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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Apr 06. 2024

신기방기 퍼스널컬러


난 예쁘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 ~편이다! 가끔, 아주 가끔 내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가 예쁘다고 말한 적이 있긴 했으므로, '편이란' 말이 맞겠다.)


그런 나도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런 바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외모에 대한 패배감이랄까. 꾸며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진작에 알아챈 나는 고등학교 졸업식 날에 남자 한복 입고 학교를 휘젓고 다닌다거나, 스무 살에 여대 캠퍼스를 노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싸돌아다닌다거나 하며 괴짜 짓을 했다. 예쁘다는 칭송이 아니라면 개성 있다, 독특하다, 인상적이다, 그런 평이라도 듣고 싶었던 걸까.


그런 나를 예쁘다고 해 준 사람 있었으니, 30년지기이자 첫사랑인 남편이었.

는 내가 날씬하고 화장을 짙게 하여 꾸미는 것보다, 자기랑 농담하며 잘 웃고 통통하게 살 오른 건강미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매일 세 번은 예쁘단 말을 들으며 살아선지 결혼 생활이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와 살면서는 꾸미는 데 그다지 관심을 가질 필요를 못 느꼈다. (앞으로 새로누군가와 만나려면 꾸밈노동을 해야 할 텐데 무감각해서 한심하긴 하다.)




3년 전쯤 친구 H가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그녀는 모든 배움에 빠른 편이었다.)

"퍼스널컬러라는 게 드디어 안산에 상륙했어. 30만 원이래."

거금 30만 원이라니. 내는 몬한다고 했다.

돈을 벌고 있을 때였는데도 그 돈을 주고 진단받을 정도로 궁금하진 않다고 했더니 H는 아쉬워하며 말했다.

"평생 나의 색을 찾아준다는데 뭐가 아까워? 일단 정하면 옷과 화장품을 큰 고민 없이 매칭할 수 있잖아. 한약 한 재 먹는다 생각하고 하자."


그런 내가 지난주 화요일, 홍대 근처의 숍에서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았다. 내 사랑하는 친구의 딸이 한다고 하니 큰맘 먹고 갔다.


평소에 화장도, 패션도 그다지 관심이 없던 터라 나한테 퍼스널컬러가 필요하겠나 싶었지만, 친구의 딸이 몇 년 전부터 열정적으로 퍼스널컬러를 공부하더니 드디어 오픈했다는 말을 들어서 축하도 해 줄 겸, 오픈 할인 혜택도 받을 겸 바쁜 중에 날을 잡았다.

(1인 50분에 89,000원, 오픈 기념에 네*버 예약까지 하면 20% 더 저렴한 액수로 받을 수 있었다.)


진단해 주는 S샘(친구의 따님)께서 내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유난히 갈색이라 신기하다고 했다. 낯빛은 노르팅팅하고, 이마에 구렁이 주름과 눈옆과 눈밑에 잔주름도 자글자글한 나를 유심히 보면서 최적의 컬러를 찾아주었다.  이쁘다는 말까지 해주며 장점을 찾아주려는 S샘의 노력에 감동.


S샘은 태블릿으로 결과 이미지를 보여주며 꼼꼼하게 설명해 주었다.(얼마나 설명을 잘하시던지 목소리 전달력이 최고였다.) 

50분 동안 이론 설명과 진단, 결과 설명과 솔루션으로 오롯이 나를 위한 상담을 해 주는 게 고마워서  들으려고 노력했다.(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도 모르는 중생이라 이해율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하니까 ~한 게 보이시나요?"

 S샘 앞에서 나는 이해력 부족하나 성실한 태도로 들으려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워낙 디자인과 색감을 알아채는 센스가 빵점이니 어이하리.


나는 평소에 고민하기 싫어서 검정 위주로 옷을 입는 사람이다. 옷장이 거무튀튀하게 채워져 있다.(거의 스티브잡스 급인 거지.)

착용감도 헐렁하고 편안한 옷을 선호해 온 나는 주위에서 옷을 준다고 하면 덥석덥석 받아서 었다.

몇 년 전부터는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해서 옷을 사지 말자주의였기에, 내 옷장은 연관성 없는 옷들 자리차지하고 있다.


S샘이 내게 검정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내렸다. 작년 봄에 산 쨍한 핑크색의 카디건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평소 옷도, 전략적으로 산 옷도 다 어울리지 않는다!

퍼스널컬러 진단을 먼저 받은 친구들은 웜이나 쿨 따위의 결괏값이 있던데 나는 중간이라고 했다.(나란 인간, 어중간한 빛깔의 사람인가 보다.ㅎㅎ)

"어찌 보면 스펙트럼이 넓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쨍한 색은 피하시는 게 좋아요. 탁한 느낌이 살짝 들어간 파스텔 톤으로 입고 바르고 하시면 훨씬 인상이 돋보이실 거예요."


나의 퍼스널 컬러는 '여름 뮤트'라고 했다. 은은하고 차분한 느낌, 명도와 채도가 중간 정도이며, 회색 기운이 많이 섞인 파스텔 색감을 뜻한다고 한다. (더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패스^^)


S샘은 내게 립스틱이나 립글로스를 가져왔으면 꺼내 보라고 했다.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립스틱 두 개를 꺼냈다.

"음, 잘 어울리는 걸 사용하고 계셨네요."

샘께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입고 간 연둣빛 니트도 칭찬을 받았다. 실은 지난가을에 고상하게 옷을 입는 친구가 준 옷이었다. 립 제품, 옷을 다 친구들한테 받은 거라고 했더니 S샘은 미소 지으며 내 친구들까지 칭찬해 주었다.

"친구 분들이 어찌 알고 창창 님에게 딱 맞는 선물을 하셨네요. 안목이 좋으신 분들인가 봐요."

S샘의 말을 듣고 내 주변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울림 : 왼쪽, 안 어울림 : 오른쪽
내게 맞는 립 제품 컬러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은 경험과 결과가 내 인생에 도움을 주긴 할까 의아했지만, 친구의 딸에게 보탬이 되어 좋고, 친구에게 우정을 보여주어서 좋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런 마음이었다.

아무튼 파스텔 톤이 어울린다니 앞으로 엘레강스한 분위기를 연출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 룰루랄라 하며 돌아왔다.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며칠 뒤 외출 준비를 하면서 전과 달라진 나를 발견했다.

장롱에서 내가 입을 상하의를 꺼내는 손길에 확신이 생긴 것이다. 처음이었다. 그런 기분은. 자신감 있게 옷들을 골라 침대 위에 배치하면서 고민과 불안 없이 외출복을 선정할 수 있는 내 상태 혹은 안목이 나를 무척 유쾌하게 했다.


그동안 옷을 살 때면 자신이 없었으므로, 디자인 감각이 좋은 동생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고 통화하며 물을 때도 있었는데, 이젠 나 스스로 고를 수도 있겠다는 근자감(근거 있는 자신감)이 들었달까.

늘 자신이 없어서 무채색 옷을 입고, 선크림에 입술만 연하게 바르고 나갔던 전과 달라진 나를 보니 퍼스널컬러 진단! 그것은 퍽 긍정적인 체험이었다.


진단이 끝나갈 때쯤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 S샘에게 마라탕을 좋아하느냐 물었다. 좋아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핫플레이스 마라탕집을 향해 젊음이 넘치는 홍대거리를 걸었다. 마라탕에 넣는 재료 선호도가 비슷하여 더 좋았다. (아님 샘이 나한테 맞춰준 것일까?) 마라탕 방점까지 완벽한 나들이었다! S샘~고마워요.^^


창창의 퍼스널컬러 : 여름 뮤트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3월 중순부터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희망 리턴 패키지, 내일 배움 카드, 국민 취업 지원 제도, 경기여성 취업 지원금 등 이러다간 검색왕, 자소서 왕이 되겠어요. 다음엔 그런 경험도 글로 써서 공유하려고 하는데요.

문제는 [연재 브런치북] 하이볼 마시는 단편 소설의 밤 (brunch.co.kr) 연재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짬이 안 난다는 거예요. (실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죠.)

저에겐 생활글보다 더 어렵고 품이 많이 드는 게 리뷰인데 허투루 하고 싶지도 않고요.

5월부터 다시 연재할 수 있게 마음의 넉넉함을 찾아볼게요.

연재 약속 지켜 죄송한 마음에 퍼스널컬러 진단을 후기로 오늘 글 대신합니다.

행복하고 편안한 토요일 밤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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