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그렇지 않다고 바로 대답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애 키우는 보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날 선 말이 오가는 부부싸움 중에 남편은 이런 질문을 내게 던졌다. 당연히 아이를 키우는 보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온몸이 긴장된 수술실에서 하얀 태지가 묻은 아이와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목도 가누지 못하던 아이가 내 얼굴을 만지고 엄마를 외치는 지금, 그 성취감과 만족도는 대학 합격도 첫 취업도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남편의 질문을 듣고 목이 컥 하고 막혀왔고, 화병이 난 사람처럼 가슴이 뜨거워지고 답답했다. 왜 나는 바로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고, 헛소리 하지 말라며 반문하지 못했을까.
아이를 낳고 우리 부부의 싸움 레퍼토리는 지겹도록 똑같다. 육아 및 가사 참여에 대한 서로의 기준점이 너무나도 달랐고, 불만과 서운함이 물 잔에 찰랑 찰랑이다 못해 쏟아져버릴 때 나의 일방적인 희생에 대한 억울함도 같이 터져 나온다. 핸디캡을 가진채 커리어를 쌓을 수밖에 없었던 임신기간, 내 인생이 그대로 멈춰버린 듯한 휴직기간. 도합 이년이라는 긴 시간의 희생을 인정하고 조금 더 도와달라는 것이 나의 반복되는 주장이다. 사실 남편은 기대보다 더 아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단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사회도, 나의 부모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희생을 조금 더 세심하게 알아주길 하는 마음일 것이다. 로봇 같은 개발자 남편은 이런 섬세한 감정을 이해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과 싸움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남편이 오히려 회사에 나가는 편이 좋겠다며 조기 복직을 권유했었다. 하지만,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고, 돌까지만 직접 키우겠다며 자발적으로 결정한 휴직기간이었다. 하지만 싸움이 반복될수록 나의 희생은 (어쩔 수 없이 선택했지만) 내가 선택했기에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고, 나는 육아와 커리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고 투정만 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애 키우는 보람으로 충만한 삶이라고 말하기에는 나의 커리어, 남편의 태도, 그리고 육아에 지쳐 열정과 에너지가 사라져 버린 나 자신이 떠올라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다. 아이의 미소에 사르르 녹지만, 그 미소를 마냥 행복하게만 보고 있을 수 없는 양가감정이 늘 항상 함께 공존한다.
학원, 식당, 네일숍, 부동산 등 골목상권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작은 가게들의 사장이 여성인 경우를 많이 보았다. 아이를 낳기 전엔, 여성들이 잘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유독 여성 사장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의 평화와 아이의 행복을 1순위로 선택한 엄마들의 어쩔 수 없는 두 번째 대안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9시 - 6시로 대변되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몸이 메여있는 삶은 아이를 키우는데 걸림돌이 많다. 오늘 수입을 조금 줄이더라도, 언제든지 아이에게 달려갈 수 있다는 심적 여유가 있는 삶을 꿈꾸며 자영업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자영업 역시 그런 삶은 힘들겠지만.
실제로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도 결혼을 기점으로 회사를 떠났다. 어차피 아이를 낳으면 회사 다니기도 힘든데, 미리 작은 사업이라도 시작해 자리를 잡아두고 임신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옛날 같으면 쌓아온 커리어를 버리지 마라 후회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잘 한 선택 같다며 나중에 기술 좀 알려달라며 헛헛한 웃음을 짓는다. 공무원,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고민해보지 않은 직장인이 있을까? 나 역시 복직을 4개월 앞둔 지금 다시 사회로 돌아간다는 설렘과 함께 많은 생각이 든다.
10개월이 된 아들은 7월부터 어린이집에 갈 예정이다. 회사 어린이집을 고대했지만, 어쩔 수 없이 동네 가정 어린이집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유독 엄마를 찾고, 엄마 아빠랑 노는 것을 확연하게 좋아하는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그래서 다시 복직을 하고 사무실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데, 벌써 둘째 이야기를 쉽게 꺼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목을 가누니 뒤집길 바라고, 뒤집으니 기길 바라고, 기어 다니니 서길 바라고, 서서 걷고 나면 둘째를 바랄 거 같다는 남편의 말에 멱살을 잡고 싶은 마음을 추슬렀다. 결단코 둘째는 남편의 육아휴직 1년을 약속하지 않으면 갖지 않을 예정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너무 숭고한 일지만 더 이상의 엄마의 희생으로만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보람에 대해서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스스로 자문하고, 자답하는 나만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다. 서른두 살의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인생에 그만큼 보람찬 일은 없었다고 스스로 답을 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