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한 웹사이트 구축/운영하기
저의 첫 직장은 디자인 에이전시, 직업은 디지털 콘텐츠 에디터였습니다. 우리 팀의 주된 업무는 기업들의 디지털 마케팅과 웹사이트 구축을 대행하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대행사가 그렇듯 제안요청서(RFP)를 받고, 몇 주 동안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열공 후, 수 십장이 넘는 제안서를 만들고, 회사의 높은 분들이 비딩에 참여하여 계약이 성사되면,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 졸업장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던 새내기 사원이었기 때문에 처음 몇 달은 선배들의 제안서 작성을 위한 트렌드 서칭과 작은 아이디어 제안. 그리고 저녁 식사 주문을 담당했던 것 같습니다. (^^)
회사에 근무한 일 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총 3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식품 브랜드의 디지털 마케팅 플랫폼 운영, 나머지 두 개는 대기업 웹사이트 구축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웹사이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축하는 것은 인하우스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많이들 기존 시스템이 문제야!라고 하지만 완전히 뜯어고쳐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여러모로 어렵기 때문이죠. 이처럼 온라인상에 새로운 집을 짓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꼭 지금 단계에서 웹사이트가 필요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하려면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IT분야가 아닐지라도, 네이버에서 우리 기업을 대표하는 사이트 하나는 검색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하고요. 지속적인 마케팅을 위해 회원관리가 필요하고, 그래서 회원가입이 가능한 홈페이지는 필수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이트(서비스)를 만들기 전, 큰 비용과 시간을 지출하기 전, 지금 창업 단계에서 꼭 필요한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새내기 신입사원에게 주어진 첫 업무는 콘텐츠 등록과 배너 운영이었습니다. 매주 한 번씩 음식 레시피를 본사에서 전달받아 사이트에 등록하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그 후 체험단을 모집하는 이벤트 페이지를 직접 기획하기도 하고, 메인부터 상세페이지까지 수많은 배너들을 직접 기획, 제작, 관리 툴에 등록하는 일을 했습니다. 한 달에 이벤트 몇 개가 진행되고, 제품 판매는 이뤄지지 않는 단순한 마케팅 플랫폼이었음에도 저뿐만 아니라 최소 4-5명의 기획, 디자인, 개발 담당자가 팀을 이루어 웹사이트 하나를 운영해야만 했습니다.
운영을 고민하지 않고 채널을 오픈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은 없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온기가 없는 듯, 오픈만 하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웹사이트의 생명력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채널로 접속한 사람들에게는 마이너스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계획이라면, 사이트의 목적은 무엇이고 누가, 어떻게, 얼마의 예산으로 운영할 것인지 구체적인 운영안이 꼭 사전에 필요합니다.
11번가 같은 쇼핑몰에 가입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회원가입 시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동의를 한 기억 있으시죠? 필수사항과 선택사항을 친절하게 구분해서 표시해둬서, 꼭 필요한 웹사이트가 아니라면 필수항목만 동의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폭탄처럼 수많은 광고 메시지가 쏟아져 올 테니까요.
또한, 까먹을만하면 메일과 문자 등으로 개인정보 이용내역을 알려줍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사이트에서는 휴면회원이 되었다며 해제를 위한 본인 인증을 거치기도 하고요. 일반 사용자로서는 잘 모르지만, 시각 장애인 분들의 웹접근성을 위한 작업도 진행됩니다.
반대로, 기업 입장에서도 회원에게 광고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여부를 선택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동의 이력을 잘 저장해둬야 문제의 소지가 없습니다. 국가가 가이드한 방법대로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여부 변경사항을 이용자에게 잘 안내하기도 해야 합니다. 일부 규모가 작은 사이트에는 적용되지 않는 부분도 일부 있겠지만,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는 6년 동안 관련 법을 지키기 위해 기획하고 구축했던 업무들입니다.
이처럼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만든 웹사이트가 현행법을 위반할 수 있습니다. 들어오는 사람은 얼마 없지만, 법을 준수하기 위해 이 것들을 직접 기획하고 구축한다면 이 사이트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냉철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임블리도 카페 24를 사용한다는 라디오 광고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실제로 워드프레스를 통해 브랜드 사이트 구축한다거나 고도몰, cafe24를 통해 쇼핑몰을 빠르고 간편하게 오픈할 수 있습니다. 기업 담당자에게 편리한 관리 도구도 제공하고 커스텀할 수 있는 기능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실무에서 느끼는 치명적인 단점은 유지보수의 어려움입니다. 워드프레스 등으로 구축된 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를 잘 아는 전문인력들이 꼭 필요하고, 정해진 틀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기능을 구현하기는 어렵고 제한사항도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차를 고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것이 더 경제적인 것처럼 가끔은 유지보수를 하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잘 운영하던 사이트를 마이그레이션 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시간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기에 웹사이트를 구축하기 전부터 현명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기획은 간단하지만, 개발은 복잡하여 예상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다양한 디바이스의 해상도와 접속 환경에서 잘 구현되는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과거보다) 집요하게 테스트하고 구축해야 합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기 위한 작업 역시 별도의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할 만큼 범위가 넓고 복잡합니다.
내 아이디어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공감해줄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를 바로 구할 수 있을까요?
페이스북 같은 SNS를 만들고 싶습니다.
예산은 백만원 정도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개발자를 소개해달라는 사람들에겐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으로 대화를 마무리합니다. 왜냐면, 웹사이트의 구성과 주요 기능에 따라 사이트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비용과 노고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웹사이트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드는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
그래서 저는 우선 사업을 시작할 거라면 대신 기존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길 추천합니다. 브랜드 사이트는 페이스북 페이지로 대체하거나 노션으로 만들고, 이벤트 모객은 네이버 예약과 구글 닥스를 통해 진행해 보는 거죠. 예를들어, <남의집 프로젝트>는 사이트 내에 신청기능을 직접 구현하지 않고 네이버 예약을 통해 진행하고, <당근마켓>은 IT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멋진 기업 사이트 대신 노션으로 기업 사이트를 만들어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첫 직장에서 기획자로서 직접 기획했던 기업 웹사이트 두 곳을 들어가 봤습니다. 놀랍게도 6년 전 제가 기획한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더군요. 최신 트렌드에 맞지 않고, 관리 기능도 충분하지 않아 관리자가 운영하기에 엄청 불편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왜 그들은 사이트를 바꾸지 않았을까요? 대기업 역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웹사이트를 새롭게 리뉴얼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창업을 한다면 웹사이트부터 먼저 만들지 마세요.
웹사이트 만들기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