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일하고, 왜 살아가는가? 생존을 위해 분투한 지난 4년을 돌아보며
태어나서 일주일이 넘는 여행을 가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일상의 책임과 구심력은 강했고, 일상의 장소와 시간을 떠나기란 쉽지 않았지요. 2020년에 발간한 제 책에는 여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내가 없는 자리에는 나의 부재로 인한 멈춤이 생긴다. 일상 속 나의 자리가 중요할수록,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파는 커진다. 내가 떠남으로써 누군가는 나의 일을 더 하게 될 텐데, 나의 부재가 타인에게 피해는 아닐까 염려도 한다. 물론 나의 부재가 그다지 대단하지 않아서, 나 하나쯤 떠나도 세상은 아무래도 괜찮을는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든 정말 그렇든, 부재가 여행을 떠나지 못할 이유인 사람은 분명히 있다.”
“여태까지 삶의 대부분 시간에서 내게 여행은 비상식은 아니나 비일상적이고 비정기적이며 낯설어서 그것을 애써 감행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일상을 탈출하는 데 필요한 많은 에너지, 여행을 가지않을 너무나 명확하고 ‘합리적인’ 이유들. 그래서 나는 대체로 내가 사는 인천/서울/경기도를 벗어날 일이 없었다. 군생활조차 서울에서 의경으로 보냈으니, 좀처럼 멀리 떠난 일이 없었던 것이다.”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 p.121~ 122 중
떠나고 싶어도 쉽게 떠나지 못했던 제가 지금 캐나다로 여행을 왔습니다. 삶에서 가장 멀리 오래 떠나온 여행입니다.
이번 여행의 이유는 어떠한 쓸모나 유용함 때문은 아닙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추석 11살 어린 동생과의 대화였습니다. 내년 2월 캐나다 토론토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동생은 늘 부모님과 함께 지내왔고 영미권으로 와본 적도 없었지요. 내년 캐나다로 떠나면 적어도 2년 동안은 거의 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어요.
그렇다면 연말에 같이 다녀오자. 기왕이면 친척들이 살고 있는 캐나다 서부로 떠나보자. 대화를 나누고 비행기 표를 예약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조금이나마 적응을 도울 수 있겠지요.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난 4년은 정말이지 너무나 치열한 시간이었습니다. 부러진 창업가였던 저는 생존해야했고, 나의 자리를 만들고, 산업과 팀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밀도높은 일상이었던 만큼 멀리 바라보기란 어려웠고, 바로 앞 과제들을 정신없이 쳐내며 달려왔습니다. 사랑하는 글쓰기도 노래하기도 잘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조금이나마 일에서 성과를 빠르게 이루었다면 내가 무언가와 맞바꾼 시간의 밀도 덕이겠지요.
하지만 그 탓에 소중한 인연들을 더 잘 챙기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2년 전 이맘쯤 15년간 함께한 강아지 문돌이가 떠났고, 지난 봄에는 우리 할머니를 떠나보냈지요. 그 날들에도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일 이전에 ‘생’이란 인연이란 무엇인가 멈추어 생각해보게 되었던 떠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존재의 떠남들이 내게 남긴 것은 ‘꿈을 위해서도 살아야겠지만, 소중한 인연을 위해서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여행은 그 결심이기도 해요. 지금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소중한 인연과의 지금은 오직 그 시간 뿐이니까요.
물론 저에게도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에요.
“일상의 부재와 단절은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한다. 나의 부재를 느끼는 타인에게도, 일상 밖 나에게도. 관찰하려면 대상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떨어져야 하는데, 좋은 여행은 나를 관찰하기에 좋은 거리감을 준다. 갈 길을 찾는 이에게 특히 창작자에게 여행은 참 좋다.”
『제대로 살기란 어렵다』 p.128 중
나는 나의 일상으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나의 생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사업개발하는 문희철은 잘할 겁니다. 2025년에는 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지요. 쓰는 사람 문희철도, 인연의 소중함을 아는 문희철도 잘해볼게요.
P.S
일단은 여행에서는 (쓸모있는) 무얼 안해볼 작정입니다. (ㅋㅋ) 벤쿠버는 비가 많이 내렸네요. 캘거리는 많이 춥다는데 글쓰고 책읽기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