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동네가 같이 키운다
“수현아, 주말인데 오늘 아빠랑 영화나 보러 갈까?”
“아빠, 오늘은 K랑 같이 보러 가기로 했어. 아빠랑은 다음에.”
“너희들만? 그래도 초등학생인데 부모님도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냐?”
“어, K 아빠가 같이 가주신대. 아빠는 오늘 집에서 쉬어~”
주말 아침, 모처럼 아들과 데이트를 하려고 하다가 보기좋게 채였다. 어라…? 곧 졸업이라고 튕기네? 내년에 중학교 가면 이제 더 같이 놀 시간이 없어지려나…?
“주은아, 오후에 아빠랑 놀러갈까?”
“아빠, 나 오후에는 M이랑 놀이터에서 놀거야. 아빠랑은 다음에.”
“계속 놀이터에서 놀려고? 아직 더운데?”
“아니, 좀 놀다가 M네 집에 가서 놀려고. M 엄마가 홍대 데려가주신대. 아빠는 오늘 집에서 쉬어~”
딸에게도 보기좋게 채였다. 저학년이지만 멘탈은 오빠랑 똑같다고 생각해서인가…? 생각지도 않게 토요일 낮시간이 텅 비어버렸다. 아이들 소리 없이 고요한 집안 풍경이 생경하다.
보통 토요일은 아이들과 복닥거리는 시간이다. 평일동안 일하느라 쌓인 피로를 풀 새도 없이, 아침부터 일어난 아이들과 하루종일 붙어다니며 이것저것 오만 잡다한 활동을 하는 시간. 건전하게(?) 같이 숙제를 하기도 하지만 이건 가뭄에 콩나듯 일어나는 일이고, 보통은 놀 궁리를 하느라 바쁘다. 집 앞 공원에 나가서 축구나 배드민턴 같은 운동을 하기도 하고, 만화카페에 가서 두어시간 동안 각자 좋아하는 만화책을 탐독하기도 하고, 때론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도 한다. (정작 가면 장보기보다 시식에 더 집중하긴 하지만.)
매 주말 아침마다 '아이고, 대체 집에 와도 쉴 새가 없네' 하며 한숨을 쉬던 걸 듣기라도 한 걸까. 아이들이 제각기 자신들의 스케줄을 일정표에 채워간다. 본인들의 주말 자유시간을 더이상 부모에게 맘대로 통제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한 살 한 살 먹어갈 수록 자기 친구들과의 약속이 갈수록 늘어간다. 둘째는 첫째를 보며 자라서인지는 몰라도 그런 경향이 더욱 진하다.
'에라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거 나도 모처럼 쉬자.'
그동안 사놓고 못읽던 책들을 싸들고 집 앞 스벅에 나왔다. 두어 시간 지나자 어느 순간 아이들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전화를 해봤다. 첫째는 이제 막 영화를 보고 나온 참이었다.
"아빠 너무 재미있었어. 아저씨가 영화 티켓을 끊어주셔서, 나는 내 용돈 모은 걸로 콜라랑 팝콘을 사서 친구랑 같이 먹었어."
"그래? 잘했네."
둘째에게도 연락을 해봤다.
'딸, 뭐하고 있어?'
둘째는 조금 후에 연락이 왔다. 친구랑 친구 엄마랑 같이 홍대에 왔단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봤던 수노래방에 같이 와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단다. 코인노래방만 가다가 진짜 노래방은 처음이었는데,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고.
'그래? 잘했네.'
분명히 평소와 달리 몸은 편한데, 어딘가 모르게 묘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닌데, 그 자리를 내가 아닌 다른 어른들이 채워주고 있다. 마음이 슬며시 오르락내리락한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건가…?"
“품앗이 하는거지 뭘. 상부상조.”
같이 있던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쿨하게 답한다. (역시… 현명한 분.)
아이들을 키우면서 동네 이웃들과 알게모르게 많은 도움을 주고 받는다. 처음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이사오기 전까지는 이곳에 살게 되리라고 전혀 생각도 못한 동네에서 살고 있는데,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가면서 양육자들간에도 자연스레 교류가 생겨난다.
아이들은 같이 등하교를 하고, 같이 동네 학원에 다니며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은 공통의 미션을 수행하는 또다른 동료가 된다. 피치못한 사정이 생겼을 때, 첫째의 친구의 엄마, 둘째의 친구의 아빠가 어디선가 든든한 구원투수처럼 나타나 우리 아이들을 함께 보살펴준다. 아, 이래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 건가. 꼭 그런 의미는 아닐 수 있겠지만서도.
평소와 달리 조금 일찍 퇴근하고 집에 오는데 뒤에서 한 떼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내 앞에 선다.
“아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아이는 첫째 아이다. 그 뒤로 공손히 '안녕하세요' 하고 조금은 수줍게 인사하는 아이들은 첫째의 친구들이다. 얼굴들이 낯이 익다. 유치원 때부터 봐왔던 친구도 있고, 예전에 첫째랑 같이 영화보러 갈 때 함께 온 친구도 있다. 평일에는 학교와 학원을 함께 다니고, 주말에는 온라인 공간에 만나 같이 게임도 하는 동네 친구들이다.
집에 왔는데 둘째가 아직 없다. 학원은 진작 끝났을 시간인데…? 아내에게 물어보니 같이 다니는 친구 H 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오기로 했단다. 돌아오면 한참 또 '우리집에서는 못먹는 맛있는 거 먹었다'고 자랑하겠군. 요리 잘하는 이웃집 덕분에 저녁 차림이 한결 더 수월해졌다. 이렇게 또 한번 신세를 진다. 나중에 같이 모시고 식사라도 대접해야지 싶다.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다면, 이 동네에서의 삶이 조금 더 삭막하지 않았을까. 굳이 집 밖 사람들과 교류해야 할 필요성이 적은 대도시 아파트라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동네 사람들과 서로 오며가며 눈인사나마 나누는 일도 적었을 것이다.
사실, 꼭 같은 동네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물리적인 거리보다는 마음의 거리가 더 중요하다고 해야 할까.
얼마 전에는 썬데이파더스클럽 혁진님, 현님 아이들과 함께 롯데월드에서 플레이데이트를 했다. 플레이데이트의 가장 큰 인센티브는 아이들을 돌보는데 드는 품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 덕분에 어른들은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수다도 떨고, 그와중에 아이들은 금세 친해져서 나중엔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사실상 일석 이조인 셈이라, 번개라도 종종 해서 더 자주 봐야지 싶어지는 게 공동육아의 매력이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공감대만으로도, 마음의 문을 열기가 한결 쉬워진다. 저이의 그 사정을 내가 아니까. 키우는 연령대에 따라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더 알 것 같으니까.
아이 키우는 게 보기보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같은 입장의 양육자가 모른 체 하기는 쉽지 않다. '아 모르겠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하고 돌아서 있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저절로, 예전보다 한 뼘 정도는 자못 너그러워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육아 생활이 멱살잡고 강제로 공감능력을 키워주고 있달까.
늘 신세만 질 수는 없으니 가끔씩은 주말에 아이들 친구들까지 함께 불러서 놀아야겠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가도 좋고, 같이 홍대에 가도 좋다. 내가 좀 더 신경쓰는 덕분에, 어딘가에서 다른 양육자 한 분은 평소같지 않은 조용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테니. 적어도 같이 그네를 밀고 시소를 타더라도, 평소보다 조금은 덜 정신적, 육체적으로 덜 힘들테니 말이다.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주말을 함께 하고 싶은 부모들에게, I지만 좀 더 용기내어 연락해봐야겠다.
“저… 같이, 플레이데이트 하실래요…?”
다음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 '한화 이글스'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