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코코넛 비치 (넷째 날 아침)
코코넛 비치 가는 길
전날 호핑투어의 피로를 늦잠으로 보상받고 싶었지만 자명종처럼 울어대는 닭들 때문에 늦잠을 잘 수가 없다.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는 포트바튼이다.
방을 나와 주인아주머니께 지도에서 본 코코넛 비치에 대해 물어봤다. 아주머니는 걸어서 왕복 1시간 정도밖에 안 걸린다며 지금 갔다 와도 괜찮다고 한다. 지도상에는 길이 없어서 갈 수 있을지 망설였는데 아주머니가 너무 쉽게 얘기하셔서 아침식사 전 산책으로 괜찮을 것 같아 조카들을 깨웠다.
계획에 없던 일정이어서 아침형 리듬을 가진 몇 명만 갔다 오려고 했는데 코코넛 비치라고 하니 다들 호기심이 생겼는지 전날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아침산책에 모두 동행하겠단다.
간단히 산책 채비를 하고 아주머니가 알려주신 대로 해변 끝으로 걸어가니 조그만 오솔길이 나타났다. 본능적으로 이곳이 코코넛 비치로 가는 길이라는 걸 직감하고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듯 길이 썩 편안하지는 않다. 전날 밤 비가 온 것 같진 않았는데 물이 빠지지 않아 길이 질퍽하기도 했고 뿌리를 드러낸 맹그로브 나무들은 유령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우린 마치 인디아나 존스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야자수가 나타나면 우리가 찾고 있던 코코넛 비치가 맞는지 확인하기도 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 나갔다.
그렇게 계속 갈까 돌아갈까를 고민하며 40분 정도를 걸어가자 해변가에 야자수 군락이 넓게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없이 코코넛 비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린 마치 보물섬이라도 발견한 듯 신이 났다.
코코넛 비치
해변에 다가가자 환영한다는 안내와 함께 인당 30페소의 입장료가 안내되어 있다. 하지만 관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입장료를 낼 방법이 없어 우린 안내를 무시하고 해변으로 그냥 들어갔다.
해변 가까이 가보니 걸어오면서 봤던 야자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야자수가 모여있어 코코넛 비치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멋진 야자수와는 달리 해변은 볼만하지 않았다. 마치 썰물 때 바닷물이 빠져나간듯한 모습으로 바닷물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곳이 바닥을 드러낸 모습이었다. 물놀이를 하기에는 물이 너무 없었다.
모래사장도 한동안 관리되지 않은 듯 지저분한 나뭇가지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기대했던 예쁜 해변의 모습은 아니었다.
잠시 후 할아버지 한분이 오시더니 우리에게 입장료를 요구하셨다. 우린 입장료를 드리며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이곳에 있는 모든 코코넛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코코넛을 자르는 방법을 알려주시고는 무시무시한 칼을 주고 가셨다.
그리고 갈색으로 변한 코코넛은 오래된 것이라고 하시면서 녹색의 코코넛을 찾아보라고 하셨는데 녹색의 코코넛은 모두 나무 위에 붙어있어 자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갈색의 코코넛을 잘라보니 하얀색 속껍질이 나왔는데 이게 아마도 코코넛 오일 등으로 사용되는 듯했다.
우리에게 입장료를 받아간 할아버지가 궁금해서 할아버지가 들어가신 오두막으로 가보니 코코넛을 1차 가공하는 곳이었다.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으며 물어보니 친절하게 이곳에서 껍질을 벗겨 가공하면 코코넛을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곳에서 물건을 가지러 온다고 했다.
첨엔 무뚝뚝해 보였는데 사진 찍는 것도 흔쾌히 허락하시고 이것저것 물어보니 상당히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할아버지 혼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이 많은 코코넛을 혼자서 처리하는 게 대단하면서도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우린 신선한 코코넛을 맛보려 나무 위에 가득히 달린 코코넛을 따기 위해 나무를 올라가 보기도 하고, 나무를 잘라볼까도 생각했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들이 나무 위의 코코넛을 따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연상되면서 그들의 간절함에는 미치지 못할 테지만 코코넛은 보는 이들을 애타게 하는 열매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코넛 비치의 코코넛 군락지는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고 마음껏 코코넛을 맛볼 수 있지만 신선한 코코넛은 만져볼 방법이 없었고, 해변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또한 초행길인 탓에 주인아주머니의 얘기와 달리 약 1시간이 걸린 데다 길이 썩 좋은 편도 아니어서 산책길로도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아쉬움이 남는 코코넛 비치였지만 가벼운(?) 산책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덕분에 숙소에서 준비한 아침을 맛있게 먹은 것으로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