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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un Oct 20. 2019

결혼식날 영상 찍어 줄 수 있어?

이불에 나란히 누워있던 언니가 건넨 한 마디.


2017년 10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둘째 언니가 결혼을 하던 때의 일이다.


언니는 결혼 준비를 위해 웨딩플래너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준비사항과 견적, 예산들을 별도로 엑셀 파일에 정리할 만큼 꼼꼼하고 부지런하게 준비했다.

그러다 결혼식을 몇 주 남긴 어느 날 밤, 방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운 뒤 수다를 떨다가 언니는 엑셀 시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결혼식 영상 촬영 때문에 여러 스튜디오 업체를 알아봤는데 내가 마음에 드는 곳은 생각했던 곳보다 너무 비싸네. 가격이 저렴한 곳은 퀄리티가 별로인 것 같고... 차라리 영상은 하지 말까?"

언니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결혼식 영상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을 생생하게 두고두고 볼 수 있게 해 줄 뿐 아니라 결혼식날의 분위기, 신부 대기실에서는 보지 못했던 하객들의 모습, 하객들을 맞이하는 부모님들과 신랑의 모습, 신랑신부가 미처 챙기지 못한 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다.

그런 의미를 언니도 알고 있기에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혹시.. 결혼식날 네가 영상 찍어줄 수 있어?"
"뭐? 내가? 난 영상 전문적으로 찍어보지도 않았고 잘 못 찍을 텐데?"
"잘 찍지 않아도 그냥 촬영만 해줘도 돼. 꼭 해달라는 건 아니고..."


갑작스러운  언니의 제안에 솔직히 조금 놀랍고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촬영을 한다고 하면 기대하는 게 사람 심리일 텐데 오히려 실망하게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컸다. 언니의 결혼식을 이쁘게 찍어주고 싶은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영상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내가? 사진은 취미생활 겸 많이 찍어봤지만 영상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어떤 컷을 찍어야 하고, 영상 흐름은 어떻게 이어가야 하며, 영상의 색감은..? 카메라는 어떤 걸로 찍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돈을 받고 제작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테니 마음 편히 준비해보자고 다짐 후, 하나하나 촬영 준비 계획을 세웠다.




결혼식 영상 촬영 전 Check List

1. 영상 촬영 초짜라면 잘 만들어진 본식 영상 많이 찾아보기 (feat. 유튜브)

어떤 느낌의 영상을 촬영할 것인지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나처럼 지인이나 가족의 결혼식을 직접 찍어준 영상들을 찾아보면 굉장히 많다. 업체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는 것도 좋다. (현란한 무빙이나 효과가 들어간 영상 말고. 괜히 더 어렵게 느껴진다.)


2. 영상에 어떤 장면들을 넣을 건지 미리 정하기

영상의 장면 순서, 꼭 촬영해야 하는 장면들을 미리 체크리스트로 적어가면 식장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필요한 장면들을 순서대로 잘 찍을 수 있다.


3. 미리 웨딩홀 구조나 인테리어 보기

신랑 신부가 입장하는 위치, 어떻게 입장하는지(계단에서 내려올 수도 있고, 그냥 문이 열린다면 위치가 어디인지) 웨딩홀에 기둥 같은 게 많이 있는지, 촬영하기 좋은 구도가 있을지 미리 체크하면 도움이 된다.
웨딩홀 홈페이지나 SNS에 웨딩홀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결혼식 사진들을 볼 수 있다.


4. 영상 BGM 정하기

영상의 조미료 역할을 톡톡해주는 BGM. 홍보용도 아니고 소장용이니 신랑 신부가 원하는 BGM을 최대한 참고하여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신랑 신부와 사전에 조율 없이 내 맘대로 정해버리는 것은 금물! 신랑 신부가 미리 생각해둔 BGM이 없을 수도 있으니 추천할 BGM도 한 두 개 정도 미리 준비하여 제안해보는 것도 좋다.


5. 촬영 카메라 렌탈 하기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면 렌탈 할 필요가 없지만 영상에 적합한 카메라는 따로 있을 것이다.

하루 렌탈하면 비용 그렇게 크지 않으니, 이왕이면 좋은 카메라 렌탈하는 것을 추천! (24시간 렌탈하여 전날 저녁에 집에 가서 테스트해보는 걸 권장)




언니와 형부의 초상권은 지켜주는걸로..



미리 준비를 꼼꼼하게 한 덕에 결혼식날 촬영은 실수나 문제없이 잘 진행되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신부 동생인 내가 마치 업체 직원처럼 분주하게 카메라를 들고 홍길동처럼 뛰어다녔다는 점. (나만 결혼식을 즐기지 못한 것 같은 기분...)
그래도 가족 친척분들의 모습을 많이 담을 수 있었고, 하객석에선 못 보았을 딸을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슬픈 표정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새로웠다.

아빠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하던 언니를 찍을 땐 왜 그렇게 손이 덜덜 떨리던지...


무엇보다 가장 기분 좋았던 건, 결혼하는 날 행복해하는 언니의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바라보고 내 손으로 그 순간들을 담고 언니에게 선물해준다는 것. 언니의 결혼식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언니의 결혼식과 결혼식 영상 제작 프로젝트는 무사히 마쳤고 2년이 지난 지금, 언니는 출산을 1달 앞둔 예비엄마가 되었고 우리는 새로 올 행복한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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