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생각하고 쓰고 (34)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본 아이는 이후에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줄 안다. 그 시간이 자아존중감을 길러주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지렛대는 인간관계이다. 사람들의 기대에 호응하고 거기에 맞춰서 살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사회의 기본을 지켜주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든다."
"저는 “싫어요”, “안 해요”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봐요.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이 안에서 내가 이 단체의 일원이고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확실하게 정체감을 갖는 것이거든요."
“사회에 불평등한 현상들이 쌓이고, 이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이 사회 전반에 누적되면 누구에게도 안전하고 좋은 사회란 있을 수 없다.“
10대에 처음 만나 어느덧 20대가 된 여덟 청년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는 그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어떻게 자신들이 처한 환경 속에서 각기 삶을 살아내기 위해 분투해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끈을 놓아버리지 않고,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 하루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온 아이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저자인 강지나 박사는 사회복지학자의 관점에서 청소년 빈곤 문제를 들여다보는 차원에서 자신의 연구 내용을 담담히, 이론적 설명을 섞어가며 소개한다. 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아이들을 아끼는 교사로서의 정체성 그 어디쯤에서 나름의 중심을 잡고자 애쓰는 저자의 마음이 곳곳에 녹아 있다.
오랜기간 이어진 본인의 연구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연구서로서의 느낌이 아주 없진 않지만, 편집 과정에서 꽤나 많은 노력을 거친 게 읽다보니 자연히 눈에 들어온다. 전공분야 학자들에게만 읽히기보다는 더 많은 독자들에게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전하고픈, 그래서 이 사회가 좀 더 이들 청소년에게 괜찮은 사회로 바뀌길 바라는 저자의 진심이 함께 보인다. (진심이 전해져서인지 지난달 출간된 이후 온라인 서점들 판매순위에서 꽤 높이 올라와 있다. 잘하면 같은 분야에서 #선량한차별주의자 급 스테디셀러가 될 가능성도…?)
10년은 긴 시간이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몸과 마음이 모두 급격한 변화를 겪는 성장기의 10년은 더욱 그렇다. 그 긴 시간동안 한 사람의 성장기를 오롯이 옆에서 지켜보는 건 가족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과학에서 생애사 연구가 어려운 건 그만큼 방법론이 가성비(?)가 안나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매년 실적 압박이 있을 연구자 입장에서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그 고단함을 이겨내고 이렇게 멋진 결과물을 내놓은 저자에게도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여덟 개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니, 책과는 별개로 문득 15년 전 전주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저녁 시간에 회사 근처 사회복지센터에서 동네 중학생들 영어를 가르쳐주곤 했었다. 나중엔 아이들이랑 친해져서 객사길 나가서 떡볶이도 사주곤 했었는데, 1년 남짓이었지만 타지생활 중에 그나마 회사와는 다른 경험을 했던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시간이 꽤나 지났으니 10대 중반이던 그 친구들도 이제 서른 줄이겠구나. 다들 나름의 행복들을 찾았으려나.
어쩌다보니 계속 인터뷰집에 가까운 책들을 집어들고 읽고 있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 속에서 길어올려지는 삶의 단면들에 유난히 끌리는 시기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책 보면서 아, 나도 좋은 책 쓰고 싶은데… 아, 나도 좋은 논문 쓰고 싶은데… 생각하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아무나 되라는 효리누나 짤이 생각나서 움찔. 이번 주말은 그냥 좋은 사람들과 맛있게 보쌈 먹고 치킨 먹은 걸로 행복을 찾은 걸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