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

by 하루오

1. No : 티끌의 꿈


티끌 모아 티끌이다. 이 악물고 모아 봤자 장롱 뒤편 먼지 뭉치다. 먼지 뭉치에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벌레다. 애플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고 해서 티끌의 생태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등에 할부금 무늬를 새겨 넣은 벌레가 될 뿐이다. 태산 같은 집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티끌은 너무 티끌이다.


노동이 신성할 리 없다. 인류 역사 이래로 노동은 천했다. 노동은 하위 계급의 몫이었고, 상위 계급이 누리는 풍류가 문명을 이룩했다. 귀족, 양반의 문화는 국보와 보물로 국립박물관에 있고, 농민들의 문화는 토속적인 옛것으로 민속촌에 있다. 노동이 근면, 성실의 미덕을 함양하는 것이 아니라 밥벌이를 계속하기 위해 포장된 미덕을 수행해야 할뿐이다. 노동이 신성하다는 구호는 노동자의 인지부조화이자 자본가의 농간이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고 했지만, 정작 먹을 걱정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일하지 않는 자본가다. 돈이 돈을 버는 시대다. 작년, 나는 운이 좋았다. 노동소득보다 주식을 통한 자본소득이 많았다. 내 생에 유일하게 그 1년, 자본가의 기분을 느꼈다. ‘돈을 못 벌어도 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배부르게 했다. 그 마음의 이름은 생존이 아니라 삶이었다. 가격표 생각하지 않고 시키는 배달음식으로 이어져 살이 쪘다. 세상이 맛있었다.


노동과 자아실현을 등치하는 것은 중학교 도덕 교과서까지만 유효하다. 노동의 세계는 전장이고, 무직의 세계는 지옥이므로 노동에 매달릴 뿐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통장 잔고는 줄어들므로 나는 천하다. 노동은 자아와 티끌을 교환하는 거래다. 흥정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불공정 거래다. 결과는 노력을 매번 배신한다. 태어난 인간은 티끌을 모으다가 티끌로 돌아갈 뿐이다. 구질구질한 여행이다.




2. Yes : 다이어트


카드값 명세서를 보면 깜짝 놀란다. 하루하루 티끌처럼 썼는데, 한 달 명세서는 태산이었다. 비만도 그러했다. 하루하루 조금씩 먹었는데, 어느 순간 배에 둥글둥글한 태산이 솟았다. 코로나 시국에 나는 ‘확찐자’가 되었다. 20여 년 전 힙합 사이즈로 입던 36, 38 사이즈의 바지를 이제는 정사이즈로 입어야 할 판이다. 아직은 34 사이즈를 벨트 없이 간신히 입는 수준에서 합의를 보고 있지만, 셔츠는 숨 쉬기 불편해서 안 입는다. 살 빼서 옷을 사려고 했다가 1년째 새 옷을 사지 않았다.


내 비만은 운동 부족과 인스턴트 음식의 합작품이었다. 삼겹살이나 스테이크 같은 값나가는 고기류로 찌운 살이라면 빌렸던 쾌락을 상환하는 셈 쳤을 것이다. 그러나 내 뱃살에 그득할 라면 국물을 생각하면 쾌락 없는 책임만 떠넘겨 받은 것 같아 억울하다. 이것은 티끌 먹어 태산 격이었다.


더 환장할 일은 다이어트는 태산 모아 티끌 같다는 것이다. 한 끼의 굶주림은 태산 같은데, 하루의 체중 감량은 표시 나지 않는다.


이 역시도 불공정 거래 같지만, 사실 다이어트는 칼로리 입출력의 산수였다. 섭취된 7700칼로리의 잉여가 1킬로그램의 살이 되므로, 1킬로그램을 감량하기 위해서 덜 먹고 많이 움직여 7700칼로리의 결핍을 생산하면 된다. 하루에 기초대사량 대비 770칼로리씩의 결핍만 생산해도 한 달에 3킬로그램 감량은 확정되었다. 내 체중을 기준으로 한 시간만 걸어도 300칼로리 이상을 소모하고, 여기에 50칼로리짜리 믹스커피 두 잔씩 마시던 습관만 끊어도 도합 400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으니 한 끼에 밥 두 숟가락씩만 덜 먹어도 1년에 36킬로그램은 뺄 수 있다. 간단한 산수가 몸에서는 어렵다.


우리는 대체로 노력에 배신당하고 산다. 제한된 자원을 두고 다수가 경쟁하는 사회 구조상 노력의 배신은 필연적이다. 내 통장은 티끌 모아 티끌이지만, 최소한 내 몸에서만큼은 티끌 모아 태산이 가능했다. 다이어트는 산수만큼 솔직하다. 자아실현은 몰라도 육체실현은 내 노력에 달린 것이다. 나도 내가 원하는 태산을 가져보고 싶어서 정직한 티끌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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