게 입으면 희롱하거나 만져달라는 것이다”라는 말이 먹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배꼽티에 호들갑을 떨던 시절이 우스울 정도로 인식이 바뀌었다. 회사 주변에선 크롭탑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여성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달려들어 만지는 이도, 자로 길이를 재는 경찰도 없다. 아직 우리나라 방송에선 ‘섹스’라는 말을 쉽게 꺼내진 못하지만 전보단 소재와 표현에서 자유로워졌다. 출판도 마찬가지. 예를 들어, 이 지면을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라고 꽉 채웠대도 날 좀 또라이로 볼지언정 잡아다가 코렁탕을 먹이진 못한다. 이곳에서 나와 함께 맥심을 만드는 동료들은, 아직은 파격, 음란 논란에 휩싸이기 십상인 그 많은 표현의 자유들이 머지않아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라 믿으며 일한다.


맥심에 다니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 우리의 섹시 화보는 종종 세간의 화제에 오르는데, 모델에 대한 원색적인 성적 비하나 비난을 하는 이는 대개 맥심 바깥의 포털이나 공짜로 오픈된 유튜브, 익명성에 기댄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만 존재한다는 거다. 맥심이 운영하는 독자와의 소통 창구나 공식 SNS에는 모델의 인격이나 자기표현, 성적 자기결정권 등의 개인 영역을 침범하거나 희롱, 비난하는 이가 놀라울 만큼 없다. 존중하거나, 최소한 내버려둔다. 이미 익숙해서? 글쎄다. 후배 에디터가 이렇게 말했다. 


“그녀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억지로 꽁꽁 싸매게 만들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우리 독자들은 아는 거죠.”

콘텐츠가 더 즐겁고 자유롭고 섹시하려면, 매력적이고 섹시한 여성들이 더 많아지고, 더 자신감 있게 자신을 표현하게 하려면 남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은 아닐까. 희롱이나 비난 대신 ‘예쁘다’, ‘섹시하다’, ‘매력적이다’라고 느끼는 그대로 말해주면 모델들도 더 신이 난다. 인정하고 존중하는 만큼 볼거리도 많아진다. 최소한의 상식. 우리 독자들은 이 아름답고 쾌활한 여성들이 선사하는 표현의 자유와 엔터테인먼트를 있는 그대로 즐기며 응원한다. 굳이 그것을 비난해가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망치지 않는다. 응원은 그대로 ‘나’를 향해 돌아온다. 


타인을 괴롭히거나 허락 없이 신체를 만지는 등 사적 영역을 침범해선 안 된다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상식이다. 그 상식의 전제 안에서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당신은 엔터테인먼트를 누릴 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이 우리와 독자들의 결속이다. 


야구와는 좀 다른 얘길 했지만, 이제 WBC가 개막한다. 우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 프로야구 새 시즌도 곧 시작한다. 혹시 구장에서, 티비에서 열정적으로 땀 흘리는 치어리더를 보게 되면 우리 독자들이 먼저 뜨겁게 응원해주시길 바란다. Ready, Set,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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