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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Apr 04. 2024

봄볕, 봄바람, 그리고 괜찮아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도서관에 들어가도 쓸 게 없었다. 쓸 게 없어서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쓰지 않고는 할 일이 없으므로 써야 했다. 써야 할수록 역시 쓸 게 없었다. 쓸 게 없어서 나는 쓸모 없었다. 무력감이 지긋지긋했고, 지긋지긋한 것도 지긋지긋했다. 쓸데 없이 앉아 있다 보니 볕이 좋았다. 어, 볕이 좋다고? 무려, 좋다고? 3월의 마지막 금요일 오후였다.


대학생들 4교시 끝날 무렵이 내 점심 시간이었다. 3교시를 끝낸 학생들은 식사 중이었고, 4교시를 끝낼 학생은 10여 분 후에나 줄서기 시작할 것이었다. 대학생 무리에 끼기 민망하기도 했고, 학생식당은 줄 서 기다릴 맛집은 아니었다. 식사는 착석 5분 안팎이면 완료되었다. 밥을 덜 주려는 주걱질을 못 본 척했다. 비빔밥은 부실한 속재료를 짠 맛으로 가리려는 듯 양념이 셌다. 이방인에게 불평할 자격은 없었다. 때우는 끼니, 때우는 시간, 때우는 인간, 어, 내가? 새 우는 봄이었다.


지지배배, 학생들의 잡담이 활기차되 한가로웠다. 준비해 간 텀블러에 카누 한 잔 태워 벤치에서 홀짝였다. 학생도 아니고 교직원이나 시간 강사도 아닌 그냥 인근 주민 아저씨가 남의 대학 도서관 라운지 한 자리 차지하다가 남의 대학 도서관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남의 대학 캠퍼스가 홀짝홀짝, 아메리카노 맛으로 평온했다. 이래도 되나, 알게 뭔가, 모른 척하지 뭐, 학생인 척하지 뭐, 그러게 알게 뭔가, 나사 빠진 자문자답으로 조금 허술해져 갔다. 햇볕이 노곤노곤했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요즘은 중독이었다. 앱 몇 개를 주기적으로 돌아다녔다. 알맹이 없는 조회수와 좋아요를 확인하고, 사지도 않을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빼기도 하고, 숏폼을 보며 키득대기도 했다. 안일하고 즐거운 자해였다. 시간은 손바닥 안 가상세계가 두른 사건의 지평선에 갇혔다. 손바닥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아무 일도 아니었다. 기억나는 것은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지나치게 뚜렷한 자각이었다. 내게 확실한 패배만 선사하는 나는 나의 가해자였다. 그러나 이날, 월말이라 데이터도 빠듯했고, 배터리가 간당간당해 화면 밝기를 키우기 부담스러웠다. 햇볕 때문에 밝기를 낮춘 화면이 잘 보이지도 않아서 스마트폰을 껐다. 햇볕의 세상이 켜졌다.


건너편 벤치 여학생 셋의 지저귐이 듣기 좋았다. 학생들은 ‘대학생’으로 경남지역 억양과 경북지역 억양을 비교했다. 나는 경남지역에서 나고 자라 경북지역에서 살고 있어 두 억양 차이는 그저 사실이었으나 경남지역에서 온 학생과 경북지역에서 온 학생은 억양 차이도 노래였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삶의 노래는 사실의 지평선 바깥에 있었고, 나는 사실의 중심에서 집에 가고 싶었다. 글이 지지부진해서 마음만 배배 꼬였다.


날씨는 화창하지 않았지만 푹했다. 전날 낮최고 기온 10도에서 이날 낮최고 기온 20도로 급등했다. 비온 후 갠 날이라 체감 온도는 더 높았다. 걸치고 있던 짚업 셔츠를 벗을까 하다가 귀찮아서 얌전히 볕을 쬐었다. 땀이 찌르듯 나와 등판이 따끔따끔했다. 얼굴도 따끔따끔했다. 자외선은 에라 모르겠다. 실내와 사실에 찌들었던 얼굴은 살균되어도 괜찮을 법했다. 4교시를 마친 대학생들이 학생식당으로 다금다금 모여들었다. 이미 끝낸 승자의 여유, 다소 한심한 도취감이 볕을 따라 간질간질했다. 대↘학생과 대↗학생의 웃음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예보대로라면 7m/s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사실대로라면 그보다 더 셌을 것이다. 밀려 나는 겨울의 악다구니였다. 분지를 가로지르는 바람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통과하며 급해졌다. 볕을 골고루 쬐려고 얼굴을 돌리면 머리카락이 ↘ ↗ ↖ ↙ ↕ ↔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였다. 보기엔 그냥 아저씨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어야 할 건 없었다. 머리카락, 40대는 그걸로 된 거다. 머리에서 바람 따라 밀도감이 빽빽하게 느껴졌다. 나는 밀려나지 않았다, 이곳은 밀려난 곳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 나인 곳이었다……  그런데 악다구니를 쓰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정리된 사실을 해와 바람의 조합이 마구 헝클어뜨렸다. 햇살 끝이 바람으로 뭉개져 있어 따끔따끔하던 살갗도 바람으로 진정되었다. 햇볕은 내 피부에 꼭 맞게 보송보송했다. 노화가 멸균된다는 거짓말도 믿을 법했다. 바람은 햇볕으로 부피를 채운, 온기의 윤곽이었다. 세계의 거대한 손이 내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에나 받았음직한 아버지나 큰형의 손길이었다. 봄볕 머금은 바람의 말은 단순했다. - 괜찮다.


아무도 나를 만지지 않았다. 나도 누군가를 만지지 않았다. 똥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만지지 않는 예의 바른 물질이었다. 더군다나 중년 사내의 머리가 쓰다듬어질 일은 희박했다. 어지간한 권력 격차가 아니면 머리를 내어 줄 일 없었다. 부모님조차 나이 든 자식을 어른 대접하느라 머리를 쓰다듬진 않았다. 그런데 세계가 내 머리를 적의 없이 쓰다듬어준 것이었다. 나는 주인의 손길을 받는 개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근래 받아본 적 없는 절대적 환대에 졸음이 몰려올 지경이었다.


해와 바람 속에서 나는, 귀여웠다. 미안하지만 사실이다. 내가 귀엽지 않다면 무언가가 나를 격하게 쓰다듬어 줄 리 없었다. 귀여운 것은 무척 중요했다. 귀여움은 타자에게 무해하면서 타자의 환대를 강제하는 이타적 폭력의 정점이었다. 아기가 그랬고, 강아지가 그랬고, 중국에 간 푸바오가 그랬다. 아무짝에 쓸모 없어도 귀여우면 장땡이었고, 나는 줄곧 나가리였다. 눈을 감고 3분쯤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학생들의 웅성되는 소리까지 보송보송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꽤 옥시토신의 분비물이었다. 사람의 살을 만질 수 없다면 햇살이라도 만져야겠구나, 자외선은 알 바 아니었다. 그렇게 봄의 습관 하나를 챙겼다. 새로운 쓸 거리가 생겼다. 우울의 멸균을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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