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해요
곧 어린이 날이다. 예전에는 그냥 하루 쉬는 날이었는데, 부모가 된 후부터는 어린이 날에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줄까 고민하게 된다. 이번 어린이 날은 유치원에 들어가고 처음 맞는 어린이 날이다. 유치원은 생각보다 준비물과 규칙과 행사가 많았다. 가정통신문에는 다가오는 목요일, 어린이날을 맞아 패션쇼를 한다고 쓰여있었다. 좋아하는 캐릭터의 코스튬을 입고오거나, 공주님 복장을 하고오라는 것이었다. 성 역할, 그러니까 여자아이는 공주님, 남자아이는 왕자님을 싫어하는 나는 적당히 해서 보내려고 그다지 화려하게 아이를 꾸며주지도 않았다. 다행히 예전에 물려받았던 레이스 드레스가 있어 그 외는 더더욱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등원하는 날 아침,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다른 아이들의 복장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레이스는 물론이고, 왕관, 요술봉같은 소품까지. 심지어 유치원 엄마들의 단체톡방에는 더 상위 학년 아이들은 장갑까지 풀착장을 하고 등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진심이 아니어도,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은 진심이구나. 아이는 왜인지 풀이죽은 모습이었던것 같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조금 전에 키즈 매니큐어를 거꾸로 들고는 요술봉이야~ 하던 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는 공주가 요술봉을 들어야 한다는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심한 나는 저걸 왜 자꾸 요술봉이라고 하는거지? 라고 지나쳐버렸다. 매니큐어를 주머니에 넣고 등원한 아이를 생각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신랑에게 이야기했더니 점심시간에 얼른 요술봉을 사서 갖다주자고 했다. 우리는 점심을 서둘러 먹고 근처 장난감 가게에 가서 얼른 요술봉을 집어들고 유치원에 전화를 했다.
선생님, 우리아이가 오늘 공주놀이하는 날인데 요술봉을 못가져가서 전해주실 수 있나요?
네 어머님 그런데 이제 막 패션쇼가 끝나서 아마 사진도 다 찍었을거에요~
그래도 전해주고 싶어서요. 부탁드려요.
네 가져다주시면 전달할게요~
유치원에 요술봉을 전달해주는 것을 확인하고는 근처 단골 커피집에서 커피를 사서 돌아왔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아빠가 보내준 요술봉 잘받았어?
응~
어땠어?
좋았어!
그 후에도 아이는 한참 요술봉으로 춤도 추고 노래도 듣다가 잠이 들었다. 아이는 요술봉이 갖고 싶었는데 말하지 않았다. 눈치를 채고 미리 챙겨주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늦게라도 유치원에 갖다주어 남은 시간이라도 잘 가지고 놀 수 있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어른스러운 아이의 행동이나 말에 기특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오늘같이 자기를 위한 날에는 눈치가 없기를 바란다. 요술봉을 사달라는 말 정도는 해맑게 요청하기를 바란다.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의 전부가 아니듯, 아이가 하는 말이 전부가 아니다. 아이가 하지 않는 말도 세심히 헤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