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 권하는 냐옹이 Mar 18. 2023

명왕성 킬러?,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명왕성이 사라진 여덟 행성의 시대

학창 시절 주입식 상식의 힘은 세다. 태정태세문단세, 자축인묘진사오미,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다.


동시에 이런 오래된 상식에 변화가 생기는 건 참으로 어색한 일이기도 하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요오드는 아이오딘으로, 아밀라아제는 아밀레이스로, 게르마늄은 저마늄으로 불리는 게 뭔가 쉽게 연결되진 않는다(독일식이나 일본식 용어를 미국식으로 바꾼가라고 한다).




아직 그 부분은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나는 행성에 관해 아주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명왕성이 행성으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행성이라는 단어는 태양계에서 정말로 중요한 아주 소수의 천체에만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나가 명왕성보다 더 크기는 했지만, 태양계 전체에서 봤을 때 행성으로 불릴 만큼 아주 중요한 천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태양계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됐다는 기사를 접했을 것이다. 2006년 8월 24일의 일이다. 별을 좋아하긴 해도 명왕성에 대해 어떤 내적 친밀감을 갖고 있던 건 아니라 당시엔 그냥 그러니라 했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 아닌 수금지화목토천해는 어색하지만, 그 자세한 과정을 알아봐야겠다까지는 아니었던 게 사실. 


시간이 흘러 <나는 명왕성을 죽였다>라는 책이 출간됐을 때 제목부터가 워낙 발칙(?)하고 도발(?)적이다보니 늘 '읽을 책' 리스트에 들어있었으나 이제야 '읽은 책' 리스트로 이동했다.


명왕성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ko/@nasa>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크 브라운은 스타 천문학자라고 한다. 천문학자라는 명칭에서 연상되는 건 과거 티코 브라헤,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이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처럼 하늘을 관측하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을 찾는 이미지이다. 하지만 현재는 자동화된 망원경이 이미 천체 지도를 완성해 둔 상태라 새로운 별을 찾는 천문학자는 줄어드는 추세인데, 마이크 브라운은 여전히 새로운 천체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독특한 천문학자이기도 하다. 번역의 승리일 수도 있지만, 술술 읽히게 책을 쓴 걸 보면 대중을 대상으로도 꽤 많은 강의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1930년 명왕성이 처음 발견됐을 때는 그것을 부를 만한 다른 좋은 방법이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명왕성이 해왕성 너머 궤도를 돌고 있는 수천 개의 천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투표는 1930년에 있었던, 사정을 봐줄 수 있는 실수를 다시 바로잡는 투표가 되어야 합니다. 아홉 개의 행성에서 여덟 개의 행성으로 바뀌는 것이 과학이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진 저자인 마이크 브라운이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쳐 명왕성이 행성으로써 적합하지 않으니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에 강한 영향을 키친 인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마이크 브라운은 국제천문연맹 정회원도 아니고, 명왕성을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투표에도 당연히 참여하지 못했다. 투표권이 없으니. 다만 행성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지, 우리에겐 행성이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밝혔을 뿐.


물론 카이퍼벨트(태양계의 해왕성 궤도보다 바깥이며, 황도면부근에 천체가 도넛모양으로 밀집한 영역)에 속한 새로운 천체를 발견하면서 명왕성이 행성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슈를 제기한 건 맞다. 하지만 명왕성 살해자(Pluto Killer)라는 별명까지 붙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악플이나 항의 메일을 받았다는 건 억울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명왕성 너머 행성X를 발견한 천문학자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자진 반납한 셈이니까.


IAU 명왕성 퇴출 투표 <출처 : https://www.iau.org/news/pressreleases/detail/iau0603/ >




명왕성이 발견되기 전인 1900년대 초까지는 태양계 입주자가 들고나감이 심했다. 지금은 소행성으로 분류되는 별들이 태양계 행성으로 분류됐다가 행성이 아닌 것으로 최종 정리가 되고 한동안 해왕성까지 8개의 행성이 태양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정리가 된다. 그러던 중 1930년 2월 18일 클라이드 톰보(Clyde Tombaugh)에 의해 명왕성이 발견되면서 9개의 행성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시대가 된다.


책을 읽으며 우주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구나 싶었다. 여전히 미지의 세계인 우주, 어찌 보면 새로운 발견에 따라 과거 진리라 여겨지던 것이 새롭게 정의되는 것이 당연한 건데 말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하기 이전에 당연히 지구는 고정되어 있다는 천동설이 진리라 여겨지던 것과 같은 이치일 수 있다.


적합한 연결일지 모르지만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A와 B 중에 A를 선택했을 때 A를 선택한 것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A를 더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기존에 정답이라고 알고 있던 것에 변화가 생기는 걸 달가워하지 않은 것도 이와 같을까? 저자에게 명왕성 킬러라는 결코 기분 좋지 않은 닉네임이 붙은 건 한편으론 인지 부조화에 따른 반응이 아닌가 싶다. 명왕성과 우주에 관한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절대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었나, 멀게는 '관용'에 대해서까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천문학자에게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건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에 버금가는 느낌이다. 행성을 발견하기까지 삽질(?)의 과정, 새로운 발견에 대한 천문학자 간의 경쟁 관계 등 드라마틱한 내용 외 천문학자 이전에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 행성이나 위성에 이름을 붙이는 규칙까지 천문학을 더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류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탄소로운 식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