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May 09. 2019

엄마도 싱글이 그리울 때가 있어

아이 두고 홀로 떠나는 여행


골방에 처박아둔 캐리어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인천공항의 문을 열고 분주함 속으로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여행은 언제나 물질적인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영적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월급의 대부분을 여행에 탕진했던 과거의 나는 임신과 함께 사라졌고, 아이를 임신한 지 1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진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은 개인이 쌓아온 취향의 산물이다. 여행지를 고르는 것부터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대자연 속의 일부가 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화려한 도시 속 문화콘텐츠를 즐기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시작부터 잭콕을 타주는 보트에 타서 바다를 즐기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밤을 잊은 채 겜블링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내 여행 취향과 임신&육아는 도저히 공통점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고,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며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화려했던 싱글의 공기가 콧잔등을 스치며 그리움이 밀려온다.


3박 4일 동남아로 떠나는 짧은 일정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정말 많았다. 이제 막 7개월이 된 아이가 잘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벽 다섯 시까지 직접 이유식을 만들었다. 평소에는 시판 이유식도 잘 먹였는데, 놀러 가는 엄마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냉장고의 식재료를 손질하고 소분하여 냉동실로 옮기고, 집안 살림을 살폈다. 아이의 하루 일과표를 그리고, 유의사항을 적고, 아이의 짐을 한가득 싸고 나서야 떠날 채비가 끝났다.



여행을 위해 많은 이들의 희생도 필요했다. 남편은 나를 위해 여행기간 내내 연차휴가를 냈고, 시어머님은 짐 싸서 이사 온 아들과 손주를 위해 손이 많이 가는 주말을 보낼 것이다. 우리 서준이는 마치 엄마가 어디 간다는 것을 아는 듯 하루 종일 찡얼거렸는데, 엄마가 없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하는 인생의 첫 숙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놀러 가야겠냐고 묻는 이들도 많았다. 왠지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가 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평생을 함께 성장해온 고등학교 친구들과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 그 즐거움을 위해 남편의, 시댁의, 그리고 서준이의 도움을 받는 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여행을 시작으로, 앞으로 있을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도 엄마는 엄마의 삶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싱글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과거를 그리워하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아! 엄마 잠깐만 놀고 돌아올게!







매거진의 이전글 여유로운 오늘이 두려운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