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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Feb 09. 2024

우리는 언제든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35) -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

"내게 북한이란 상상의 공동체도 아닌, 허상의 공동체였다고 할까? 사실 이게 더 문제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실재하는 현실임에도, 내가 인식하는 세상에서 ’북쪽‘은 지워진 존재였으니까."


"우리는 언제든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소수성의 반대말은 다수성이 아니라 정상성이니까. ’정상‘의 범주는 상대적이기에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언제, 어디에, 어떤 상황에 놓이냐에 따라 얼마든지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당연히 여성의 몫이라고 한다. 북한 이주민 출산 지원 제도만 해도 그렇다. 아빠는 지워지고 엄마만 남아있지 않은가. 북한 이주민 여성이 남한 여성보다 임신•출산•양육을 할 때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이고, 주로 (동반 가족이 없는) 혈혈단신이기에 도움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나라가 제도적 지원을 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임신•출산•양육을 오롯이 여성의 일이라고만 여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원 입학 후 10년만에 간신히 논문 쓰고 졸업을 했지만 학회나 연구활동을 하지 않으니 박사 학위를 받고도 3년째 장롱면허 꼴이다. 그동안 먹고살고 애들 키우느라 공부는 손놓고 있어서 업계 최근 현황에도 어둡다. 대 AI의 시대에 3년이나 묵었으니 이젠 연구방법론부터 첨부터 다시 배워야 할지도.


사는 데 큰 도움은 안되는 북한학 박사지만, 그래도 공부안한다고 학위 취소나 만료를 시키는 건 아니니 관련 분야에서 일반 독자들도 읽을 만한 책들 한두 권씩 소개해볼 생각이다. (사실 올해도 이제 다 끝나가는데 전공 관련 책들을 거의 안보고 지나갔다는 데 스스로 충격먹었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안좋아도 그렇지…)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는 표지에 그려진 단짠단짠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연애 에세이다. 중국 드라마와 대만 노래를 좋아하는 중문과 덕후 대학생이었던 저자가 함경도 출신 이주민인 남학생 ‘민’과 썸을 타기 시작하면서 마주치게 된 다양한 일들을 재미있으면서도 가끔은 시큰한 필치로 그려놓았다. 번역가이자 장르소설 작가인 저자의 글솜씨가 에세이에도 유감없이 담겨 있다.


북한이라는 주제를 ‘학제간 연구를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야 하는’ (그래서 졸업시험 공부를 더 해야 하는) 대학원에 다닌 덕분에 주전공인 경제/IT 외에 사회문화 관련 수업들도 들었다. 지금은 덕성여대로 자리를 옮기신 이수정 교수님 수업이 특히나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북한이주민을 통해 ‘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해 예전보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인데, 다양한 학문적 접근을 권장하는 학교 커리큘럼의 그 속깊은 뜻(!)을 수업 들은지 수 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이해하게 되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언뜻 가벼운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그러니까 이 책은 내가 보기엔 ‘북한이주민연구’ 수업을 여는 첫 교재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인데, 읽다 보면 자연스레 북한 이주민들이 한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민자로서 겪게 되는 다양한 상황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공감하게 된다.


늘 ‘나는 소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없진 않겠지만, 세상에 그런 경우는 없다.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면 누구건 간에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자연스레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무디게 느끼고 있었던 소수자들에 대한 감각을 스스로 좀 더 예민하게 벼리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확실한 건, 논문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읽힌다는 거다. 아니 연애 에세이를 논문과 비교하는 것 자체부터가 무리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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