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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선 Dec 15. 2016

우동사에 사는 것이 어떠냐고?

 2016년 11월 26일

'부족할 것 없이 좋다' 

우동사에 산지 이제 딱 1년이 되었다. 작년 11월 가벼운 출발 ‘가:출’이라는 3개월간 함께 살아보는 프로젝트를 통해 우동사에 오게 되었다. 말 그대로 살던 집을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면서, 가볍게 시도해보자는 의도에서 ‘가벼운 출발’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우동사에 사는 이들이 가진 삶의 지향이 나와 맞다고 생각되어 이 동네에 오게 되었고 맛배기 과정인 ‘가:출’을 통해 동네에 자리잡게 되었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묻는다 ‘우동사에 사는 것 어떠냐’고?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부족할 것 없이 좋아’ 이다. 아직 신혼기간이 안끝나서 그런가 나는 우동사의 삶이 부족한 것 없이 좋다. (우동사에서는 함께 살기 시작한 초기를 깨소금 볶는 신혼 생활에 비유한다)

내가 우동사에서 충족감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같이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3년 반전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네트워크라는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부하며 삶의 방향을 전환했다. 상품사회에서 개인들은 열심히 능력(경쟁력)을 키워야 생존할 수 있다. 공동체에서는 서로에게 참견하고 기대기도 하고 도움을 주며 살 수 있다. 그렇게 사는 삶이 훨씬 안정감이 있고 풍요롭다.  혼자보다 함께 하는 것이 즐겁고, 무엇가를 함께 꿈꿀 수 있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안정감을 준다. 적게 벌고 적게 쓰고 대신 시간을 많이 가지며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다. 나를 혹은 내가 하는 일을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게 하고 싶다. 그런 나의 지향은 우동사에 와서 더 구체화되어지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백수'라는 라이프스타일이 자연스러운 동네 

우동사에 와서 놀라웠던 점은 여기는 백수 혹은 자유직으로 일하는 이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백수라고는 하지만 정규직 임금노동자는 아닐지라도 다들 무언가를 하며 생산하고 많지는 않지만 돈도 벌고 있다. 그리고 그런 노동 형태가 '아직 취업하지 않은' 이라는 미완의 상태라기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일하기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 정규직 일자리를 가진 이들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많을 텐데, 9 to 6의 삶이 일반적인 것처럼 느끼는 게 오히려 이치에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우동사에는 백수가 많기 때문에 낮에도 집에 사람들이 많다. 그런 비정기적인 일하기 스타일이 혹은 백수 라이프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동네에 이런 친구들과 공부도 하고, 가끔 알바도 같이 하고, 글도 쓰며 놀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었던 게 많았던 나는 그만큼 활동 반경이 무척 넓었다. 요가수련은 강남에서 하고, 친구들은 주로 홍대에서 만나며, 공부는 용인(문탁)에서 하고, 집은 분당에 있었다. 활동영역이 넓다보니 백수임에도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교통비도 많이 들었다. 놀이의 공간, 공부의 공간, 생계의 공간을 하나로 통합하고 싶었다. 우동사로 이사오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통합이 이루어졌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같이 책을 읽는 친구들이 생겼다. 영쩜사 펍에서는 때때로 여러 가지 계기로 벙개가 이루어진다. 소식지 활동이나 백수학교 등 함께 일을 도모할 친구들도 있다. 우동사에는 이런 걸 같이 할 수 있는 시간부자들, 백수가 많아서 참 좋다. 아직 생계로서의 돈벌이는 불안정하긴 하지만, 삶의 비용을 줄이고 임금 노동자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며 하고 싶은 일들을 집중해서 하고 싶다.   


'해야하는 것'을 걷어내고 '하고싶은 것'에 집중하기 

이런 동네에서의 삶이 안정화되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해야하는 일'을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덜어내고 있다.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도 그것을 하다보면 어느새 ‘해야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다시 점검한다. 그때 왜 하고 싶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러면서 하고 싶은 마음을 다시 살려내고 계속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마음을 살리기 위한 쪽으로 방법을 수정하기도 하고, 하고싶은 마음보다 '해야한다' 혹은 '하기로 했기 때문에 한다'는 마음이 크다고 판단되면 그만두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천성이 좀 진지한 것인지 나는 계속 공부가 하고 싶다. 우리의 삶이 소재가 된 공부, 세상을 잘 살기 위한 공부. 동네 독서모임에서의 공부도(지금은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있다), 때때로 열리는 탐구 모임에서의 공부도, 앞으로 하고 싶은 의료 공부나 세상에 대한 공부도, 그런 공부이면 좋겠다. 그런 공부가 소식지 활동, 백수학교 등의 활동 동력이 되고, 그것이 다시 배움을 불러일으키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삶’ 보다 ‘일과 삶이 하나로 통합되는 일상’을 살고 싶다.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동네

하고 싶은 공부가 많은데 그걸 우동사 친구들과 할 수 있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기고 나니 신나지 않을 수가 없다. 평일 아침 10시에 회의하는 것도 즐겁고, 밤 늦도록 글을 쓰는 것도 즐겁다. 예전 수도원과 같은 종교 공동체는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는 환대의 공동체였다고 한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우동사에서 그런 삶을 꿈꾼다. 아침에 일어나는 이들이 함께 요가도 하고, 책을 보고, 밥을 짓고, 텃밭을 가꾸고, 아이를 돌보고... 그런 소박한 일상을 정성껏 일구는 동네,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서로 배우며 성장하고 그 즐거움을 밑천 삼아 다른 사람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 동네. 그런 꿈을 함께 꾸는 이들이 있어서 우동사의 삶이 즐겁다.



* 2016년 11월 26일 열린  '우동사 포럼' 에 소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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