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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 삶은 도서관

삶은 도서관처럼 읽고, 빌리고, 다시 쓰는 것!

by Jin

[ 월요 아침이라 올려보는 글 / BGM ]


https://youtu.be/0w1ER_FMwuc?si=D5VVsGFOgvkqOQ7m


달콤한 인생 OST / 양파





나는 책 리뷰를 쓸 때 나의 기준에서 책과 어울릴 만한 내가 찍은 사진을 찾아 고른다. 다른 책들은 이미지와 배경 음악이 고민 없이 떠올랐건만, 인자 작가님의 '삶은 도서관'은 어쩐지 사진 후보군을 두고 계속 고민했다.


삶.


삶이라는 단어가 주는 너무 다양한 이미지처럼 책에도 너무 많은 다양한 이야기가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딱히 하나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래서 어느 날 해 뜨는 아침 구름 사이에서 찾아낸 무지개 빛 구름 사진이 떠올랐다. 보는 사람마다 구름에 대한 느낌이 다르듯 '삶은 도서관'이라는 책 또한 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라 여겨져서.




에뻐서 가지고 왔습니다. 엘레강스 그 잡채


저자 인자

출판 싱긋

발행 2025.011.13



[마음에 드는 문장]


P54.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바란다.

도서관에서 누구든

마음껏 감정의 '토'를 했으면 한다.

토의 뒤끝에는 언제나 시원함이 있으니,

도서관 문을 나설 때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나의 평]


우리 각자의 삶은 하나의 도서관이

우리 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과 같다.
각자의 청구기호를 가지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억을 배열해 둔다.


정배열도, 오 배 열도

모두 환영하는 나만의 도서관.


나는 오늘 그 도서관의

보존서고를 열어보려 한다.


그 안에는 우리에게서 잊혀진

기억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책 내용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p24,25
그들의 연애가 펼쳐지는 곳이 하필 '도서관' 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자식이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무조건 기특해한다. 커피값 하라며 넉넉히 용돈도 쥐여준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기에 부모의 신뢰를 담보로 한 도서관 연애는 어딘가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들의 부모를 대신해 순찰을 돈다.


이 부분을 읽다가 피식 웃어 버렸다. 우리 동네에는 커다란 운동장이 있다. 운동장 구석구석 아이들이 삼삼오오 여기 구석, 저기 구석에 모여 같이 이야기를 하고 핸드폰으로 깔깔거리며 놀기도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러너와 워너들 속에서 깔깔 거리며 그 속을 같이 걷다가 다시 연어들처럼 원래 있는 곳으로 가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 또 놀곤 했다. 나 역시 그 운동장을 도는 시간 내에는 그 아이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매의 눈으로 주시하곤 했다. '그래, 차라리 여기서 놀아라. 일 생기면 신고라도 할 수 있게.'라고 나는 그러한 마음으로 그들을 본다.



p28.29
오배열을 보는 시간은 청구기호와의 고독한 싸움이다. 요령 따윈 통하지 않는다. 잠시라도 긴장을 놓치면 잘못 꽃힌 책을 보고도 스쳐지나간다. 책제목은 시야에서 지워진다. 오로지 숫자와 문자의 배열. 그 질서 있는 세계에서 이탈한 책만을 골라내야 한다.

내 인생에서 정배열과 오배열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정배열(잘 닦인 길)따위가 애초에 있을 리가. 인생은 B(Birthday)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한다. 나의 선택은 애초부터 C(C8)의 오배열의 연속인 것을. 하지만, 나 역시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배열(예기치 않은 길)에서 삶에 대한 의지가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에서 오배열을 보는 시간이 청구기호와의 고독한 싸움이라면, 나의 오배열을 보는 시간은 나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P50~
토하셔도 됩니다.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토'를 반긴다. 그 순간 사람들은 번잡한 세상과 단절된 듯 가장 고요하게 몰입한다. 물론 가끔 책을 읽으며 키득거리는 아이들도 있다. 아주 즐거운 토를 하는 셈이다. 냄새도 나지 않으니 보는 이도 즐겁다.


도서관에서 토한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고등학교 때 기억이 떠올랐다. 잊고 있던 나의 C급 기억. 고등학교 때 갑자기 속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고 화장실로 가려는 순간, 그만 교실 뒤에서 토를 해버린 것이었다. 교실에 모든 아이들이 나에게로 시선이 쏠렸던 것 같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교실 내에서도 친했던 친구들이 달려와서는 나에게 양호실로 가라 했고 그 친구들이 모두 뒷 처리를 해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병명은 체함.이었다. 2주를 내리 체한 채로 다녔던 것이었다. 학기 초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학교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차멀미인 줄 알았던 것이 체한 채로 2주를 다니다 몸이 버티다 못해 나의 감정을 토하듯 교실 바닥에 그만 쏟아내고 만 것이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은 죄로 입학하기 직전에 보다 못한 동네 이모가 어머니를 설득해 교복을 사 입고 학교를 입학했다. 아침마다 그 눈칫밥에 체하지 않았을 리가.



P74~ 혹시 본인 맞으신가요?


결혼 준비에 화난 나는 그에게 '파혼해'를 던지고 잠수를 탔다. 잠수란 무릇 찾을 수 없어야 하는 것. 그 길로 홍콩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한국에서는 별 이야기 없더니 홍콩에서 여권과 나를 묘하게 번갈아 본다. 그러면서 여권 사진을 가리킨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I'm diet" 여권을 검사하는 분이 그제야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만료되기 전 여권에는 살찐 내 모습이 박제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


P120
무심코 컴퓨터 화면에 뜬 이용자의 대출 목록을 보았다. 다섯 권 모두 암 환자의 영양식에 관한 책이었다.... 어쩌면 그는 본인이 암 환자이거나, 적어도 가족 중 누군가가 암과 싸우고 있을 터였다. 그제야 보였다. 책등에 나란히 적힌 제목들이 아니라, 그 너머의 간절한 사연이. 한 사람의 오늘이. 어쩌면 내일이. 고스란히 담긴 책 다섯권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 부분을 읽는 순간, 문득 두 해 전, 나의 대출 목록이 떠올랐다. 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도시재생 관련 서적들을 거의 쓸어 담듯 빌렸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단지 연구를 위해 필요한 자료를 모은다고만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그 목록 역시 내 인생의 한 조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책을 빌린다는 것이 이런 의미였구나. 그 시절의 고민, 관심사, 내가 붙들고 있던 세계의 모양까지도, 대출 목록 속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던 것이다. 책을 빌린다는 행위가 이렇게나 조용하고도 확실하게 한 사람의 삶의 단면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P146
이용자가 보존서고의 책을 찾는 날은 그래서 기쁘다. 돌돌돌 손잡이를 돌려 빽빽한 서가에 길을 내면, 간신히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좁은 공간 속에 뜻밖의 보물들이 잠들어 있다.


논문을 쓸 때 도시재생에 관련된 책이란 책은 모두 빌려다 보았다. 그중에서 서가에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녀석도 있었지만, 보존서고에 내려가 있는 녀석이 있어 사서님에게 찾아달라고 하며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귀찮은 일을 시켜서 죄송합니다.'라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더 이상 그 친구들을 꺼내달라 말할 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의 햇빛 어때- 사람의 손길을 느끼게 해 주겠어!"




P194
주말이면 도서관은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로 북적이다. 네 식구가 총출동해 80권을 대출해 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서가 한 줄이 통째로 사라진다. 무거운 책더미를 번쩍 들어 올리는 젊은 아빠들을 보면, 마치 막냇동생처럼 기특하다. 유난히 든든해 보이는 그의 팔뚝에서, 나는 근육의 가장 아름다운 쓸모를 본다.


나와 그의 든든한 팔뚝이 생각난다. '2주 안에 이거 다 읽을 수 있어?'라고 묻는 나에게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아이. 한 달에 오십 권씩 읽어 해치우던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을 부지런히 도 다녔다. 이제는 겨울이다. 우리 가족의 루틴이 돌아왔다. 외부 활동은 현저히 줄어들고 다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부지런히 읽겠지.



P199, 200
우리 모녀의 잠은 대체 누구로부터 온 것일까. 6.25 때 피난 가는 절체절명의 순가에도 잠을 자고 있었다는 돌아가신 큰고모가 떠올랐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굳이 깨우진 않는다. 하지만 내 딸이 도서관에서 졸고 있는 모습은 안쓰러움을 넘어 속이 쓰렸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고, 많이 배우지 못한 시기에 자라난 부모님은 이런 내가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 부담스러웠을 것이라 지금에 와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이는 나를 닮았다. 호기심이 많고, 그 호기심은 타인이 생각지 못하는 곳으로 튀었다. 잠을 자는 것도 그렇다. 아이는 빨리 잠들고 깊이 잔다. 나는 빨리 잠들지 못하지만, 한번 잠들면 깊이 잠들고. 그는 빨리 잠드는 대신 옅게 잔다. 아이는 모든 부모가 바라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를 실천하는 아이였던 것이었다. 가끔 이 아이를 보며,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다들 나에게 이 아이를 보며 무슨 걱정이 있냐 말하지만, 그들은 모르는 것들이 있다. 나는 세상의 이치란 것이 좋은 것만 닮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깊은 불안이 그 아이에게 언뜻언뜻 보일 때 그럴 때.



P232, 233
중년에 재취업을 준비하며, 나는 22년간의 경력이 무용하다고 느꼈다. 너무 길고 버겁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17년 전 내가 작성했던 보도자료 속 한 문장이, 벼랑 끝에 선 내 손을 잡아주었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주말마다 문화센터에서 라마즈 호흡법 수업을 들었다.. 정작 출산은 제왕 절개를 해야 했고, 라마즈 호흡은 써보지도 못한 채 잊혔다...우리의 지난 시간들은 그렇게 사라지거나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쓸모 있는 중년의 삶을 단단히 빚어내고 있었다.


살기로 결심한 순간.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던 말. '언젠가 이 마음이 나의 거름이 되는 날이 오겠지. <오늘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 13화. 서울 달의 찰나>' 내가 살아온 모든 것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다. 내가 겪은 것들은 이름이 없이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하더라도 어디론가 가지 않고 나의 삶에 돌이 되어 층층이 쌓이고 있다.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들은 틈이다. 이름 없는 기억들이 이름 있는 기억들 사이에서 무게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P238,239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춤이다."
저자의 메시지는 간명했다. 인생은 목표를 향해 달려야만 의미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춤처럼 매 순간이 완전하며 그 자체로 빛난다는 것이다. '이루어가는 과정'이 곧 '이룬 것'이 되는 움직임.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네르게이아'다. 살아 있는 '지금, 여기'의 모든 움직임이 그 자체로 '완성된 에네르게이아'라고 책은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우리는 종종 '완성된 순간' 만을 가치 있게 여기며, 실은 이뤄가는 과정 속의 모든 '움직임'이 바로 인생이고 그것 자체가 이미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25년 11월 30일.
아이는 청도 운문사 주차장에서 - 사리암 - 운문사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왕복 8.5km에 달하는 길을 걸었다. 지도에는 평지 2km, 오르막과 900개가 넘는 계단이 포함된 1km, 총 6km라고 안내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선거리였다.

실제로 길은 구불구불했고, 발목을 잡는 돌뿌리와 미끄러운 낙엽이 뒤섞여 있어 돌아가야 하는 구간이 더 많았다. 다녀와서 확인하니 워치에는 8.5km라고 찍혔지만, GPS도 정확하지 않으니 대충 그 정도의 거리의 길이었을 것이라 여길 뿐.


사리암은 세 번 올라오면 소원 하나를 꼭 들어준다는 절이었지만, 아이는 한 번만 올라도 소원을 들어줘야 할 만큼 아이가 오르기엔 버거운 산행이었다. 200m를 남겨두고 계단 끝에 있을 사리암을 향해 오르는 아이에게 우리가 장난스럽게 “세 번 올라오면 소원 들어준대. 오늘 한 번 왔으니 이제 두 번만 더 오면 되겠다.” 하고 말하자 아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소원 안 빌고 말지. 아— 못 와, 못 와….”


그 말 끝에 아이는 다신 안 올라가겠다던 그 모운사를 떠올리며, 차라리 그 절을 가겠다. 고 툭 덧붙이는 말에 내 웃음이 산 자락을 마구잡이로 치며 하늘로 올라갔다. 영험하긴 영험한 절이구나. 사리암 올라가는 길에서 벌써 너의 소원을 들어주다니.. 라고, 아이가 절에서 비는 소원은 늘 언제나 '가족의 건강, 행복' 이었다.


인생이 마라톤이면 어떤가. 춤이면 또 어떤가. 세 번 다 올라가지 않으면 뭐 어떤가.'지금 여기'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된 것이 아닌가. 자신의 젓먹던 힘을 쥐어 짜내서 사리암에 도착한 아이의 눈을 보니 자신의 세상 하나가 또 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쿠키 글!


아이가 스슥하고 책을 읽는 내 옆에 와서는 책 이름을 나 처럼 입에 넣어 굴려보더니 "도서관을 왜 삶아......................" 라고했다. 크크크크큽 하고 나는 책장에 엎드려 한참을 웃었다. 나 역시 도서관을 삶으면 반숙일까. 완숙일까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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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가 도망가 /



>>작가님의 책 구매처! 바로 가는 방법

어디를 이용하시는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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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es24.com/product/goods/163102343


오늘도 좋은 책 한 권 잘 냠냠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도서관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자신의 도서관을 열어보는 건 어떨지. 추천드리며 이만 저는 쫑쫑!



>> 작가님의 브런치로 바로 가는 방법!


https://brunch.co.kr/@in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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