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15년 차인 나의 연차는 23일, 18년 차인 남편의 연차는 25일. 우리 부부의 평균 연차는 24일이라 언뜻 넉넉해 보인다. 하지만 계산기를 꺼내 드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치원 방학은 여름과 겨울을 합쳐 평균 10~15일이다. 방학 동안 엄마 아빠 중 한 명은 아이 곁에 있어야 하니, 연차 최소 10일이 여기서 먼저 빠진다. 재량휴업일과 학부모 참여 행사에 분기당 하루씩 쓰고 나면 약 10일. 수족구, 독감, 갑작스러운 고열로 아이가 등원하지 못하는 날도 분기당 하루는 잡아야 하니, 여기서 또 약 5일이 빠진다. 결산하면 순수하게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연차는 채 5일도 남지 않는다.
물론 이 모든 건 확률이다. 우리 아이처럼 연말에 갑자기 발등 골절이 생겨 3주 가까이 등원하지 못하는 상황도 생긴다. 맞벌이 부부의 연차 계획이란, 애당초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에 변수가 하나 더 있다. 유치원의 방학 일수다. 아이의 학사 일정표를 받아본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반 직장인도 연간 휴가를 다 못 쓰는 경우가 허다한데... 유치원이 이 기간 동안 아예 문을 닫는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안 되네. 특히 연말 연초에 내리 쉰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텐데."
우리는 그 자리에서 잠시 침묵했다. 여름방학 평일 9일, 겨울방학 평일 7일. 16일 동안 유치원 문이 닫힌다. 문제는 시기다. 겨울방학은 하필 12월 말부터 1월 초, 즉 연말 정산 시즌, 1월 평가보고서 시즌과 정확히 겹친다.
연차가 남아 있다면 쓰면 된다. 그런데 만약 남아 있지 않다면? 무급 처리를 감수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1년 치 업무 평가와 실적 정산이 이뤄지는 그 시기에, 나의 자리가 일주일 가까이 비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공식적으로 이런 잣대는 불합리하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람과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같을 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국가데이터처 자료를 보면, 2024년 하반기 기준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유배우 가구의 약 60%가 맞벌이 가구다. 특히 유치원 연령대인 6세 이하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구 비중은 53.2%로 집계됐다. 우리가 겪는 이 연차 부족의 압박이 전국 맞벌이 가구 절반 이상의 현실이라는 뜻이다.
더 심각한 건 이 구조가 경력단절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상반기 지역별고용조사 기혼여성의 고용 현황'에 따르면, 경력단절 여성이 직장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육아'로 44.3%에 달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서는 경력단절을 우려해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여성의 선택이 출산율 감소의 40%가량을 설명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연차가 부족해 불안하고, 불안하니 눈치가 보이고, 눈치가 보이다 결국 일을 그만두는 흐름. 방학 돌봄 공백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경력단절과 저출생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고리다.
물론 유치원이 맞벌이 부부 사정에 일일이 맞춰줄 수는 없다. 교사들의 휴식권도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유치원 등록 포기하고 7세까지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 다시 입소했어요."
"버티고 버티다, 결국 조부모님 도움 필요해요."
"다른 지역에 있는 '언제나 어린이집'(경기도의 24시간 돌봄 어린이집)이라도 보내요. 그래서 둘째는 안 낳으려구요."
맘카페에는 유치원 방학 동안 무조건 할머니 찬스가 필수이고 가급적 어린이집에 붙어있을 수 있을 때까지 붙어있어야만 한다는 자조 섞인 글들이 많다.
"캥거루족이 취업을 못 해서만 생기는 것도 아니에요. 독립하고 분가해서 애 낳고 나서 캥거루족이 되기도 해요. 저처럼 애 키우고 회사 다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친정 근처로 다시 돌아오는 거죠."
문제는 이것이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연간 16일의 방학에 재량휴업일 2일을 더하면 총 18일이 고정 차감된다. 남은 약 5~7일의 연차 안에서 아이의 돌발 상황까지 감당해야 한다. 단 하루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기 어렵다는 게 자명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연차를 쓸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언제 연차가 바닥날지 몰라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아이의 재채기 한 번, 훌쩍임 한 번에도 '혹시 내일 또 연차를 써야 하나'가 먼저 떠오른다.
같은 맞벌이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어떨까? 스웨덴 부모들은 아이가 아파도 연차를 쓰지 않는다. 자녀돌봄휴가(Vård av barn)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파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지 못하면, 부모는 연차 대신 이 제도를 사용해 일을 쉰다. 정부가 소득의 약 77.6%를 보전해 주고 만 12세까지 연간 최대 120일까지 사용할 수 있으며 고용주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이 제도는 1974년에 도입돼 5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조부모나 베이비시터 없이도 부모가 일하면서 아이를 직접 키우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한국의 2024년 합계출산율이 0.75명인 반면, 스웨덴은 1.43명이다. 출발선이 다르다.
한국과 스웨덴의 차이는 단순히 '복지 수준'의 차이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비용과 책임을 국가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차이다.
나는 매일 아침 아이와 함께 거울을 보며 세 번씩 외친다.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하다!"
그런데 그 말은 아이보다 나에게 더 필요한 말인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건강하고 행복한가. 솔직히 말하면, 건강하지 않을까 봐, 행복하지 않을까 봐 겁먹은 채 미리 약을 바르고 있는 건 아닐까.
더 두려운 건 2년 후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방학이 두 달이라고 한다. 두 달. 그때쯤 내 연차가 늘어봤자 25일 남짓일 텐데, 두 달을 어떻게 버티나. 모르기 때문에 더 불안한 건지도 모르겠다.
맘 같아서는 정부가 교육·보육 시설 방학에 맞벌이 가정이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이라도 만들어 보급해 줬으면 좋겠다. 당사자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토론회라도 열어줬으면 한다. 정부는 저출생 대책에 수십조 원을 쏟아붓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맞벌이 부모가 아이를 맡길 곳이 방학마다 사라지는 이 역설은 누가 해결해 줄 것인가.
개인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숫자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저출생·고령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과거와 똑같이 방학 일수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과거와 똑같이 맞벌이 부부가 개인 연차를 전부 쏟아부어야만 양육이 가능한 구조를 유지해야 할까? 과거와 똑같이 조부모 돌봄을 당연한 전제로 삼아야 할까?
직장 생활 16년 차에 접어들도록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고민이다. 연차가 부족한 것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것도, 어느새 당연한 희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나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워킹맘의 수업료> 연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