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보며 애니 보기 7 - 모아나(2017)
동해 바다에 다녀왔다.
뉴스에서는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시월 가을이라 말하고 있었지만, 햇빛까지 쨍하니 비쳤던 것은 아니었다. 해수욕은 무리였지만, 아이는 푸른 파도에 발을 담그며 한나절 까르르 즐겁게 놀았다. 그새 조금 더 컸다고 이제는 옷이 물에 젖어도 놀라거나 울지 않는다. 외려 얼굴에 장난기만 더해졌다. 이거 봐라, 곧 있으면 아빠 물에 빠뜨린다고 덤벼들 기세네...?
아이는 바다를 즐기고 있다.
바다는 만날 때마다 경이롭다. 일렁이는 파도를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댄다. 수평선 저 너머를 보며 사람들은 자연스레 미지의 세상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아닐까. 연휴 때마다 수많은 인파가 바다를 찾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게다.
저 바다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것이 역시 나만은 아니었다.
"아빠, 저기 배 지나간다!"
아이는 휘둥그레 눈을 뜨며 바다 한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작은 배 한 척이 빨간 등대를 지나 유유히 항해하고 있었다. 손톱만 한 크기의 조각배가 밤하늘 별처럼 조금씩 움직였다. 아이의 눈은 꽤나 오래 배가 향하는 쪽에 머물렀다.
폴리네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모아나'는 주인공 모아나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다의 선택을 받음으로써 바다와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모아나는 늘 섬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산호초 밖의 세상을 동경한다. 성년이 된 후 자신이 속한 모투누이 부족이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모아나는 섬에 얽힌 저주를 풀기 위한 모험을 떠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반인반신 마우이를 동료로 삼아 분투함으로써 결국 부족을 구원하는 데 성공한다.
'모아나'는 모아나와 마우이 두 캐릭터의 항해 장면만 보아도 눈이 시원해진다. 푸른 바다를 가르며 항해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좋아 무더운 여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보던 애니메이션이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개그 코드 역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같이 깔깔 웃다가 함께 노래들을 흥얼거리다 하며 온 가족이 같이 모아나의 모험에 동행하곤 했다. (마우이가 쉬하는 씬은 디즈니 전체 애니 통틀어 아이가 가장 재미있어하는 장면이다.)
'모아나'에 등장하는 빌런은 불의 화신인 '테 카'이지만, 또 다른 악역을 하나 더 꼽자면 모아나의 아버지인 부족장 '투이'다. 과거 산호초 밖으로 나가다 동료를 잃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투이는 딸 모아나가 섬을 떠나는 것을 극구 말리며 대립한다.
투이의 마음은, 딱 부모 마음이다. 자식이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실수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거짓말 조금 더 보태 거의 매일같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가지각색 실랑이의 원인이 다 그 때문인지라 투이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투이는 틀렸고 모아나가 옳았다. 물론 영웅의 성장담을 다룬 영화 속 이야기니 그런 것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조심스럽게, 다시금 생각해본다.
항상 부모가 옳을 수는 없다.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도 똑같이 적용되리란 법은 없으니까. 오히려 미래는 과거와 다르리라는 예상을 바탕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자식의 선택을 믿고, 존중하고, 그저 지지하고 응원하는 데서 멈춰야만 하는 시점이 온다. 모든 부모의 숙명이 아닐까.
햇빛이 사라지고 날이 흐려졌다. 모래사장이 완만한 편이 아니어서 조금만 들어가도 금세 수심이 깊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파도를 등진 채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바다와 교감하는 모습을 줄곧 바라보았다.
아직은 보호가 필요한 나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곧 몰라볼 만큼 자라서, 각자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자 할 것이다. 아이가 모험을 떠나게 되는 날이 오면, 아빠는 그것도 모르냐고, 답답해하며 타박을 줄지도 모르겠다. 모아나처럼 말없이 사라지지나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려나. 그 순간이 내게 오면, 아이에게 흔쾌히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라 말해줄 수 있을까...? 아직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래도, 그때가 되었음을 알았을 때에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 너는 아직 어리다.'라는 말로 에두르고 싶지는 않다. 그러지 않기 위해 조금씩 준비를 해둬야 하겠지. 아이가 더 이상 아빠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게 되었을 때, 그 '반항'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반쯤은 성공이겠다.
'모아나'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말한다. 산호초 안에 안주하지 말고, 저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꿈을 가지는 건 어떠냐고. 때론 태풍이 휘몰아치고 다툼이 있기도 하겠지만, 결국 미지의 세계에 도전해야만 새로운 미래가 있다고. 태초 이래 인간의 역사가 그러했다고.
아이의 미래는 미래의 아이에게 맡겨두고, 나 스스로부터 돌이켜본다. 생활인으로서의 나는 과거에 머무르고만 있지는 않은가. 부모로서 겪게 될 새로운 모험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 아, 이렇게 점잖은 체 써놓고는 금세 까먹고 아이랑 애처럼 또 사소한 걸로 투닥거리고 있을 모습이 안 봐도 선하다. 내일은 또 어떤 실랑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창조신이여 제발 애들 제때 밥 좀 먹고 제때 숙제 좀 하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