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보며 애니 보기 8 - 라따뚜이(2007)
아이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학년이 올라가니 주변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 동네 형 누나들을 점점 (짐짓 아닌 체하면서 사실은) 부러운 눈으로 곁눈질하기 시작하던 터였다. 마침 아이가 다니던 수영장 입구를 지나다 수영과 인라인 강습을 같이 등록하면 할인을 해준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지를 때가 됐다. 무엇 때문에 버는데.’
고도로 발달한 현대식 번들링 마케팅 기법에 눈뜨고 마음껏 넘어가 주었다. 그리고 그날 부로 나는 졸지에 아이의 주말 운동 일정을 보조하는 매니저가 되었다.
강습 첫날, 연습장을 찾은 아이는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빨간 헬멧을 쓴 채 한구석에서 다른 형 누나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남겨두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연습장을 나왔다. 강사님이 걱정 마시라 하지만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뒤로 꽈당 넘어지면 어쩌나 문 밖에서 마음을 졸이다가, 차라리 안보는 게 낫다 싶어 눈 질끈 감고 자리를 피했다.
다행히 아이는 첫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조금 넘어지게는 했으나, 싫다고 안 간다고 하지 않으니 절반은 성공이다.
몇 번의 강습 후에 함께 한강공원에 나갔다. 함께 아주 천천히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아이는 거의 정지동작에 가까운, 나무늘보 같은 속도로 트랙을 한 발 한 발 치고 나갔다. 난 넘어지면 바로 잡아줄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둔 채 뒤를 따랐다. 반 발짝이나 되었을까.
크지 않은 트랙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수 차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래도 곧 일어나서 다시 스케이트를 지치기 시작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점점 아이와의 간격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한 바퀴를 도는 데 세 번밖에 넘어지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울컥한다. 대단하다, 잘한다 진심으로 격려해줬더니 아이의 얼굴에는 득의만면한 표정이 잠깐 생겼다가 금세 결연한 표정으로 바뀐다.
"이번엔 두 번만 넘어지고 돌 거야."
다시 속력이 느려졌다. 간격은 다시 가까워졌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신경 쓴 탓이다. 하지만 목표한 대로, 쉽게 넘어지지 않았다. 두어 바퀴 트랙을 돌고 나서 아이는 자기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했다.
이 정도 되면, 이제는 부모 차례다. 고슴도치병이 도질 차례.
'음... 이러다 선수된다고 하면 어쩌지? 설마 주말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선수 매니저로 쭉 전직하게 되는 걸까?'
픽사의 2007년작 '라따뚜이'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하는 생쥐 '레미'의 여정을 그려낸 애니메이션이다. 배경으로 연출된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이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영화이기도 하다.
일찍이 생쥐로 흥한 디즈니다. (미키마우스는 1928년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미키마우스의 먼 손자뻘 캐릭터인 '레미'는 영화 속에서 담대한 꿈을 꾼다. '셰프'가 되겠다는 꿈. '주토피아' 같은 세계관도 아니고 엄연히 인간과 생쥐의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미식의 도시 파리에서.
'라따뚜이' 속 세계에서 쥐는 혐오의 대상이다. 인간은 쥐만 보면 못 잡아 죽여 안달이다. 식재료를 못쓰게 만드는 쥐떼를 달가워할 요리사는 어디에도 없다. 공중의 위생을 위해 식당은 당연히 쥐가 나오면 영업정지다. 어떤 면에선 현실을 현실 이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픽사는 그 살벌한 공간 속에 '요리사가 되는 꿈을 꾸는 쥐'라는 발칙한 상상을 불어넣는다. (인간이 아닌) 쥐가, (인간만이 될 수 있는) 요리사가 될 수 있나? 이건 마치 뭐랄까, '오징어 게임' 속에 나오는 외국인 노동자 '알리'가 데스 게임의 최종 승자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미션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라따뚜이'는 감히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디즈니답다.
우리가 디즈니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라따뚜이는 개천에서 용 나는, 아니 하수구에서 셰프 나는 성장영화다. 레미는 신분의 격차를 극복하고 결국 셰프가 된다. 그 과정에서 레미는 셋의 도움을 받는다. 친구 요리사 링귀니, 음식평론가 이고, 그리고 아버지 쟝고.
레미가 바라는 대로 셰프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지만, 결정적인 난관을 극복하는 데에는 아버지 쟝고의 힘이 컸다.
쟝고는 레미에게 말한다.
“난 요리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야, 용기에 대해 말하는 거지. 정말 이 일이 하고 싶니 레미?”
그리고 쟝고는 꿈을 좇는 레미를 위해 인간과 적대하던 자신의 신념을 바꾸고 레미를 지원한다.
쟝고의 마음을 바꾼 것은 ‘죽을 만큼’ 요리사가 되고 싶던 레미의 간절함, 그리고 비록 중간에 곡절은 있으나 그런 레미를 인간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운 파트너 링귀니와의 관계였다. 레미와 링귀니 둘 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냈고, 쟝고는 용케 그것을 보았다.
쟝고는 스스로 용기를 낸다. 자식에게 위험이 닥칠 수도 있음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면서도, 그 선을 기꺼이 넘어 자식의 꿈을 돕는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회사원은 안됐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그건 못난 아빠의 마음이고, 본인은 어떨지 모르지.
어느 날 나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생뚱맞은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니 그때는 어른이겠다. 그때까지 나는 그만큼 어른이 되어 있으려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더라도, 가슴으로 이해해줄 수 있으려나.
머릿속에 손흥민과 페이커가 스쳐 지나간 찰나,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거… 꽤 병이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