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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Mar 22. 2021

애가 아니라 내가 문제다

아이 보며 애니 보기 5 - 굿 다이노(2016)

다섯 살 무렵, 아이는 공룡 시대에 살고 있었다


공룡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고까지 하면 거짓말이겠으나, 수많은 공룡 이름과 특성을 줄줄 외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감이 들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고, 몰입하면 저렇게까지 될 수 있구나. 아이를 보며 다시 배웠다. (외우기 쉽게 노래로 만들어 준 핑크퐁 덕에 장단을 맞출 수 있었다. 늦었지만 감사를.)


그러나 아이는 공룡을 좋아하는 다섯 살에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흥미를 자극하는 관심사를 찾아 계속 새로운 여정을 떠났다. 각종 자동차와 로봇 시리즈에 이어 최근에는 게임에 정착했다. 지금은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자기만의 세상을 건축하는 데 푹 빠져 있다. 부모로서는 태권도와 피아노, 영어와 수학 같은 취향을 키웠으면 좋겠으나, 본인의 취향은 결국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법.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공룡만 좋아했던 네댓 살 때의 아이가 벌써 그리워진다. 


사촌동생이 집에 찾아온 덕에 아이는 오랜만에 다시 공룡과 조우했다. '뭐야 시시해~'라고 투덜대며 자리에 앉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몇 분만에 아이는 다시 애니메이션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두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픽사가 만들어 놓은 세상 속에서 함께 뛰어놀았다. 



<굿 다이노>는 픽사의 열여섯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미국에서는 2015년 가을, 국내에서는 2016년 초에 개봉했다. 픽사의 첫 번째 공룡 영화라는 특징이 있다. 여러 곳에서 트레일러를 굉장히 많이 접했던지라 분명히 봤던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보기 시작한 지 5분 만에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세상에 공룡을 다룬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수없이 많지만, 픽사가 만든 건 <굿 다이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스토리를 단순화해서 설명하자면 사실 그리스 신화나 무협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리에서 가장 약한 주인공이 가족을 잃고 각성하고, 모험을 떠난 후 새로운 동료를 만나며, 갖가지 경험을 통해 성장한 채로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내용. 어른들이라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접하면서 익숙할 만큼 익숙해진 플롯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후기를 보니 역시나, 디즈니의 대표작인 <라이온 킹>을 떠올리게 한다는 내용들이 많았다.) 


알면서도 질 때가 있다


대강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초반부를 보고 대강 짐작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모든 세대 관객들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것은 디즈니와 픽사가 가진 전매특허 강점이다. 특히나 아버지와 아들 간의 이야기에 취약한 나로서는 주인공인 알로와 아빠인 헨리가 투닥거리는 장면, 헨리가 엄하게 알로를 꾸짖는 장면, 그리고 다시 알로에게 차분히 타이르는 장면 등등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러 고난을 겪는 과정에서 알로는 원시인 스팟 등 친구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던 '겁쟁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는 데 성공한다.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으나, 알로는 가족들이 애초에 바라던 모습대로 성장한다.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의 도움이 아주 없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결국 세상과 만나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생각을 키우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알로 자신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생각하는 방향으로 따라주지 않아 나름 속상할 때가 적지 않다. 한 살 한 살 먹다 보니 이 연령대에 이 정도쯤은 해야 할 것 같은 게 생각보다 꽤 많아진다. 옆집 누구는 벌써 태권도도 피아노도 이만큼 저만큼 진도를 나갔다는데, 나도 몰래 내가 아이에게 무관심한 부모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음속에서는 우물물 불어나듯 퍼내도 퍼내도 조바심이 계속 차오른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신경 쓰이는 게 설마 나뿐만은 아니겠지. 정말이지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들만 추리고 추려 아이를 인도하고자 하는데, 아이는 마음먹은 대로 따라오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볼 때처럼, 게임할 때처럼 집중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아이가 가진 재능을 썩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부모인 내가 미처 발견해주지 못해 아이가 제대로 커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부모들이라면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더 이상 공룡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림일기도 쓰지 않는다. 이 시기의 이 친구에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하는가. 아빠학개론이 있다면 당장 달려가 수강하고 싶지만, 삶에서 가장 필요한 영역에 대해 세상은 놀랄 만큼 무관심하다. "꼭 그걸 말로 해줘야 하나? 척하면 딱이지."라고 이야기하는 셈인데, 사십 년 살아도 잘 모르는 건 모르는 채로 남아있다.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부모로서는 초보에 가까운, 그래서 애써 부인하지만 늘 '이게 맞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헤매고 있을 때, 디즈니와 픽사의 제작진은 아이와 함께 보는 애니메이션 한 편으로 마음속 한 구석을 쿡쿡 건드린다. 


'이봐, 봤는가 자네? 아이들은 결국 스스로 깨우치게 돼.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그랬듯.'


아이들의 눈높이에 대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을 제작진들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적어도 남몰래 차오른 조바심에 사로잡혀 숙제 안 한다고 부글부글 짜증 내며 애를 잡는 짓은 조금이나마 덜 하지 않을까. (물론, 내일은 또 책상 앞에서 어떤 환장의 부르스가 펼쳐질지는 모르겠으나...!)


부모의 기대는 부모의 것이며,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다. 부모들은 걱정했지만, 알로는 어쨌거나 잘 컸다. 부모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보다 아주 조금 더 내려놓고 지켜보는 것일지도. 


굿 다이노(2016),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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