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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Apr 12. 2024

다시 봄,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





고통스러운 일은 잊어야 살 수 있다. 잊기 위해서 현재의 일상을 열심히 삶으로써 고통의 기억을 대체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은 고통스럽더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고통을 유발하고 지속게 하는 일이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옮아가고 고통 더욱 깊어지는 일이라면 더욱 잊지 말아야 한다.




나와 남편은 1994년부터 안산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 스물네 살이었고 임신  개월의 몸이었다. 

그해 십이월, 남편은 아들의 돌 잔치를 치르자마자 입대하였고 나는 시부모와 미혼인 시숙과 함께 살며 아들을 키웠다.

지금이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 나의 상상력으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스무 해가 지난 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단원고는 내가 살던 과 학원에서 십오 분 거리에 있, 희생자 중 우리 학원 학생들의 친척이나 친구들도 몇 명 있었다.


참사 이후 나는 우울증을 겪던 몇 년 전과 비슷한 증상으로 배를 움켜잡은 채 일하며 지내야 했다. 세끼 밥을 먹을 때마다 소화제를 먹어야만 했고, 진통제 없이 일상을 지탱하기 어려웠다.       

  

안산 시민들 전체가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혹독한 후유증을 겪었다.

독서심리치료 모임 멤버들과 한 식당에서 침통하게 만났던 밤처럼 우리는 동안 웃을 수 없었고 모이더라도 가벼운 언행을 하지도 못하고 봐주지도 못했다.


안산 시민 모두가 죄인 같은 시간을 보냈다.(나중에 파가 갈렸더라도 그땐 그랬다.) 

남편은 아내의 우울증이 재발될까 봐 전전긍긍했고, 나 역시 이끼보다 더 납죽 엎드려 지내자고만 생각했다. 내게 슬픔이 고스란히 옮겨와서 나를 잠식할까 봐 두려웠다.

 

친한 동생이 단원고 약전을 읽는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가끔씩 유가족 방문한다고도 했다.

 동생과 지인 몇 사람이 '별을 품은 사람들(별품사)'이라는 세월호 독서 토론 & 유가족 연대 모임을 만들었다며, 내게 합류 제안을 하였다. 나는 학원일로 바쁜 데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고백했다.


다만 일 년에 한 번 4.16 합창제만큼은 외면 수 없었다. 유가족 분이 증언하는 행사나 어머니들의 연극 공연 등을 보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을 때도 머릿수를  채워주기 위해 참여하였다. 그때까지도 유가족 가까이에 갈 자신이 없었다.


해가 가도록 참사의 진상은 규명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생명 안전 공원 건립 약속도 자꾸 미뤄진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트라우마는 외적 사건이 근본 원인인 병입니다. 개인 내면의 갈등 때문에 생긴 게 아니란 거죠. 그래서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서는 근원적 요소인 외부 요인에 대한 명명백백한 정리가 먼저 필요해요. 이 거대한 분노와 억울함의 진원지에 대한 명확한 규명 없이 개인 내면만 치유하면 된다는 건 언어도단이에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을 살펴보면 물론 분노와 무기력증도 그를 힘들게 하고 망가뜨리지만, 결정적으로 살 수 없을 만큼 힘들게 하는 감정은 억울함입니다. (중략)
그러니 그 외부적인 요인에 대한 분명한 원인 규명이 없으면 세월호 트라우마의 치유는 한 발짝도 진행될 수 없습니다. 진상 규명이 치유의 가장 중요한 첫 단계예요.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중 95~96쪽 (정혜신/진은영, 창비)


참사 6주기이던 해에 남편과 헤어지고, 나는 일상을 씩씩하게 사는 듯 보였지만, 문득문득 사라지고 싶다는 위험한 림자가 나를 덮어 씌우려 했다. 그 다음엔 그런 마음을 먹은 자신이 죄스러워지는 상태가 반복되다.


그런 나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지, 반년 후 <매일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과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내면의 힘이 생기자 별품사에 합류음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별품사 활동에 쉽게 스며들진 못했다. 모임에 나가 눈물로 범벅이 된 채 고백했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지 모임 있는 날이 오면 잠을 못 자고 아파."


세월호 연대 활동과 간암 극복을 동시에 해 낸 모임 대표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도 슬프고 아파. 그런데 그런 마음으로는 오래 활동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 무슨 활동이든 신나고 재밌어야 해. 즐겁게 오래오래 연대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짜고 밥도 잘 먹고 많이 웃어야 해. 대신 진상 규명 반대파들의 음모를 절대로 봐 주진 않아야 하고 진상 규명될 때까지 도망가진 말아야겠지."


내일 세월호 10주기 4.16 합창제가 있다. 상징적으로 4,160명과 함께하는 게 목표라는데, 며칠 전에 천 명이 채 모이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타깝다.

어쨌거나 내가 소속된 함께 크는 여성 울림별을 품은 사람들은 내일 10주기 합창제에 동참한다.


3월에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거리 행진도 있었고, 매주 금~일에 4.16 연극제도 있다. 모든 행사를 다 참여할 순 없지만 4월 내내 유가족들의 곁에 함께 서 있는 게 나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올해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뿐 아니라 4.16 생명 안전 공원의 첫 삽을 뜰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https://youtu.be/Kt6v4lYL6MU?si=inB1ff4TJkkupI_F

세월호 참사 9주기 4.16 합창제 모습. 노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나도 어딘가에서 노래 부르고 있다.



[세월호참사 10주기 안산의 열 번째 봄]

- ‘10년의 기억, 10년의 다짐’


곧 열 번째 봄, 세월호참사 10주기입니다.


오는 토요일(13일) 오후 3시 <세월호참사 기억문화제>를 시작으로 잠시 잊었던 첫 마음을,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4.16 이후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자는 다짐을 기억하며 별이 된 아이들이 품어 줄 4.16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안산의 열 번째 봄>을 피웁니다.


10년을 함께 걸어온 사람들과 함께 4.16 생명안전공원 부지를 노란 리본 물결로 채워주세요 ~~


기간 : 4월 13일(토) ~ 4월 16일(화)


장소 : 안산화랑유원지 4.16 생명안전공원 부지


행사 :

4/13(토) 오후 3시 :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문화제

4/14(일) 오후 4시 16분 : 제8회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 '세월호, 우리의 기억'

4/15(월) 저녁 7시 30분 : 세월호 10주기 추모문화제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4/16(화) 오후 3시 :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 / 안산화랑유원지 제3주차장


4.16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는 4일간 기억예술체험, 8인 작가의 야외미술 전시, 4.16 기억버스킹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집니다.  - 출처 4.16 재단


https://m.blog.naver.com/416ansan/223403314982



2023년에 극단 동네풍경 <술래잡기>의 감동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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