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어 밖에 나가 걷는 게 어려워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퇴근 후 한정거장 전에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즐겼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매년 똑같이 돌아오는 계절이라지만 때마다 바뀌는 풍경을 가까이 느낄 수 있었고,
하루 종일 시달렸던 일들과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려보내고 나면 한결 홀가분해진 것도 같았다.
그중에도 적당히 차가운 겨울밤을 걷는것이 가장 좋았다.
속이 시끌시끌 한 날에 걷는 겨울밤은 왠지
차가운 공기가 뜨거운 머릿속을 한 김 식혀주는 것도 같아 상쾌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살아가는 환경도 많이 달라지고,
쌓인 일을 떠올리며 도망치듯 곧장 집에 오는 날이 많아지면서
잠깐의 산책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날이 계속 됬다.
그러다 며칠 전 교통편이 애매한 곳에서 볼일을 보고 집까지 꽤 먼 거리를 한참 걷고 있자니
시끄럽던 생각들이 차가운 공기에 얼어붙어 걸음걸음 무겁게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렇게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따스한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삶에 지쳐 잠시 잊고 있던
나의 겨울 산책.
차가운 길바닥에 내려앉아 어딘가로 흘러갔을
나의 시끄러운 마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