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편의 뒷모습
빠른 접수를 위해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나를 내려두고, 주차를 하고 돌아온 남편은 통통한 체구에서 상상할 수 없는 세상 민첩한 모습으로 응급실 입구를 뛰어들어왔다. 물론 아픈 마누라를 찾는 것보다 입구에서 안내한 보호자 목걸이를 수령하는 게 먼저인 FM이지만. 정말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뛰어오던 남편의 뒷모습을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2. 아들과의 새벽
밤새 가려움증으로 잠 못 이루다가, 얼음팩을 들고 살며시 거실로 나오니 잠이 깬 아들도 따라 나왔다. 약을 바르면 아프지 않을 거라며, 형아인 본인이 엄마를 지켜줄 거라는 4살의 말에 어찌 마음이 녹지 않으랴. 그날 새벽 우리는 택배 아저씨의 바쁜 움직임을 몰래 지켜보기도 하고, 산타할아버지가 오는 겨울을 함께 기다려보았다. 그날처럼 마음이 뭉클해지는 새벽은 내 인생 통틀어 한 번도 없었다. 요즘 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은 서준이와의 수다이다.
3. 꽃게탕
꽃게가 먹고 싶어서 배송을 시켰는데, 꽃게 손질할 남편이 급히 시댁에 갔다. 이걸 어쩌나 하다가 동네 친구에게 나눠줬는데, 한 시간 뒤 집으로 배달 온 꽃게탕.
임산부가 얼마나 먹고 싶으면 꽃게를 다 시켰겠냐며, 얼큰한 꽃게탕 한 냄비를 보내주신 친구 어머님의 마음에 참 따뜻한 저녁을 보냈다. 마음을 주고받는 것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게 또 있을까.
4. 인생은 아름답지만, 내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임신은 참으로 이벤트도 많고 힘들다. 하지만, 또 다른 인생의 행복이 찾아오기 위한 당연한 시련이겠거니.
나이가 드는지 지금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소소한 순간들에서 오는 행복을 참 쉽게 발견한다. 이제야 어른이 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