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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Oct 02. 2021

아무리 엄마가 아빠보다 낫다지만

아이 보며 애니 보기 6 - 벼랑 위의 포뇨(2008)


아이가 가장 아빠를 반가워하는 시간은 언제일까?


내 경험상으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하원할 때였다. 어린이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 모습을 발견하면 하던 걸 멈추고 다다다다 뛰어와 폭 안기는데, 그 순간만큼이나 아이가 사랑스러운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때는 없었다.


"오늘은 음... 아빠가 데리러 와줘!"


아침 출근길에 아이가 그렇게 선언하면, 오늘 저녁 일정이 어떻게 되더라 살짝 머리를 굴려본다. 가능할 것 같으면, 속으로 '아싸!'를 외친다. 물론 회사원 삶이 대체로 그렇듯 아이가 선심 써서 그렇게 말해줘도 사실 데리러 갈 상황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아침부터 기분이 착 가라앉곤 한다. 아빠로서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놓치는 셈이므로.


육아에 열심을 다해 보려 나름 마음먹어 보지만, 어린 시절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는 레벨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될 때가 있다. 초등학생이 된 큰애는 그래도 제법 아빠와 같이 둘이 다니는 것을 허락해주는데, 둘째는 아직 곁을 쉬이 내어주지 않는다. 말은 유튜브님 보우하사 청산유수지만 아직은 여전히 엄마가 1순위, Top Pick이다. 오늘도 점심에 동네 파스타집에 크림 스파게티 먹으러 갈 파트너를 고르는데 나는 그만 할머니에게 밀려 버렸다. 엄마랑 할머니 다음 3순위의 슬픔. 이탈리안은 여자끼리 가야 한다는데, 어쩔 도리가... 흑.


그래서 가끔이나마 둘째가 큰맘 먹고 아빠를 끼워줄 때면 엄청 신나고 좋은데, 그런 기회를 좀 더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애니메이션을 적극 활용한다. 까다로운 고객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선택하는 애니들 중에는 '벼랑 위의 포뇨' 도 있다. 지브리 애니 중 딸이 좋아하는 Top 3 안에 드는 영화. 입에 착 감기는 히사이시 조의 OST 때문이기도 하다.





2008년에 개봉한 지브리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는 일상과 판타지가 묘하게 얽혀있는 영화다. 바다 여신의 딸인 '포뇨'가 인간이 되어 육지로 올라오면서 일어나는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디즈니 '인어공주'의 지브리식 해석인가 싶기도 하다.)


여하튼 몇 번이고 시간 날 때마다 포뇨를 같이 보는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멋진 '엄마'의 존재다. 남자 주인공인 쇼스케의 엄마 리사는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다. 아이를 위해 폭풍우를 뚫고 멋지게 드라이빙을 할 때나, 몸이 흠뻑 젖은 포뇨와 쇼스케를 위해 따뜻한 차를 내어줄 때의 모습은 아, 엄마라는 존재가 갖는 아우라는 저런 것인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끔 한다.


인간의 엄마를 대표하는 리사와 더불어 포뇨의 엄마 역시 매력 터지는 건 매한가지다. 게다가 포뇨의 엄마는 '바다의 여신'. 포뇨에 대한 애정의 넓이와 자애로움이 신이 인간을 내려다보는 수준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초인급(?) 엄마 캐릭터들에 비해 아빠들은 대체로 부족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포뇨의 아빠 후지모토는 지질함을 장착한 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간이 되려는 포뇨에게 적대적인 빌런급 캐릭터로 등장한다. 외항선 선장인 쇼스케의 아빠도 스토리의 메인에서 멀리 비켜나 있다. 월화수목금금금 회사에서 주야장천 일만 하고 집에는 코빼기도 안 비치는 아빠를 빗댄 것인가 싶을 만큼, 쇼스케 모자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공기화 되어 있다.





포뇨를 반복해서 보며 드는 생각은 대체로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저런 아빠들처럼은 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엄마와 아빠 간의 격차는 정말 좁히지 못하는 것일까?’하는 것. 아내가 들으면 게으른 주제에 육아 면피하려 서툰 꾀까지 낸다고 코웃음을 치겠지만, 나름 생각해볼 만한 주제다.


짧은 육아 경험이지만, 그동안의 깨달음을 통해 얻은 결론은 결국 ‘시간의 양과 질’이었다. 함께 이리저리 부대끼는 시간이 많을수록, 아이들도 좀 더 마음을 내어준다. 그리고 함께 있는 그 시간 동안 핸드폰만 쳐다보고 SNS나 하며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면 아이의 마음도 그에 비례하여 떠나간다. 알면서도 쉽게 행하지 못하는 것이 집안 육아나 집밖 일이나 큰 틀에서는 다른 게 없다.


영화 속에서 리사와 쇼스케의 공간이 그만큼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도, 결국 두 사람이 함께 쌓은 시간의 밀도가 굳건한 신뢰의 고리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아직 둘째와는 제 엄마만큼의 밀도를 쌓지 못한 셈이다. 첫째와도 뭐 간신히 손잡는 수준이긴 하지만.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 나서는 의식적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호하려 애쓴다. 회사일도, 네트워킹도 중요하지만, 다시 엄밀히 우선순위를 따져 볼 일이다. 아이들은 계속 자라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오늘의 나와 오늘의 아이가 만나는 시간은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밖에 없으니까.




큰애는 얼마 전부터 수영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수영장에 들어간 사이 건물 한편에 있는 맘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중이다. 이제 아이컨택하러 가야 할 시간이다. 둘째가 수영을 배우러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오늘 첫째와 그랬던 것처럼 사이좋게 아빠와 둘이 손잡고 이곳에 오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리고 맘카페 역시 그때는 더 이상 맘카페가 아닌 또 다른 이름의 공간이기를 바라본다.


벼랑 위의 포뇨(2008,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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