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와의 대화>
공기업은 자료 싸움이다. 기록을 남겨야 일을 한 거고, 자료로 남아야 성과로 집계된다.
누가 어떤 일을 얼마나 현장에서 잘했느냐보다 누가 행정적으로 제대로 기록했느냐가 우위에 있다.
‘역사는 기록한 자의 것’이라는 말처럼.
하나의 오타가 그 사람의 인격(신중치 못함), 시력(눈은 폼으로 들고 다니느냐), 지력(대학에서 뭘 배웠느냐)까지 이어진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
‘그게 그렇게 중요해?’
얼마 전 입사한 후배가 물었다.
"오타.. 가 죄인가요?"
누군가는 오타를 기본 됨됨이로 보고, 누군가는 오타를 실수로 본다.
물론 이게 반복되면 죄가 된다. 적어도 회사에서는.
나도 후배와 마찬가지였다.
입사 초반엔 오타 노이로제에 걸린다.
1원 잘못 썼다가 기안문을 다시 올리라는 지적을 받으면, 현타가 온다.
그때부터 문서의 내용은 들어오지 않고, 어느새 내 동공은 숫자와 글자를 형태소 단위로 쪼개 오타만 좇게 된다.
여기서 오타란 잘못된 글씨나 숫자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자간(문장사이의 간격)이라든가 띄어쓰기 간격(이를테면 문단의 끝에 띄어쓰기 두 번 후 ‘끝.’을 넣어야 함), 통일된 글꼴, 문단번호 등도 포함된다.
오타, 오류, 오간(자간의 잘못됨) 등등을 뚫어져라 보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 공기업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탁상공론’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의 숙명이다. 그것이 그들의 일이고, 역할이다.
최소한 ‘탁상’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오류나 오타를 시정하지 않은 문서가 밖으로 나가면 난리가 난다.
오타 하나가 자료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행사의 날짜나 요일이라도 바뀌면 그 영향력이 일파만파.
그 조직의 능력, 소위 공신력이 일순간 무너진다.
실제로 사람이름 하나(모음 하나) 잘못 나갔다가 온 언론의 뭇매를 맞고, 축제날짜가 잘못 나가서(갑자기 바뀐걸 신도 아니고 어찌 아냐만은) 주말 내내 민원인들의 항의전화도 받아봤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건건 대단한 실수 때문이 아니다. 그냥 오타 때문이다.
윗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일의 책임을 물게 되니, 아랫직급의 글쓰기에 빨간 펜을 들게 된다.
숲도 보고 나무도 봐야 한다지만, 오타에 목메게 되면 나무는커녕 이파리의 무늬만 보게 된다.
그리고 단골 물음표가 따른다. ‘내가 이러려고 죽어라 공부해서 취직했나’ 하는 생각으로 수렴.
하지만, 살아남아야 한다. 내 영혼을 오타 때문에 죽일 순 없으니깐.
그래서 내가 찾은 비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모니터 밖으로 문서를 뽑아서 새로이 보고, 주변에 오타 찾기 동료를 만들어서 상부상조하기.
그리고, 크로스체크를 했음에도 '안 보이는 오타는 신의 영역이다'.라는 마음가짐.
이게 특히 중요하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어차피 보일 오타는 보이고, 보이지 않는 오타는 보이지 않게 돼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1년, 2년, 살다 보면 사실 조직의 모두가 오타인간임을 알게 된다.
내 오타만 보이다가 남의 오타도 보이고, 모두가 인간이군..이라는 인간적인 결론으로 마무리.
오늘도 나는 오타치는 인간이지만, 오타에 지는 인간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