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와의 대화3
할.말.하.않.
이란 말이 유행했었죠?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할 말을 하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 정도일 듯합니다.
1. 해봤자, 소용없다
2. 하기가, 어렵다(상대방이 상사 거나, 연장자 거나, 갑이거나 등)
저는 1번의 경우는 할말하않을 찬성합니다.
내입만 아프니까요.
근데 2번의 경우는 참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불합리하거나 억울한 상황이 1번도 아니고 2번 이상 반복되고,
상대방이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면
할. 말. 하. 살.
"할 말은 하고 살아요! "를 추천합니다.
이건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 하고, 상대방을 위해서 기도 합니다.
정말 본인의 잘못을 인지 못했다면 인지할 기회를 주는 거니까요.
그 상황에서 불행한 건 나와 상대방 모두입니다.
얼마 전 후배도 상위기관 담당자의 '갑질'을 참다못해 이야기했더군요.
전 정말 잘했다고 했습니다.
그 후배도 꽤나 참았고, 갑질로 인해 일의 진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거든요.
제 회사 생활 15년을 돌아봐도, 말을 한 경우와 하지 않은 경우 모두 후회가 있을 수 있지만
그 후회의 여운이 긴 건 역시나 말을 하지 않은 경우더라고요.
그런데 때마침(?) 저도 오늘 아침 이 경우의 당사자가 됐습니다.
출근길 우연히 상위직급 직원을 만났는데 원칙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대뜸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서로 잘해보자며 어깨를 탁! 하고 치셨어요.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저는 우선 자리에 가서 급한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누굽니까?
어제 후배에게 '할 말은 하고 살라며' 보이지 않는 손으로 등을 두드려준 선배입니다.
게다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짤막하게 '역시 할말하살'이라며 글까지 썼습니다.
말을 하는 게 좋을까, 하지 않는 게 좋을까 판단할 때 제 기준을 적어 봤습니다.
1. 말해봤자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가급적 하지 않는다
2. 말해봤자 내가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에 동조하지 않음을 표현하는 게 맞다, 고 판단하면 말한다
3. 두고두고 생각날 거 같거나, 내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난 경우, 라면 무조건 말한다
4. 말을 할 경우엔, 최대한 중립적으로 사실관계에 입각하여 (듣는 사람이 많지 않은) 독립된 공간에서 한다.
제 경우엔, 2번과 3번에 모두 해당했으므로 "말해야겠다"라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4번의 방법론을 택했죠.
앞선 일이 있은 지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따로 회의실에 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러이러한 이야기 하셨는데, 의사표현의 자유시지만 맞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의도가 어떻든 어깨를 치시는 행위는 정말 맞지 않다"라고 말이에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솔직한 제 의견을 말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직원도 찝찝해하신 것 같더군요.
"정말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라고 사과를 바로 하시더라고요.
본인도 원칙에 안 맞는 말을 한 것 같아 민망했다면서요.
저는 일단 속이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도 어쨌든 바로 사과할 기회를 준 것이니 그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좋은 일이지요.
한 직장 내에서 서로 얼굴 안 보고 살 순 없으니까요.
그리고 생각합니다.
할말하살! 할 말은 하고 살자!
그리고 덧붙입니다.
할말쓰살! 할 말은 쓰고 살자!
제가 어제 블로그에 후배와의 대화를 쓰지 않았다면 오늘 아침 제 선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어제의 기록은 이렇게 오늘의 역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