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을 들추면 결핍이 들어있다.
내가 주로 부러움을 느끼는 대상은 뚜렷하다. 바로 부모를 잘 만난 사람들이다. 여기서 ‘잘’에는 크게 3가지 의미가 있다. 화목한 부모, 현명한 부모, 풍족한 부모다. 그런 부모를 둔 사람들을 보면 그게 얼마나 큰 복인지 말해주고 싶다. 물론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많겠지만.
다른 사람의 부모를 보며 부러움을 느끼는 건 죄책감이 뒤따른다. 부모님의 가슴에 상처를 내는 일이니까. 내 아이가 다른 부모를 보며 부러워 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지는 가늠도 되지 않는다.
화목. 아빠는 예나 지금이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다. 세상 소녀 같은 엄마는 아빠 앞에선 마녀가 된다. 싸움이 걷잡을 수 없어질 때면 경찰을 부르기도 했다. 정도가 심할 때는 뉴스에 나올까봐 두려울 정도였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중매 결혼이 다반사던 시절, 부모님은 무려 2년이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엄마가 말하길 연애 때 아빠는 엄청 순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오랜 세월 아빠의 몸과 마음에는 어떤 화학 작용들이 일어난 걸까.
친구 A의 부모님은 친구들 사이에서 금슬이 좋기로 유명하다. 친구는 두 분이 거의 싸우시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늘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니시고, 서로의 사진을 카톡 프사로 해두며, 주기적으로 국내외 여행을 떠나신단다. 친구에겐 그게 당연한 환경이었고, 내 사정을 모르니 편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렇게 나의 가장 아픈 버튼은 쉽게 눌렸다. 덕분에 ‘결혼=불행’이라는 절대 공식이 깨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명. 부모님은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음식 장사를 하며 생계를 잇기 바빴다. 교육에 투자는커녕 관심을 쏟는 일조차 사치에 불과했다. 아빠는 중학교 1학년 소풍날, 아버지(나에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동생 셋을 먹여살리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방끈이 짧으니 사회성은 떨어졌고, 삶이 팍팍하니 알코올에 의존했다. 엄마는 시 수십 편을 달달 외울 정도로 똑똑했지만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먹고 살기 빠듯하니 그냥 살아지는대로 살았다. 그 탓에 나는 방임과 방치 그 어딘가에서 자라났다. 아이를 낳기 두려운 가장 큰 이유였다. 보고 배운 게 없으니 잘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아이를 갖겠다 마음 먹었던 3여 년 전. 유튜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조승연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영상(제목: 조승연 작가 어머니의 교육 철학 파헤치기)을 봤다. 자식에게 꼭 물려줘야 하는 유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의 어머니는 1)자생력, 2)생활 기술(Life skills), 3)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을 꼽았다.
내 입장에선 꽤 충격적이었다. 부모 자식 간에 이런 깊이 있는 대화를 아주 익숙하게 나눌 수가 있구나. 부모가 이렇게 현명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교육을 할 수도 있구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러움과 신기함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때부터였다. 자녀 교육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게. 그리고 자생력, 생활 기술, 문화 자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를 키우면서 생생히 느끼고 있다.
풍족. 가난 속에 살면 부유를 목격하기 전까진 가난인 줄 모른다. 중학교 1학년 때 놀러간 친구 B의 집은 방 5개 짜리 60평대 아파트였다. B는 외동딸이었고, 방 2개를 혼자 쓰고 있었다.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구겨져 사는 나는 그곳에서 가난을 확인 당했다. 그 이후로도 수 천, 아니 수 만 번 가난을 목격했다.
Wavve 정치 서바이벌 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에서는 출연자들의 사상을 4가지(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로 나누어 점수를 매긴다. 계급은 다시 서민과 부유(영어로는 중산층)로 나뉜다. 계급 테스트 문항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부모덕을 본 적이 없다. - 대학 등록금은 늘 부모님이 내주셨다. - 성인이 된 후에는 부모의 존재가 경제적 부담이 된다. - 부모님은 지금도 종종 휴가를 해외로 떠나신다. - 어떤 종류든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금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부정적 질문엔 그렇다, 긍정적 질문엔 아니다로 답했다. 서민 계급 중에서도 가장 점수가 높은 3점이 나왔다. 남편은 부유 2점이 나왔다. 워낙 디테일했던 문항 덕분에 남편은 나의 가난을 목격했다. 그리고 자신이 부유 속에 살았음을 깨달았다. 모든 부는 상대적이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는 꽤나 극단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살면서 경제적인 부분으로 많이 부딪힌다. 살아온 환경이 극단적으로 다르니 어쩌면 필연적인 갈등이다.
부모님께 보고 배운 게 없다고 했지만 오만하고 과격한 표현임을 인정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꽃은 핀다. 바꿀 수 없는 환경을 탓하는 건 아무 영양가가 없다. 부모님 덕분에 나는 가화만사성 정신을 온몸으로 배웠다. 부러움을 들추면 결핍이 들어있다. 결핍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지금은 화목한 부부, 풍족한 가정, 현명한 부모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순조롭게. 나는 종종 부모를 잘 만난 나의 아이가 부럽다.
- 서록서록 기록모임, 5월 7일 기록주제에 대한 글. -
Q. 나는 주로 부럽다는 감정을 어떤 때에 느끼나요?
Q. 부러움이나 질투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