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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

패트릭 브링리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by 자민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신발 바닥에 붙은 껌 같은 취급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한 번씩 당신은 경비원 따위일 뿐이라는 걸 아주 확실하게 상기시켜 주는 녀석들을 겪지 않고는 경비원으로 일할 수 없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예술사 최고의 거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날마다 그날 해야 할 일을 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데 더없이 전념했기 때문이다.”




올해 첫 책은 24년 베스트셀러였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갑작스런 형의 죽음을 계기로 첫 직장이었던 ‘뉴요커’ 기자로서의 삶을 뒤로한 채 10년간 경비원으로 살았던 남자의 이야기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갔던 게 2008년 가을이었다. 저자가 딱 그 무렵부터 경비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아마 그때 어느 전시실인가를 지나다 엇갈렸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저자가 안내하는 미술관을 책과 함께 즐거이 거닐었다.


얼마 전 20만 부 판매 기념 양장본도 새롭게 나왔는데, 불황기인 한국 서점가에서 20만 부라는 판매 스코어는 놀랄만한 성적이다. 가족에 대한 애도라는 비슷한 테마를 공유하고 있는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가 국내에서 10만 부 약간 안되게 팔렸다고 하니, 최근 출간된 외국 에세이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들로산다는건아빠로산다는건 도 굳이 따지자면 같은 부륜데 판매량은…ㅎㅎ)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읽을 때는 늘 궁금해진다. 이 책은 어떤 면에서 (한국)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을까? 누구나 선망하는 멋진 직장을 다니다 가족의 상실을 계기로 갑자기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남자라는 서사는 대중들에게 낯설지 않은 코드다. 그렇기에 이 책이 특별하게 읽힌 것은 아마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경비원’이라는 두 가지 요소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뉴욕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명소인 메트(The Met), 그리고 그와 상반되는 이미지의 경비원이라는 직업이 만나 저자의 이야기가 한층 풍성해진다.


국내 출간을 기획한 출판사 편집/마케팅 부서 담당자의 숨은 노력 역시 엿보였다. 미술에세이와 여행에세이, 직업에세이와 애도심리에세이라는 네 영역의 독자를 모두 아우르는 책이라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아보고, 기획하고, 빠르게 두 명의 번역가를 붙여 출간할 생각을 했던 것일까.


게다가 원제인 ‘All the beauty in the world’보다는 한국어 제목이 훨씬 더 직관적이다. 저자의 글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그것만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는 책의 매력을 어필하는 게 부족했을 수도 있다. 요리 속 양념처럼, 책 뒤 판권지에 적힌 이들이 숨은 맛을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 역할이 없었다면 아마도 한국에서 이 책이 이만큼 성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헤아려 보니 메트에 간 것도 오래전 일이다. 다시 뉴욕에 가게 된다면, 한 번쯤 다시 들러보고 싶다. 책을 읽고 난 다음이니,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미술관 경비원 분들께도 지나다 한 번씩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경비원입니다 #패트릭브링리 #김희정 #조현주 #웅진지식하우스

#allthebeautyin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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