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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un Aug 24. 2019

엄마, 우리 유럽 가자.

셋째 딸과 엄마의 유럽 여행기 Ep.1



여행은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시작된다.

작년 여름, 나는 휴가로 짧게 체코와 헝가리에 다녀왔다.
동유럽 여행이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고 좋아서 여행 내내 가족들, 특히 평소 여행 프로그램을 많이 보는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뒤, 사진과 함께 장황하게 늘어놓는 딸의 여행 에피소드를 들으며 유럽에 가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한 엄마.

때마침 '꽃보다 할배' 동유럽 편을 보며 오스트리아가 너무 예쁘다는 엄마의 혼잣말을 듣고 언젠가 꼭 엄마 손 잡고 오스트리아 땅을 걷겠다고 다짐을 했더랬다.



'ooo님의 적금 만기일이 곧 다가옵니다.'

같이 여행이 가고 싶어도 여행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언젠가 가는 날이 오겠지.' 하며 잊고 있다가

2년간 열심히 쏟아부었던 적금 만기 날짜가 다가온다는 메시지를 받고 이때다 싶어 바로 유럽여행을 알아봤다.

여행지는 엄마가 평소에 눈여겨보던 오스트리아, 내가 사랑한 체코, 가보고 싶었던 크로아티아를 가는 동유럽+발칸반도 루트의 패키지 상품으로 알아봤다. 

꽂히면 바로 저지르는 성격 때문에 상의도 없이 일단 예약부터 하고 엄마에게 말을 꺼내봤다.


"엄마, 가자 유럽."
"유럽? 가고야 싶지~ 근데 엄마가 돈이 어디 있어... 너가 아빠한테 말해봐"


23살에 시집와 60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주부로 살던 엄마에게 유럽여행 갈 여윳돈은 당연히 없었다.

여행을 가려면 아빠의 금전적인 도움이 있거나 아빠와 함께 가야 갈 수 있는데 아빠의 여행 스타일은 유럽과는 거리가 아주 멀기에 누가 데려가지 않으면 엄만 유럽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돈은 내가 낼게!"


만기 된 적금은 마음 편히 쓸 수 없는 돈이지만 돈이야 몸만 건강하면 또 벌면 되는 거고 돈 한 푼 아끼자고 지나가는 엄마와의 시간을 놓치기 싫었다. 

엄마의 건강은 늘 오늘이 가장 좋은 컨디션일 테고 지나가는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금전적인 부분이 해결되자, 엄마는 생각해본다고 하더니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다른 유럽여행 상품을 알아보고 계셨다. 아무래도 딸이 힘들게 모은 돈을 쓰는 게 미안하셨는지 같은 여행루트에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알아보고 계셨다.

엄마와의 여행을 아빠에게 알리자 '젊은 녀석이 그렇게 돌아다녀서 어쩌려고 하냐, 시집갈 돈 안 모으냐.' 라며 걱정하셨고, 엄마도 돈 모아야 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말하셨다.


"엄마, 설마 이 돈 없다고 내가 시집 못 가겠어? 다시 벌면 되지. 그리고 지금 안 쓰고 열심히 모으면 나중엔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가서는 또 다른 걱정과 문제가 생길 거고, 나중엔 엄마가 힘들어서 못 갈지도 모르잖아. 

오늘의 행복은 오늘만 느낄 수 있는 거야, 오늘이 지나면 오지 않아. 

그러니 우리 오늘을 살자. 

오늘 누려야 할 행복을 찰나의 걱정과 게으름 때문에 나중으로 미루지 말자. 나는 우리의 시간이 너무 아쉬워."


고집스럽고 꽤 그럴듯한 딸의 설득에 엄마는 못 이기는 척 미소를 보였다.

왜 우리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삶을 가득 채우는 걸까. 미래는 미래일 뿐인데.

그 미래가 오늘이 돼도 또 다른 미래의 걱정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23살 어린 처녀가 40년 가까이 자식 뒷 바라지하며 좋은 세상 구경 못해보고 세월만 흘러가는 게 너무 슬펐고 그런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걸. 내가 보고 느꼈던 황홀함을, 엄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좋은 세상을 보게 해 주고 살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 준 부모님에게 똑같이 보여주고 싶었다.


전에 이런 글을 썼었다. 어릴 적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하나라도 맛있는 걸 먹여주고 싶고, 우리를 위해 좋은 곳을 많이 데리고 가셨듯이 이젠 우리가 부모님께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좋은 것도 많이 보여드려야 한다고. 

그 말을 실천하고자 내 입으로 뱉은 말을 지키고자 한다. 내 선택이 옳다고 믿고 이 선택을 응원한다.



엄마와 셋째 딸의 유럽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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