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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백 Oct 10. 2023

06. 이제는 난임병원으로

유산우울증은 임신만이 약이다.

수술 후 5개월이 지났다.


회사 업무도 문제없고 봄에는 자전거로 퇴근하며 운동도 하고 술은 당연히 입에도 대지 않고 발리로 여행도 다녀왔.

몸은 당장이라도 임신할 수 있을 만큼 모두 회복되었다.

하지만 마음 건강은 오히려 반비례해서 최악을 향해 치달았다.


초여름의 퇴근길,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한강을 보니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미친 여자처럼 울면서 자전거를 탔다.

한강 노을

한 일주일 눈물의 자전거를 타다 보니 내가 정상이 아닌 건 확실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생각했던 임신에 왜 이리 집착하게 된 걸까?

임신을 생각하기 이전이 더 행복했는데...

아이를 한번 품었다 잃은 이상 '임신, 그거 안 해도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수술자국처럼 진해진 마음의 상처는 도저히 회복이 되지 않았다.  


정신의학과 or 난임병원



지금 내 상태로 봤을 때 내키지 않는 두 병원 중 하나를 선택해서 가야 했다.

정신의학과를 가서 우울증 약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간 뒤 임신이라는 옵션을 내 인생 선택지에서 지울 수도 있었다. 딩크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왜 임신이라는 카드를 손에서 놓지 않고 인생을 눈물 콧물 범벅으로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 봤다.


'끝까지 노력하지 않았다'


지금껏 외면하고 있었지만 방법은 더 있었다.  


난임시술을 생각해 볼 때였다.


두려웠지만 여기서 포기했을 경우 나중에 '그래도 시술까지는 시도해 볼걸' 하며 후회는 하기 싫었다.

몸에 호르몬을 과도하게 주입하는 거라 부작용도 많고 그만큼 힘들다고 하지만 나이도 점점 늘어가고 있고 자연시도는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것 같았다.

어차피 임신이 되면 사라질 우울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리가 시작되자 바로 난임병원을 예약했다.


마침 2023년 7월부터 서울은 난임치료 정부 지원금의 소득기준이 폐지되어 진료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지원에도 비급여 제외 등 예외가 많아 개인부담액도 큰걸 알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많이 된다!


출처:에이치아이여성병원


처음에는 이 지원금액에 있는 시술종류도 이해하지 못해 병원에 가기 전 난임시술에 대해 공부를 했다.

난임이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러한 변수를 현대의학의 힘으로 최대한 제거하는 것이 난임시술이었다.

인공수정 시술

과배란으로 난자의 절대 수를 늘리고 배란이 되는 정확한 시기에 선별된 정자를 자궁안에 주입하여 임신 확률을 올려주는 시술. 난자의 수가 많으므로 다태아 확률이 있다.  
수정 타이밍의 정확도와 수정 확률만 살짝 올려주는 것이라 인공수정의 성공확률은 약 25% 로 본다.  
시험관 시술

과배란으로 난자의 절대 수를 늘리고 배란일에 병원에서 난자를 채취하여 연구실에서 정자와 체외수정 시킨다. 잘 수정된 배아들의 세포분열이 일어날 때까지 배양하고 여자의 몸에 배아를 이식해주는 시술. 배아이식 개수에 따라 다태아의 확률이 있다.  

-신선배아 이식: 난자 채취 후 3일에서 5일 뒤 모체에 배양된 배아를 바로 이식하는 것.
-동결배아 이식: 난자채취당시 미리 동결해 둔 배아를 추후 이식하는 것.  

착상 이전의 과정을 모두 거친 배아만 이식해 주기 때문에 시험관의 성공확률은 약 40%로 본다.


두 번째 남편과 방문한 난임병원은 검진이 아닌 시술이 목적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 산전검진하러 난임병원에 왔을 때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병원에 왔을지 관심도 없었는데 난 얼마나 오만했던 것일까?

접수 자기반성 시간을 잠시 가지며 순서를 기다렸다.

언제나 시작은 채혈, 그리고 들어간 진료실에서 초음파를 보며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저희는 결혼 5년 차예요. 적극적으로 임신시도한 건 2년 정도에요. 지난 2월에  자궁 외 임신이 되어서 나팔관이 파열되어 절제술을 했어요. 과배란 약을 먹으며 자연임신시도를 3개월 더 했지만 실패했어요.

이번에는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해보고 싶어요.


-아이고 파열이 됐어요? 너무 고생 많으셨겠네요.


지금 상황을 입 밖으로 내어놓으니 외면했던 현실이 눈에 보였다.

난임이지만 난임시술을 받으러 다니는 건 내가 아이를 가지는 것에 목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못했던 나.

여기까지 오는데 참 오래 걸렸다.  

인공수정보다는 시험관이 더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무엇이든 선생님께서 추천하시는 방법으로 해 볼 생각이었다.

 

-시간이 많이 촉박하지 않다면 한 번에서 두 번은 인공수정을 하고 시험관으로 넘어가는 걸 추천드릴게요. 시험관은 약이나 주사가 훨씬 많아서 아무래도 여자몸에 무리가 많이 가니까요.


-인공수정도 충분히 임신확률이 있다고 보세요? 시험관도 각오하고 왔는데...


-당연하죠! 정자를 난자옆에 풀어놔도 수정이 안되어서 바늘로 정자를 집어넣어서 수정을 시켜주는 경우도 있어요.  난소기능수치인 AMH  수치도 좋고, 자궁 외 임신이 되었다는 건 적어도 수정은 된다는 사인이거든요.


-주사를 무서워하는데 배주사를 맞아야 하나요?


- 네. 그렇지만 시험관에 비하면 적어요. 약이랑 같이 나갈 건데 자가주사는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만 맞으시면 됩니다.

  오른쪽 나팔관이 없기 때문에 오른쪽은 수정이 될 확률이 왼쪽보다는 낮아요. 왼쪽을 남들보다 2배 정도 많이 만들어서 난포를 4개 이상 키우는 걸로 목표할 거예요.


-네 선생님 말씀대로 할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한번 열심히 해 볼게요!


선생님의 말씀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감이 엿보여서일까? 병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지원금을 받으려면 6개월 이내 정자검사가 필요해서 남편은 한번 더 정자채취를 하고 나는  정부지원이 시작되는 다음날 아침에 와서 주사를 받아 가기로 했다.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이다.


지난달 까지는 끝없이 높은 벽에 가로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느낌이라 막막했고, 그래서 어쩔 줄 몰라 많이 울었었다. 이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느낌이 들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희망의 실마리가 보였다.


이렇게 난임병원 첫 시술은 인공수정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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