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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여 Dec 06. 2021

내 '트리' 장만의 꿈

트리에 대한 사랑 혹은 집착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생일파티를 할 때마다 나는 선생님께 다가가 물었다.

"제 생일은 언제 와요?"


얼마나 많이 물었으면 선생님께서 써주신 편지에도 이렇게 적혀있다.

'친구들이 생일파티를 할 때마다 생일이 언제냐고 묻던 소여야. 생일 정말 축하해.'라고.



나는 12월생이다.

누구에게나 생일은 일 년 중 단 한 번 뿐이지만 유독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12월은 더디게 찾아왔다. 1월 다음에는 2월이, 5월 다음에는 6월이, 11월이 지나야 12월이 된다는 시간의 흐름을 이해할 리 없는 유치원생은 다른 친구들의 생일 파티를 볼 때마다 실망에 휩싸였다. 내 생일은 왜 이렇게 느린걸까.


이런 나의 실망감을 기대감으로 바꿔준 존재가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다.


생일 선물을 받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크리스마스가 되면 또 한 번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루돌프를 타고 온 산타 할아버지가 준비한 특별한 선물을! 부모님께서 장난감을 자주 사주시는 편은 아니라서 나는 늘 쥬쥬인형이나 세일러문 요술봉 같은 장난감이 고팠다. 그래서 생일만 되면 머지 않아 선물이 하나 더 생긴다는 사실이 그 동안의 기다림을 보상해주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들뜨고 주변 풍경은 달라졌다. 어디서든 흥겨운 캐롤이 흘러나오고 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다. 우리집 거실 한켠에도 내 키만한 트리가 생겼다. 요즘 감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도깨비 불처럼 알록달록한 조명을 마구 둘렀지만 내 눈에는 어찌나 아름답던지. 불멍의 재미를 그때 알아버렸달까.


긴 기다림이 끝나면 어김없이 유쾌하고 즐거운 순간이 찾아온다는 걸 배운 뒤로 나는 늘 12월을 손꼽아 기다렸고, 생일이 지나면 얼른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고대했다. 마치 크리스마스가 제2의 생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성인이 돼서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사랑은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크리스마스의 상징과도 같은 나만의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갖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자취를 할 때는 공간이 부족해서 못 하고, 결혼 후에는 괜히 짐만 늘리는 것 같아서 망설이느라 '내 트리 장만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2020년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코로나19. 두려움과 막막함에 지쳐가던 그때 우리에게는 반짝임이 필요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트리를 사러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고속터미널 화훼시장에 갔다.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이면 그럴 듯한 트리를 살 수 있지만 굳이 고터에 간 이유가 있다. 바로 수십, 수백 가지의 트리를 눈으로 직접 보고 비교할 수 있는데다 꾸미기에 필요한 온갖 부속품도 한 번에 살 수 있기 때문. 고속터미널은 크리스마스 트리 구입의 A to Z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트리를 사야지!'

호기롭게 들어선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역에 떨어진 시골쥐처럼 얼어붙었다. 트리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트리마다 전체적인 쉐입과 이파리의 모양이 미묘하게 다른 데 나는 그걸 캐치하는 눈도, 취향도 없었다. 거기다 PE와 PVC 소재의 비율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기초 중의 기초 지식도 없었으니 내가 바로 이 구역 뜨내기였다.


이 트리가 그 트리 같고, 요 트리가 저 트리 같아 한참을 헤매던 중 눈에 들어온 트리 하나. 정식 매장도 아니고 복도에 한편에 세워져 있던 그 녀석. 다른 애들은 조명을 다섯 개씩 두르고 반짝이 오너먼트로 차려입었는데 걔는 밋밋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는 모습에 시선이 갔다. 너무 슬림하지도 너무 뚠뚠 하지도 않은 체형, 150cm의 아담한 키, 적당히 초록 초록하게 혈색이 도는 빛깔까지 깔끔했다. 가격도 착했다. 아니 8만 5천 원이요? 다른 애들은 10만 원이 훌쩍 넘는데?


사람 마음은 정말 간사하다. 1초 전까지 마음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저렴한 가격을 들으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저걸로 충분하겠어? 너무 싸잖아. 비싼 트리가 더 좋은 거 아닐까?'


주인아저씨는 이미 새 트리를 꺼내고 있고! 나는 남편에게 '잠시만 기다려'를 외치고 부리나케 20만 원짜리 트리 가게로 달려갔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저 돈 주고 살 정도는 아니야 라고 했던 트리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보였다. '그래, 이걸 사야 돼! 비싼 건 이유가 있다고.'


남편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계산이 끝난 후였다. 결국 나는 8만 5천 원짜리 트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변덕이 들끓는 내가 문제지 누굴 탓하겠냐만은 나는 매일같이 어떻게 하면 트리가 더 예뻐 보일까 고민하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딴 걸 샀어야 했다고 투덜거렸다. 남편은 우리 집 트리도 예쁘다며 그저 웃기만 했고.


나의 북 치고 장구치고 짜증 내고는 한동안 계속됐다. 어느 날 밤, 극에 달한 불만이 정점을 찍고 나서야 트리에 대한 로망.. 아니 집착은 수그러들었다. 그동안 나의 난리부르스를 참아준 남편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출근해서 남편에게 사과하는 카톡을 보냈다. 그러자 돌아온 그의 대답.


모든 것에 진심인 소여가 좋아.
나에게는 없는 모습.


내가 남편의 입장이었다면 그만 좀 하라고 윽박질렀을 텐데.. 나의 이상하고 부족한 면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모든 것에 진심인 사람으로 바라봐 주는 남편에게 정말 고마웠다. 덕분에 미안함은 안도와 고마움으로 바뀌고, 내 마음은 루돌프 코처럼 빨갛게 물이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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