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고, 서준이는 당연한 과정처럼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3월이 아니면 자리가 없다는 원장 선생님의 꼬드김에도 버티고 버텨 10개월이 된 지금에야 보냈지만 아직도 어린이집 막둥이 신세네요.
처음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편의점에서 라면을 하나 먹었습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맡긴 것은 처음이라 긴장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아이와 잠시 떨어져 먹는 라면 맛은 최고였습니다.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엄마한테도 엄마의 시간이 간절히 필요했던 거죠.
누구의 성격을 닮았는지 어린이집에 3주째 다니는 서준이는 어린이집 앞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엔 엄마 대신 선생님의 품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모습에 살짝 질투도 났지만, 집에만 있을 수 없는 엄마를 배려해주는지 참으로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기특합니다.
어린이집 보내기 너무 어리네요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얼마 전 보일러 수리기사님이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하원 하던 서준이를 보더니 어린이집 다니기 너무 어린 나이라며 측은하게 서준이를 바라봅니다. 별생각 없이 쉽게 던진 말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가슴이 퍽 하고 먹먹해졌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습니다.
- 내가 어린이집을 너무 일찍 보낸 걸까
- 나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사회생활을 일찍 하는 건 아닐까
- 엄마가 아이를 케어해주는 집 아이와 다르게 자라면 어쩌지
- 같은 반 친구가, 형이, 선생님이 때려도 말도 못 하는 서준이는 어버버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까
- 난 왜 일하지, 꼭 일을 해야 하나? 서준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건 아닐까?
직업에 대한 고민이 들기 시작하면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진 것입니다. 복직할 생각에, 다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회로 돌아갈 생각에 신나다가도 이제야 안정화된 우리 가정이 걱정됩니다. 엄마와 고작 하루에 몇 시간밖에 함께 못 있는 서준이가 짠합니다. 아이가 아프고 어린이집을 거부하면 더욱 그렇겠죠?
하지만, 이렇게 집에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정말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구나라는 생각이 든 적이 단 두 번밖에 없었는데, 서준이를 낳았을 때도 서준이의 백일도 아닙니다. 하나는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갔을 때고 또 하나는 회사 동료를 만나 예전처럼 점심을 먹었을 때입니다. 다시 내 인생으로 돌아가고 싶고, 돌아가야만 그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서준이에게 행복을 전해줄 에너지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집과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어야만 합니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아이가 엄마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전문가의 보살핌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학대가 일어나는 공간이 아니라, 엄마만큼의 사랑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웃음이 있는 공간이라고 굳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은 서준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형아들이 텃밭에서 가지를 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지가 어떻게 생긴 건지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해주면 좋으련만 선생님은 연속 카메라 셔터만 누릅니다. 아이가 행복해 보이는 사진만 가득 보내주시길래 안심이되었는데, 사진 찍기에만 열중인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서준이가 안아달라고 손짓하는 그 순간에도 카메라만 서준이를 안아줄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건강하게 자랍니다. 전쟁 같았던 하루하루를 살아내니 어느덧 아이가 엄마 아빠를 말하고, 싫은 것에 도리도리로 의사를 표현합니다. 첫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서준이가 만나고 겪을 수많은 공간에서 부디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지질 않길 기도하고 또 기도해봅니다. 그리고 굳게 믿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