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워킹맘
워킹맘 5년 차가 되자 비로소 앞이 조금 보이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물론 하루하루는 여전히 빽빽하다. 하지만 복직 초기 1~2년 동안 연발하던 "힘들어 죽겠다"는 말은 어느새 사라졌다. 이제는 "그래도 워킹맘이라 좋은 점이 있다"고 말할 체력과 심력이 생겼다.
'워킹맘의 수업료'를 연재하며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적어 왔다. 그 밑바탕에는 '워킹맘 못 해 먹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워킹맘인데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한다. 워킹맘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가해자도, 구조에 떠밀린 피해자도 아니다. 그저 노동자로서 1인분, 양육자로서 1인분,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당당히 1인분을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얼마 전 <빽 없는 워킹맘의 육아x직장생존비책>과 <엄마의 유산: 우주의 핵은 네 안에 있어> 두 책을 발간한 후 수원 시내 도서관에서 북토크를 열었다. 그날 받은 두 질문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지금은 전업맘이지만 2년 후 복직을 준비 중인 한 분이 물었다.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을 처음 사내에서 쓰셨다고 했는데, 저도 그런 상황이 될까 봐 걱정됩니다. 막 개척해야 하는 부담감... 인사 담당자도 내가 신청할 제도를 모르면 직접 가서 설명해 줘야 하나요?"
맞다. 나는 회사에서 처음으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쓴 여성 직원이었다. 당시 인사 담당자도 절차를 자세히 몰랐고, 나는 고용보험과 고용노동부를 확인해 내용을 파악했다. 그리고 인사 담당자, 인사담당 팀장, 소속 팀장에게 제도를 설명하고 신청했다. 부담감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처음이 어려울 뿐이다. 내가 쓰면 누군가 또 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처음에는 "그게 뭔데 쓰냐? 그런 게 있냐?"며 무심코 던진 질문이 나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곧 잊는다.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 등 상위법에 보장된 권리를 막을 수 있는 핑계는 거의 없다. 지금 육아휴직이 과거보다 늘어난 것처럼 말이다. 언제나 처음, 소수에게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그냥 묵묵히 그 길을 걷다 보면 함께 걷거나 뒤를 따르는 발자국이 늘어난다.
외국에서 일하다 한국에 들어온 두 자녀 워킹맘이 더욱 솔직한 이야기를 꺼냈다.
"워킹맘 이야기엔 항상 죄책감이 나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키울 땐 죄책감을 별로 안 느꼈어요. 한국에 와서 일을 하기 시작하니까 주변에서 자꾸 묻더라고요. '애가 아픈데 야근 하냐?' '애는 누가 보고 있냐?'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도리어 죄책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한국이 유독 워킹맘 죄책감이 깊은 이유가 뭘까요? 해결책은 없을까요?"
이 질문 역시 정곡을 찌른다. 내가 생각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양성평등에 반하는 문화 때문이다.
"혹시 애 있는 아빠 직원들한테 '야근 왜 하냐?'는 말 하는 거 보셨어요? 안 하죠. 애 있는 엄마들한테만 하죠. 왜일까요? '애는 엄마가 키운다', '애 아픈 건 일차적으로 엄마 책임이다'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애는 엄마가 낳는다. 거기까진 맞다. 근데 애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 엄마 아빠는 공동 양육자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아내와 남편 모두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일과 아이 사이에서 선택이 강요되는 건 엄마뿐이다. 많이 바뀌긴 했지만, 인식은 여전하다는 증거다.
둘째, 구조적으로 바뀌지 않은 현상 때문이다.
"혹시 그 질문 누가 하셨나요? 아마 99% 남자 상사분이 하셨을 겁니다. 오해는 마세요. 남녀 차별이 아니라 구조적 현상이니까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고위직에 남성이 더 많다. 보통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도 고위직 남성들이다. 의도는 부정적이 아니더라도, 듣는 워킹맘 입장에선 죄책감이 무거워지는 말들이다. 그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아이를 직접 키워보거나, 아이 아플 때 휴가 내면서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서.
얼마 전 <다음생은 없으니까>라는 드라마에서 경력 단절이 된 엄마가 재취업하려는 과정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나도 당신이랑 똑같이 공부했고... 다른 사람들 다 뛰어가는데 나만 제자리. 하루하루 밀려나는 비참함을 당신은 알아?"
그랬더니 남편이 한 말은 "너한테 일은 허울 좋은 자아실현이겠지만, 나한테 일은 우리 네 식구 밥그릇이야!"였다. 놀랍게도 기막힌 이 대화를 모두가 내뱉진 않겠지만, 사실 우리 마음속에 뿌리 깊은 생각일 수도 있다. 누가 먼저 아이에게 달려가느냐는 성별과 그 성별에 붙여진 월급명세서에 따라 결정되니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아이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남편보다 덜 벌면서 자아실현 때문에 일하는 거냐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킹맘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엄마가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할 때 창출되는 효과는 엄청나다. 우리가 부정적인 단점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평가 절하되고 있을 뿐이다
#1 선배로서의 엄마 : 사회적 태도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
일단 일을 하는 엄마들은 결국 아이들의 사회 선배다. '일을 하러 나간다는 것', '내 명함을 갖고 책임을 진다는 것'의 사회적 태도를 아이들은 엄마를 통해 무의식중에 배운다. 회사를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엄마가 없듯 아이도 어린이집부터 유치원, 학교까지 매일 꼭 가야 한다는 걸 배운다. 그렇게 시간관념과 책임의 태도를 배운다.
#2 경제활동을 하는 엄마 : 돈과 구조를 가르치는 사람
일하는 엄마는 소득을 얻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단순한 사실이 아이 교육에서는 큰 힘이 된다. "엄마 아빠가 힘들게 번 돈"이라는 말은 상투적이지만 진실이다. 돈의 효용, 노동의 대가, 선택의 우선순위 등은 경제활동을 하는 부모에게서 가장 현실적으로 배울 수 있다.
엄마가 경제적으로 기여할 때, 가족의 의사결정 구조 또한 바뀐다. 양육과 노동을 한 사람이 독점하지 않기 때문에, 일과 가정의 균형이 더 평등한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는 아이에게도 가족 안의 역할이 성별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된다.
#3 자아실현을 하는 엄마 : 꿈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
"자아실현 때문에 일하는 거냐?"는 비아냥을 가끔 듣는다. 하지만 아이에게 매일 "꿈을 가져라"고 말하는 우리가 왜 정작 엄마의 꿈은 가볍게 여기는가? 만약 누군가 내 아이에게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일해라"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엄마든 아빠든 자신의 가치를 되찾고 사회적 보람을 느끼기 위해 일하는 것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이다. 꿈을 좇는 엄마의 모습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준다.
경제적 소득이 근로 동기의 1순위일지라도, 자신의 가치를 되찾고 사회적 보람을 얻기 위해 재취업하는 엄마들의 동기도 응원받아야 할 가치다. 꿈을 위해 도전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엄마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모습이지 손가락질받아야 할 모습이 전혀 아니다.
워킹맘의 죄책감은 '단점'만 볼 때 생긴다. 워킹맘의 장점도 분명히 많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단점만 들여다본다. 그럴 때 워킹맘은 스스로를 가해자로, 아이는 피해자로 만든다. 혹은 사회와 회사가 가해자가 되고 워킹맘이 피해자가 된다.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프레임이다.
반대로 장점을 바라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워킹맘은 아이의 사회적 선배가 되고, 회사는 무대가 되며, 사회는 함께 성장하는 장이 된다. 워킹맘이 자부심을 갖는 순간,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게임이 된다.
워킹맘인 나는 여전히 매일 바쁘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워킹맘의 삶은 고단하지만, 그만큼 가치 있다. 엄마가 일할 때 세상에 만들어지는 효과는 놀랄 만큼 크다. 그 사실을 더 많은 이들이 기억해 줬으면 한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워킹맘의 수업료>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