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막론하고,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보니 그 사람이 현명했구나 하는 분들이 꽤 계신다. 지금도 종종, 대뜸 던지는 질문만으로 가르침을 주시는 형님이 한 분 계신데, 이건 스타트업 대표가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엘리베이터 스피치'에 관한 이야기다.
20대 후반 학부 재학생 시절, 학교 벤처동아리를 하면서 창업을 했었는데 같은 동아리에 우리학교 MBA 과정을 밟고 계신 형님이 있으셨다. 그 형님은 창업을 한다고 까불고 다니던 내게 '그래서 넌 무슨 일을 하는데?' 라는 질문을 과장 좀 보태서 만날 때 마다 하셨다. 한 문장으로 줄이지 못 하면 너 스스로를 모르는거라면서.
정말 웃긴게 난 항상 장황했다.
일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단 한 번도 한 문장으로 줄이지 못 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표현하지 못 했고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해도 깔끔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니 더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길 수밖에 없는거 아냐?' 라고 우겼고 내 스스로도 내 말이 맞다며 시건방을 떨었다.
그런데, 지나보니 그 형님 말씀이 맞다.
고객은 바쁘다.
장황한 설명을 들어줄 이유가 없다.
나조차 클리어하지 못 한 나를 고객이 이해해줄리 없다.
당연히 굳이 나를 소비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까, 깨우치지 못 하면 언젠간 굶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건 안 될 말이다.
나를 지칭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누군지 이해하고 싶었고 내 일을 정확하게 줄여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나와 내 일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강의만 하는게 아니니 강사는 아니다.
컨설팅만 하는게 아니니 컨설턴트도 아니다.
국영수만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컨설팅만 하는 것도 아니다.
가르치고 던져놓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자습만 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학원도, 과외도, 관리형 독서실도 아닌 내 일은 뭐고,
교사도, 강사도, 컨설턴트도 아닌 나는 대체 뭔가?
그래서 온갖 수식어를 붙이며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냈다.
'스카이 캐슬급 학습 코디'
'프리미엄 과외'
'습관교정+국영수 수능 과외'
어디 이것 뿐이겠나. 하지만 오히려 이럴수록 더 추상적으로 다가왔고, 내게 관심을 보였던 고객들까지도 '그래서 뭘 어떻게 해주겠다는거야?' 라는 말씀을 하시곤 떠나가는 일이 꽤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왜 그렇게 비싸요?' 라고 하셨던 학부모님이 한 달 맡겨보시고는 '비싼게 이해가 되네요' 라며 내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전해주시기도 했다.
나에 대해 고민한 시간은 꽤 길었고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도 됐다. 그래서, 이제 조심히 다시 나를 칭해보려 한다. 비록 틀리더라도 아니 당연히 틀렸겠지만 끊임없이 나를 깎아갈 것이다.
나는 '수능 트레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