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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백 Aug 04. 2023

03. 1년 만에 테스트기 두 줄을 보다.

근데 임신이 아니라고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 마음먹고 아이를 준비한 지 1년이 되었다.

1년간 유명한 맘카페, 유튜브, 검색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알아봐서 한약과 최후의 수단인 시술 빼고 좋다는 건 다 해본 것 같다.


먹는 것: 엽산, 비타민D, 오메가 3, 이노시톨, 종합비타민, 두유, 포도즙, 금주, 커피 줄이기

운동: 계단 오르기, 걷기, 요가

현대 과학: 배란테스트기(a.k.a 배테기), 병원에서 초음파보고 날 받아서 숙제


2023 토끼띠 아이를 목표로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남편과 둘이 노는 일상도 즐거웠고 딩크의 삶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임이라고 해서 큰 스트레스나 압박감은 없었다. 거기다 아이가 언제 생길지 모르니 임신하면 못하는 것들(해외여행, 해양 스포츠, 핫플 탐방)  위주로 도장 깨기를 하는 것이 말 그대로 꿀잼이었다.

하지만 기대하던 뉴욕여행을 앞두고 있었던 2월, 이때 일어난 사건으로 임신을 바라보는 내 자세, 마음가짐은 송두리째 바뀌게 되었다.


그날은 재택근무를 하던 2월 중순이었다. 보통 병원을 가지 않고 임신준비를 할 때는 배란테스트기를 사용해서 임신 확률이 높은 날을 확인한다. 이날도 매달 준비기간에 해 보던 배란테스트기를 화장실에서 해 봤는데 3일째 굉장히 진한 두 줄이 나왔다.


이상했다.


배테기는 배란일 직전 진한 두 줄이 되는데 진하게 두줄이 유지되는 날은 보통 길어봤자 2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3일 차,  수치가 안 떨어지니 아무래도 결과가 이상했다. 그 순간 배테기의 LH 호르몬은 임테기의  HCG 호르몬과는 다르지만 임신 시에는 LH호르몬도 같이 올라가서 배란테스트기에 진한 두 줄이 나온다고 한 글을 인터넷 카페에서 본 것이 생각났다.

정확한 날짜에 생리를 해서 이미 실패라고 생각했는데 에이 설마... 하며 꺼낸 임신테스트기.


그리고 결과는 너무나도 진한 두 줄.


테스트기를 보며 한 1분 정도 멈춰있었던 것 같다. 기다리던 두 줄이었는데 기쁨보다는 얼떨떨했고 머릿속엔 물음표만이 가득했다. 임신을 하면 생리를 안 하는 게 정상이라고 배웠는데...  임테기가 불량이 났나 싶어서 해본 다른 임테기도 두줄이었다.

너무나 진한 두 줄


어... 진짠가?

손이 덜덜 떨렸다.

지난달 캘린더를 뒤져 날짜를 계산해 보니 벌써 임신 6주는 되었을 시기였다. 그런데 생리를 한 적이 있어 그게 너무 마음에 걸렸고 임신이 확실해야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택 근무하느라 컴퓨터 앞에 있어야 했는데 집중이 안되어서 최근에 둘째를 임신한 의사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생리라고 생각한 것이 착상혈일 수 있다고 일단 병원부터 가보라고 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집 앞 산부인과에 예약전화를 하고 점심시간에 후다닥 병원으로 달려갔다.


제일 빨리 진료되는 여자선생님으로 부탁하고 20분 정도 대기하는 시간 동안 온갖 사이트에 '생리 후 임신' '생리 후 두 줄'로 엄청 찾아봤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고, 남편에게도 좋은 소식인지 확실해지면 알리고 싶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은 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갔고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드디어 들어간 진료실,

초음파를 보는데 선생님은 초음파상으로 보기엔 자궁이 깨끗하고 임신이라고 보기엔 자궁내막도 두껍지 않다고 했다. 본인 소견상으로는 임신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그럼 두 줄이 나온 건 뭐냐고 물어보자 테스트기는 이미 유산이 되었지만 호르몬이 아직 남아있어서 나올 확률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너무 초기라서 초음파에 안 보이는 거라면 혹시 모르니 피검사를 하고 내일 결과가 나오면 연락이 갈 거라고 하셨다.

너무 답답했다. 두줄이 정말 진했는데 초음파에는 안 보이고... 정말 화학적 유산인 걸까?


피를 뽑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편에게는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싶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원으로 온 건데, 병원에 왔는데도 시원한 결론을 내주지 않아서 속이 터졌다. 무슨 직감이라도 온 건지 계속 뭐 하냐고 묻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왔는데 병원에선 임신이 아닌 거 같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임신인걸 알게 되면 남편에게 기쁜 마음으로 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었는데 ... 남편도 나도 시무룩한 상태로 혹시나 모를 피검사 결과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임신 때문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쓴 건지 배탈이 난 건지 정신이 혼미해지는 복통이 와서 잠도 못 자고 끙끙 앓았다. 혹시나 피검사에서 임신으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약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저 배를 부여잡고 밤새 화장실에서 버텼다. 복통과 함께 밑이 빠지는 느낌이 들고 식은땀이 주룩주룩 났다.   


다음날 아침, 병원 오픈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다. 배가 너무 아파서 그러는데 진통제를 먹으려고 한다고 검사결과 나왔냐고 물어보니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임산부도 타이레놀은 먹어도 된다며 타이레놀을 추천했다.

약을 먹고 좀 진정되어서 쉬고 있으니 11시경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임신이었다.


아이가 우리에게 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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